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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해설

시조는 고려 말부터 발달한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이다. 통상 4음보 율격으로 구성되는 3장으로 된 짤막한 단형시형으로 종장에서 독특한 율격적 변화를 거쳐 한 편의 시로서 완결된다. 시조는 원래 악곡의 종류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후대에 와서 시형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국악계에서는 여전히 시조곡이나 시조창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시절가’나 ‘시절단가’ 등이 함께 쓰였던 점으로 미루어 시조라는 명칭은 ‘시절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시조는 가곡창을 시대적인 취향에 맞도록 개편한 유행가조였으리라 추정된다. 이러한 연유로 시조는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준말로서 이해되고 있다. 18세기 이전부터 전통적으로 쓰여오던 명칭으로는 ‘단가(短歌)’가 가장 일반적이었다. 시조의 기원으로는 한시기원설·별곡기원설·민요기원설·향가기원설 등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발생시기도 고려말 13세기 발생설, 조선초 15세기 발생설, 조선 중기 16세기 발생설 등이 맞서고 있어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지만, 이러한 논의들의 대표적인 추세는 고려말 13세기경에 고려가요의 악곡과 시형을 모태로 하여 발생했으리라 보고 있다. 그러나 시조와 같이 잘 다듬어진 정형시형이 완성되기까지는 고려가요 외에도 여러 가지 시가형태가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있다. 시조는 사대부계층이 만들어내고 주도해나간 계층적 귀속성이 강한 문학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 급격하게 확산되고 대중화되면서 시조를 쓰는 계층이 다양해졌다. 따라서 시조의 범주는 단일하게 규정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져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하위 갈래로 나누어볼 수 있다. 우선 형태적인 특성에 따라 단시조(短時調: 평시조)와 장시조(長時調: 사설시조), 단시조(單時調)와 연시조(連時調)로 나뉜다. 단시조는 3장 6구 45자 안팎의 비슷한 음수로 채워지는 4음보격의 절제된 형식을 갖춘 것이고, 장시조는 이러한 정형적인 율격에서 다소 벗어나 형식적으로 풀어지면서 길어진 시조이다. 단시조와 연시조는 한 작품이 한 수로 완결되느냐, 연작들이 모여서 한 편을 구성하고 있느냐에 따라 나뉘는데 대개 오륜가류나 본격적인 도학시조류, 어부가류 등이 연시조의 형태를 띠고 있다. 시조작가의 계층에 따라 사대부시조·기녀시조·가객시조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들은 각 계층의 현실적인 입장과 처지가 달랐던 관계로 흥미로운 변별적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시조는 오랜 시기에 걸쳐 있기 때문에 고시조·개화기시조·현대시조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 밖에도 작품의 제재에 따라, 소재나 경향성에 따라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음악상으로는 악곡의 종류에 따라 가곡창과 시조창, 시조창 내에도 창조(唱調)에 따라 평시조·중어리시조·지름시조·사설시조 등으로 나누고, 창법에 따라서는 경제(京制)·완제(完制)·영제(嶺制)·내포제(內浦制)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시조는 사대부계층과 함께 성장해왔기 때문에, 작품세계가 사대부계층의 역사적 체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고려말의 시조들은 대개 조선건국이라는 역성혁명(易姓革命)에 대한 태도와 그로 말미암아 형성된 갈등이나 감회를 다루고 있다. 사대부계층의 독자적인 미의식 세계를 반영한 시조는 16세기 사림파들의 시조로서, 이것들은 대개 문집에 덧붙어 전해오고 있다. 사림파의 시조는 그들의 문풍쇄신운동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데, 이 운동은 성리학적인 이념을 사회화하고 내면화해나가는 사림파들의 광범한 생활운동의 일부였다. 이들의 시조는 대개 산수자연을 벗삼아 심성을 기르고 성정을 닦고자 하는 성리학적 이념 추구의 구도시(求道詩)라 할 수 있다. 시조는 사대부계층 가까이에서 그들에게 봉사하는 계층이었던 기녀와 가객에게 자연스럽게 확대되었으며 이들 계층에 의해 시조의 세계는 새로운 경지가 개척되었다. 기녀층은 높은 교양 수준을 토대로 비교적 일찍부터 시조작가로 등장했다. 그들의 시조는 자신들의 현실적 처지와 입장을 반영하여 주로 남녀 간의 사랑과 그리움을 애틋하게 노래하고 있다. 가객층은 18세기에 들어서 시조의 작자층으로 등장했는데 사대부 시조를 모방하고 있는 측면이 두드러지지만 그들의 현실적 처지를 반영하여 사대부 시조와는 다른 측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자신들의 신분에 대한 자의식을 담아내는가 하면, 서민세계를 반영하여 애정행각이나 장사행위·세태풍자 등을 담아내기도 했다. 특히 후자는 사설시조의 세계로서 서민들의 생활세계를 반영한 사실주의적 문학으로 높이 평가되어왔다. 시조는 이러한 확산과정을 거쳐 19세기말에 이르면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정치선전의 도구로도 광범위하게 통용되었다. 그리하여 개화기의 시조는 문명개화, 자주독립, 매국노 성토 등의 시사평론적인 내용을 두루 포괄하는 토론의 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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