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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와 사형수

작품/자료명
검사와 사형수
초연장소
동양극장
작/연출
이운방
장르구분
1920년-1940년대
출연/스태프
* 출연 죄수 청년/심영 검사/서월영 등
내용
한 청년이 연예 문제로 시비가 붙은 끝에 깡패에게 쫓겨 도망친다. 힘으로는 도저히 맞겨룰 수가 없는데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되자 청년은 돌을 들어 깡패에게 던진다. 위협을 목적으로 던진 돌이었으나 깡패는 머리에 돌을 얻어맞고 그 자리에서 죽어버린다. 청년은 졸지에 살인자가 되어 법정에 서는데, 청년을 기소하는 검사가 청년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취조를 하고 현장 검증도 하고, 법정에서 논고를 통해 ‘너와 나는 사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지만 여기서는 검사와 사람을 죽인 죄수로 만났다. 무고한 사람을 죽였으니 사형이다’라고 사형을 구형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의 선고를 들은 아들이 증거물로 제시된 돌을 붙들고 불가항력적이었던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흐느낀다. 참고 : <이야기 근대연극사> 고설봉, 창작마을, 1993, p.144~145
예술가
이운방 본명은 운영이고 호는 백연이다. 1925년 토월회에 신인배우로 입단 후 작품에 출연하면서 작품창작도 하였다. 1929년 <초생달>을 시작으로 <즐거운 인생> <목신의 장난> 등 1931년 토월회가 폐단될 때까지 활동하였다. 1935년 동양극장 개관과 함께 전속 극작가로 입단하여 극단 청춘좌와 호화선의 작품을 집필하였으며, 1940년 조선연극협회가 결성되기 바로 전에 극작가동호회를 결성하여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표작품 <검사와 사형수> <조선의 어머니> <어부의 집> <국경의 밤> <장한몽> 박진 (1905~1974) 서울 출생의 극작가이며 연출가. 일본대학 예술과 중퇴 이후 연극에 투신, 토월회에 가입했으며 간부로서 연출을 맡아 활동하였다. 이어 산유화회, 화조회를 조직(1928년)했으며, 동양극장에서 안종화, 홍해성 등과 더불어 연출가로서 활동했다. 광복 후 문교부 주최 제1회 연극경연대회에서 <혈맥>(1946년)을 연출하여 연출상을 수상하였다. 국립극단 단장(1959년), 예술원 회원(1960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1962년), 국립극장 운영위원장(1973년) 등을 역임하였다. 연출작품으론 <향토심>(1927년) <화란을 당한 자>(1928년) <꽃피는 나무>(1943년) 등 수백편에 달한다. 극작가로서는 장막극<소낙비>(1927년)가 데뷔작으로 <명기 황진이>(1936년) <공작선생>(1951년) 등이 있다. 대표작품 <검사와 사형수> <혈맥> <야화> <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
리뷰
2막의 사회극으로 등장인물은 7~8인 정도로 상연 시간은 2시간 남짓 된다.
재공연
- 1938년 동양극장, 홍해성 연출, 극단 호화선
관련도서
<이야기 근대연극사> 고설봉, 창작마을, 1993. <한국근대연극사> 유민영, 단국대출판부, 1996.
연계정보
-동양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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