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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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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해설

동양에서 ‘수필’이라는 용어는 중국 송나라 때 홍매(洪邁)가 지은 <용재수필>에서 처음 보인다. 이 책의 서문에 “뜻하는 바를 따라 앞뒤를 상관하지 않고 무작정 써둔 것을 수필이라 한다”는 언급이 있으며, 한국에서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일신수필(日新隨筆)’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데 이때부터 수필은 하나의 문학 장르로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전수필은 한문수필과 한글수필로 나뉘는데, 고전수필의 역사는 고려시대 이인로의 <파한집>, 최자의 <보한집>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한문으로 씌어진 고려시대의 수필은 잡기(雜記)·필기(筆記)·야록(野錄)·야문(野聞)·쇄담(鎖談)·야담(野談)·총화(叢話)·야화(野話)·만필(漫筆) 등으로 불렸다. 물론 여기에는 가벼운 비평이나 구체적인 형식의 틀을 갖추지 못한 소설의 원형에 가까운 장르도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 수필을 중수필(essay)과 경수필(miscellany)로 나누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모두를 수필에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대부분의 한문수필은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기의 한문수필은 이제현이 <역옹패설>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낙수(落水)를 벼룻물로 삼아 한가한 마음으로 붓가는 대로 하여 울적한 회포를 풀거나 닥치는 대로 적은 것”이다. 따라서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로서 그 역할을 이루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볼 때, 대단히 서툰 것도 많으나 풍자적 성격을 띠고 있는 김부식의 <아계부(啞鷄賦)>와 기행수필인 이규보의 <남월행일기(南月行日記)> 등은 형상화의 측면에서 완결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한문수필과 한글수필이 공존하게 된다. 대부분의 한문수필이 사대부들에 의해 씌어진 데 반해 한글수필은 왕궁의 나인과 여성들에 의해 씌어진 것이 특징적이다. 이때 크게 활약한 한문수필 작가로는 강희맹, 서거정, 성현, 최보, 김정, 유성룡, 이순신, 혜경궁 홍씨, 김만중, 유형원, 이익, 박지원, 의령남씨, 유씨부인 등이 있다. 특히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중국으로 떠나는 사행(使行)의 일행이 되어 압록강·랴오양[遼陽]·신광녕·산하이관[山海關] 등을 거치며 느낀 바를 진솔하게 적은 한문수필의 백미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김만중의 <서포만필>과 이익의 <성호사설>도 보고 느낀 것을 자료와 고증을 통해 열거한 짜임새 있는 한문수필들이다. 한글수필은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이후에 비로소 씌어지기 시작했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은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과 정조의 왕위계승, 그리고 한 많은 여인의 궁중생활을 섬세한 문체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함흥판관 신대손의 부인 의령남씨가 쓴 <의유당일기>는 동해바다의 일출광경을 여성스런 필체로 그려낸 기행수필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한글 의인체 수필의 한 양식을 개척한 유씨부인의 <조침문>과 <규중칠우쟁론기>도 여성 특유의 꼼꼼함을 보인 한글수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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