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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대제(社稷大祭)

작품/자료명
사직대제(社稷大祭)
지정여부
이건웅(제의집전)
구분
유교의례
흐름
사직대제는 국가 차원에서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로, 사(社)는 땅의 신, 직(稷)은 곡식의 신을 뜻한다. 예로부터 나라를 세우면 먼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이와 함께 땅과 곡식의 신에게 백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풍요를 기원하는 사직제를 올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사직에 대한 제사를 올렸으며,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조상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종묘대제와 더불어 국태민안을 기원했던 중요한 예식이었다. 고구려는 중국의 제도를 받아들여 처음으로 사단(社壇)을 이룩하고 국사단(國社壇)이라 불렀다. 신라에서는 선덕왕 4년(783)에 처음 직단(稷壇)을 세우고 합쳐서 사직단으로 하였다.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태조 4년(1395)에 경복궁을 중심을 동쪽에 종묘, 서쪽에는 사직단을 조성하였고 각 지방에도 사직단을 세워 백성의 편안함과 풍년을 기원하였다. 세종 8년(1426)에는 그 수호와 환경조성, 청소, 관리 등을 담당하는 관청으로 사직서(社稷 署)를 두었다. 그와 함께 중춘추(仲春秋)에 정시제를 올리고 정월에는 풍년기곡제를 드렸으며, 풍년에는 감사제를 가물 때에는 기우제, 햇과일이 나오면 천신제, 경사나 흉사에 고유제 등의 임시제를 올렸다. 조선 말, 대한제곡이 성립하여 고종이 황제의 위에 오르면서 국사(國社)는 태사(太社), 국직(國稷)은 태직(太稷)으로 격상되었다. 현재 치러지는 사직대제 의례는 대체로 대한제국의 의례를 따르고 있다. 사직대제는 고종 31년(1894)에 이르러 신관제(新官制)로 바뀌었고, 순종 2년(1908) 일본의 강압에 의해 없어졌다가 80년 만인 1988년 10월에 종묘제례의 기능보유자인 이은표 옹의 고증을 통해 복원되어 봉행되고 있다. 현재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대에 있는 사직대제봉행위원회에서 사직대제를 보존·계승하고 있다.
내용
사직단에는 사단(社壇)과 직단(稷壇)의 동서양단(東西兩壇)을 동단인 사단에는 국사(國社)의 신위를 봉안하고 후토신(后土神)을 배향시켰으며, 서단인 직단에는 국직(國稷)의 신위를 봉안하고 후직신(后稷神)을 배향시켰다. 제사는 보통 2월과 8월에 지내고, 나라의 큰일이나 가뭄이 있을 때에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제사를 지내는 절차나 격식은 때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 왔으나 점차 중국의 방식을 모방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우리 고유의 예를 갖추게 되었다. 사직대제의 제의(祭儀)절차와 제수(祭需), 제복(祭服), 제례악(祭禮樂), 무용(佾舞) 등은 조선 전후기와 대한제국 각 시기마다 편찬된 의례서에 따라 각각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조선 전기에는 성종 5년(1474)에 편찬된 <국조오례의>에 수록된 의례절차에 따라 제례를 거행하였고, 이를 토대로 조선 후기에는 정조7년(1783)에 작성된 <사직서의궤>에 의해 유교적 의례로 봉행하였다. <사직서의궤>에 기록된 사직대제의 구성을 살펴보면 먼저 제향악(祭享樂)으로는 순안지악(順安之樂)과 숙안지악(肅安之樂), 옹안지악(雍安之樂)에 맞추어 문무(文舞)를 추었고, 초헌례 때에는 수안지악(壽安之樂)이 연주될 때 문무가 무무(武舞)로 바뀌어 서안지악(舒安之樂) 등이 연주되었다. 이어 아헌례와 종헌례 때에는 수안지악과 소무지무(昭武之舞)가 사용되었으며, 철변두(徹변豆)에는 옹안지악, 송신(送神)에는 순안지악이 사용되었다. 제물은 도(稻), 량(梁), 서(黍), 직(稷)을 비롯하여 12변(籩), 12두(豆), 6병(餠) 등을 쓰는데 종묘대제의 제물과 거의 같다. 다만 종묘제례에서는 12갱(羹)을 차리는데 비해 사직대제에서는 화경(和羹) 3기만을 쓴다. 또 종묘제례에서는 서쪽이 상(上)인데 비해 사직대제에서는 동쪽이 상이고 전자의 폐(幣)가 백색이지만 사직대제는 흑색이다. 제향의식의 절차는 왕이나 황제가 친히 거행하는 친제의(親祭儀)일 경우 시일(時日), 재계(齋戒), 친림서계(親臨誓戒), 진설(陳設), 친전향축(親傳香祝), 거가출궁(車駕出宮), 친성생기(親省牲器), 성생기(省牲器), 전폐(奠幣), 진숙(進熟) 및 거가환궁(車駕還宮)의 순서로 진행되었고, 지금 사직단에서 거행되는 사직대제는 전폐부터 영신례(迎神禮), 초헌례(初獻禮),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 음복례(飮福禮) 및 망요례(望燎禮)를 의식화하여 진행하고 있다. 제의를 주도하는 제관들의 제복은 초헌관의 경우 구장면복을 갖추고 제관은 금관조복을 갖추어 입었으며, 진설되는 제수는 소, 돼지, 양의 생고기를 비롯한 각종 곡식을 늘어 놓는다.
전승자 정보
현재 사직대제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대에 있는 사직대제봉행위원회에서 사직대제를 보존, 계승하고 있으며, 보유자는 이기전이다.· 이기전(李基田, 1934~ )중학교를 졸업한 뒤 4년간 한문수업을 받으면서 유교의례의 기초를 닦았으며, 1981년부터 전주리씨대동종약원 전례위원과 종묘제례 제복부장을 6년간 역임하였다. 1987년 사직대제의 복원에 참여하였고, 1988년 사직대제 복원 당시 홀기를 제작하고 신주의 글씨를 썼다. 이후 사직대제에 집례로서 참가하였으며, 종묘제례보존회 전례이사로서 종묘대제의 집례를 담당하는 등 전통적 제례에 참여하여 그 봉행의 각종 소임에 숙달하였다. 2000년 10월에 사직대제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제의집전 기예능 보유자 인정을 받아 사직대제의 전승에 힘쓰고 있다.
연계정보
· 재구성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252호 사직대제>, 조흥윤,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25집 (237~254호), 문화재관리국
관련도서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252호 사직대제>, 조흥윤,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25집 (237~254호), 문화재관리국 <한국예술사전(연극/무용/영화 편)>, 대한민국예술원,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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