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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임꺽정

작품/자료명
창극 임꺽정
초연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작/연출
최인석 / 손진책
장르구분
1980년대
출연 / 스태프
출연 도창/박동진,오정숙 임꺽정/조상현 서림/은희진 개미치/강동주 운총/안숙선 단천령/강종철 병해대사/허희 이봉학/조통달 관오주/윤문식 박유복/윤석기 길막봉/이정일 배돌석/왕기창 황천왕동/왕기석 남치근/류동철 명종/박후성 문정대비/박송희 스태프 극본/최인석 연출/손진책 안무/국수호 미술/최연호 작창/정철호 조연출/박영수 무대감독/배해일 분장/김기진
예술가
손진책 (1947~ )
1947년 경북 영주 출생의 연출가. 1967년 서라벌예술대학 연극과에 입학했으며 같은 해 극단 산하에 입단하였다. 1972년 서라벌예술대학 부설 민족연극연구소 조교로 근무하다, 허규 연극연구소 강사로 일하였으며, 1973년 구자흥, 정현, 김흥기, 공호석, 오승명씨 등과 함께 허규 선생을 모시고 극단 민예를 창단하였다. 1974년 장소현 작의 <서울 말뚝이>로 첫 연출데뷔를 했으며, 1976년 명동국립극장의 마지막 공연인 <한네의 승천>을 연출했다. 1981년 <허생전>을 시작으로 마당놀이의 개념을 수립, 해마다 작품을 올리고 있다. 1982년 문예진흥원 해외연수자로 선발되어 영국 로열세익스피어컴퍼니에서 연수를 받았다. 1986년 윤문식, 김종엽, 김성녀, 정태화 등과 함께 극단 미추를 창단하였고, 창단공연으로 <지킴이>를 연출하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 한강축제에 총감독을 맡았으며, 1989년 서울연극연출가그룹 회장, 1994년 ITI(국제극예술협회) 부회장,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 연극제 예술감독, 2002년 FIFA 한일월드컵 개막식 총연출을 역임하였다. 1976년 제12회 한국연극영화예술대상 신인상을 필두로 한국연극예술상, 서울연극제, 백상예술대상, 이해랑 연극상을 다수 수상하였다. 대표작품 <서울 말뚝이>, <한네의 승천>, <지킴이>, <오장군의 발톱>, <신이국기>, <남사당의 하늘>, <봄이 오면 산에 들에>
리뷰
평론
우리 민족은 이야기와 음악을 다 같이 좋아하는 민족이어서 일찍이 판소리 같은 음악극을 발달시켰다. 이야기 자체도 남녀노소나 계층에 관계없이 민중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을 작품화했지만 음악도 그 가사를 가장 잘 전달하고 대중들이 알아듣기 쉬운 방법을 발달시켰다. 그래서 실용적이면서도 가사의 문학성과 곡조·창법의 음악성이 가장 잘 결합된 공연예술로 판소리가 발달하게 되었다. 그 판소리의 모든 것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보다 현대적이고 대중적이게 배역을 나누어 연창한 것이 창극이다. 말하자면 한 사람이 독창으로 부르던 판소리를 여러 사람이 등장인물의 배역을 나누어 부르게 되었다는 말이다. <춘향전> 같으면 판소리에서는 명창 한 사람이 춘향이도 되고 이몽룡도 되지만 창극에서는 춘향이역과 이몽룡역이 각각 따로 다른 사람이 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식의 판소리를 창극화하는 작업은 구한말 원각사 시절부터 시작된다. 그때는 김창환, 이동백, 송만갑 같은 명창들이 활동하던 시대로서 연출을 하며 주도 역할을 한 인물은 강요환이란 분이었다. 그는 춘향전과 심청전을 분장형식으로 창극화 하여 굉장한 인기를 끌었는데 그런 것 외에도 탐관오리를 응징하는 <최병두 타령>이란 창작창극을 공연하여 장안의 화재를 모으기도 했다. <최병두 타령>은 정모라는 탐관오리가 강원감사로 부임하여 아무 죄없는 그 고을 부자 최병두를 곤장쳐 죽이고 그 재산을 몽땅 약탈하였다는 실화에 바탕을 둔 창극인데 공연 때마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당신의 신문들까지 그 공연의 낙수를 게재할 정도로 화재가 되었었다. 아무튼 <최병두 타령>은 민중들의 한을 대신 풀어 주기라도 하는 듯한 멋진 창극이었다. 이러한 창극의 흐름은 그후 많은 스타 명창들을 배출하면서 작품의 양과 질에 있어서도 상당히 다양한 발전을 이룩했지만 무엇보다 시골 구석구석까지 창극팬을 확보하는 대중화를 달성하였다. 특히 암울한 일제시대와 혼란스러웠던 1950년대를 통하여 창극은 상당한 우세를 떨치며 성행하였는데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위축되어 지금은 민간 창극단이 전무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창극의 소재도 여러 가지가 등장했었다. 기존의 판소리가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는 물론이요, 사설만 전하는 <가루지기 타령>이나 <강릉 매화전>도 창극으로 올려졌고 많은 인기소설을 창극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비극을 주조로 한 인물중심의 창극이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앞서 소개한 <최병두 타령>도 그러한 것이었지만 <춘향가>나 <심청가>도 따지고 보면 역시 그러한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또 고구려의 장군으로 설정된 <일목장군>이라든지 신라 경순왕의 아들이었던 <마의태자> 같은 것도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은 창극이었다. 아마 당시 우리네 삶이 어딘가 암울하고 어려웠기 때문에 그러한 소재들이 우리에게 어필했는지도 모르겠다. 작년부터 동아일보사에서 벌이고 있는 창극운동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큰 의의를 갖는 것인데 소재선택에 있어서 윤봉길 의사나 임꺽정전을 택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윤봉길 의사 같은 소재는 일제시대에는 감히 엄두도 못내던 소재였고 임꺽정 역시 아직 창극으로 상연된 바 없는 신소재이다. 묵은 이야기이면서 어느 시대에나 재미있게 수용될 수 있는 임꺽정의 이야기는 명종실록에도 나오는 실제인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정치가 혼란하고 관리들의 부패로 민심이 흉흉하던 명종조에 경기도 양주 백정 출신으로 태어나서 많은 동지를 규합하여 의적 행세를 했던 인물이다. 주로 관가의 창고나 부정한 관리의 재물을 빼앗아다가 빈민에게 나누어주고 원성이 높은 관리들을 혼내주는 등 억압받는 백성들이 호응할 만큼 시원한 일을 많이 한 도적이었다. 그래서 많은 동지를 규합할 수 있었고 경기도 황해도 일대에서 큰 세력을 떨치기도 하였다. 한때에는 개성을 쳐들어가 그를 잡으려고 하던 포도관 이억근을 살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의적이라 하더라도 도적은 도적이다. 그의 세력이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1559년부터 크게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임꺽정의 세력은 1560년 그의 형 가도치와 참모 서림이 체포되면서 기울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1562년 임꺽정마저 토포사 남치근에게 체포되어 처형당하게 됨으로써 그의 일생은 끝나고 만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인데 이런 내용을 줄거리로 한 많은 이야기들이 구전으로 또는 소설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에 상연되게 되는 <창극 임꺽정>도 역시 이런 이야기 내용을 거의 다 포함하고 있다. 다만 창극으로 공연하기에 좋도록 각색하고 특징있게 사설을 다듬었다. 그래서 창극 특유의 사설다운 면모를 갖추었고 꽤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조건들도 갖추었다. 창극으로 일반소설이나 이야기와 다르게 음악으로 연출되는 공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본의 이야기를 음악화하는 작곡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창극의 작곡은 판소리의 음악어법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오선지 위에 작곡하는 것이 아니라 판소리를 잘 아는 사람이 입으로 직접 작곡하는 것이 예사인데 이번 임꺽정의 작곡은 정철호씨가 맡았다. 초창기의 강용한이 활동하던 시대에 대개 기존의 판소리 중심으로 공연이 이루어졌으니까 작곡활동이 활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 정정열이 활동하던 시대나 그 이후 김연수, 한일섭, 정철호 등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많은 새 작품이 생산되었으므로 보다 작곡이 활기를 띄었었다. 그러나 한편 창극의 음악이 너무 쉽고 음악적으로 빈약하다는 지적은 많이 받았었다. 판소리의 음악수준보다 낮은 작곡이어서 창극의 발달이 오히려 판소리의 수준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개탄하는 소리가 높았다. 그래서 1960년대에 와서 창단된 국립창극단은 1980년에 들어오면서 초창기의 창극처럼 다시 판소리의 음악을 그대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창극은 연극적인 재미와 함께 음악을 듣는 재미도 함께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또 창극분야에서 활동하는 명창들이 판소리 기능을 많이 연마하는 결과도 가져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방향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창극의 음악이 판소리 그것만이 아닌 또 다른 장르의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러가지 형태로 창극의 음악은 모색되고 있는데 이번에 작곡을 맡은 손진책씨도 지난번 <윤봉길 의사>를 창극으로 연출하여 크게 호평을 받는 중견 연출가이다. 그는 오랫동안 현 국립극장장으로 창극 정립에 힘써온 허규씨와 함께 일해왔으며 많은 작품을 통하여 크게 인정받고 있는 연출가이다. 이번 공연에 거는 기대도 크다. 이번 임꺽정에 출연하는 명창들은 이시대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단한 명창들이 거의 다 망라되어 있다. 도창에는 박동진씨 그리고 주연이라고 할 수 있는 임꺽정에는 조상현씨가 출연한다. 또 중요한 배역인 서림에는 은희진, 개미치에는 강형주, 운총에는 안숙선이 출연하는데 모두 배역의 성격에 잘 맞는 명창들이라고 본다. (참고:최종민, 1987년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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