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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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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해설

신라시대부터 고려 초기에 이르는 시기에 제작되어 이두(吏讀)나 향찰(鄕札)로 표기된 시가갈래를 의미한다. <도솔가(兜率歌)>나 <사뇌가(詞腦歌)>를 포함한 이 시기의 모든 시가를 총칭하는 말로 신라가요·신라시가·사뇌가라고도 한다. 중국의 시(詩)나 불교의 범패(梵唄)에 대해 ‘우리 고유의 시가’, ‘시골노래’라는 개념으로 향가라 했다. 신라인들은 향가를 숭상했는데,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킨 향가도 많았다. 일반인들에게는 유희와 오락의 도구였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대중포교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통일신라시대말 진성여왕대에 향가집 <삼대목(三代目)>이 편찬되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현재 가사가 전하고 있는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14수, <균여전(均如傳)>에 11수로, 모두 25수이다. 문헌상의 창작시기를 기준으로 할 때 최초의 작품은 진평왕대(579~631)의 <서동요(薯童謠)>·<혜성가(彗星歌)>이며, 마지막 작품은 고려 광종(917~973) 때의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이다. 순수한 우리글이 없었던 때에 우리말로 된 노래를 기록해야 했기 때문에, 향가는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서 쓰는 향찰로 표기되어 전한다. 향가의 해독은 관련자료가 부족하여 매우 어려운 작업이지만 양주동의 해독이 있은 후 문학적 연구 분야에서는 대체로 그의 해독본을 정본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완전하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다른 학자의 해독 노력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향가는 모두 설화 속에 삽입되어 전한다. 그 설화를 '배경설화'라고 하는데, 각 작품의 어학적 해독 및 문학적 해석은 배경설화의 문맥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 시의 진술내용 자체는 순수하게 서정적이지만 설화 문맥 내에서 작품을 해석해볼 때 불교적·주사적(呪詞的)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작자층은 왕, 장안 사녀(士女), 노인, 부녀자, 화랑, 승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음악을 수반해 가창(歌唱)되었다. 4명의 화랑이 3수의 향가를 지어 그것을 대거(大炬)라는 승려에게 보내어 노래를 만들게 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 각 향가가 기록된 분절양상이 작품마다 다양한 것은 음악에서의 분절을 고려한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향가의 형식은 그 의미분절을 기준으로 하여 4구체·8구체·10구체로 나누어진다. 4구체는 기층민의 노래형식인 민요 형태이다. 이러한 민요 형태의 노래가 점차 장형화 추세를 보여 진화론적으로 8구체·10구체로 발전해갔을 것이라고 형식의 발생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8구체를 오히려 10구체 형식의 축약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10구체인 사뇌가가 정제된 형식으로 완성되기까지는 기층민의 노래 형식인 민요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향가는 ‘말이 맑고 깨끗하며 그 뜻이 매우 높다’라는 당대인의 평가에서 드러나듯이 그 내용과 수사가 숭고하고 우아하며 평화롭다. 우리 고전문학의 훌륭한 자산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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