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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1960년대의 시문학

1960년대는 4·19혁명의 거대한 열기로 시작한다. 1960년대의 시에서 4·19가 중요하게 논의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 혁명적 열정이 가장 민감하게 시적 형태로 표출되었으며, 민족적 진취성의 신성한 힘이 4·19를 통해 드러났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4·19는 3·1운동과 더불어 한국사에서 각각 근·현대를 특징짓는 역사적 계기가 된다고 할 것이다. 4·19혁명은 자유당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으며, 자유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공화국의 출범을 가능케 했다.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들의 외침은 사회적 운동으로 펼쳐져 갔으며, 4·19는 자유와 민권을 쟁취하기 위한 항쟁이란 점에서 3·1운동에 비견되는 커다란 민족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화의 열망은 1961년 5·16군사 쿠데타로 좌절되고, 민주화의 과제는 근대화의 발전논리와 냉전체제의 안보논리에 휘말려 결국 길고 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렇듯 1960년대는 모순과 갈등의 시대였다. 식민지 시기를 뒤이은 분단비극의 연장선상에서, 다시 4·19혁명과 5·16 쿠데타라는 역사적 사건을 연이어 겪으면서, 한국의 시단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다양한 시적 응전력을 시험하기에 이른다. 무엇보다 1960년대 시는 4·19를 기점으로 새로운 감수성의 시인, 즉 60년대 시인이 본격 등장한 데서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1960년대 시는 대체로 세 가지 갈래에서 파악할 수 있는데, 첫째 전통적인 서정시(전통시), 둘째 현실 상황에 대한 응전의 시(참여시), 셋째 인간의 내면 의식을 탐구한 언어적 실험시(순수시-난해시)가 그것이다. 4·19의 혁명적 소용돌이에서 새롭게 현실 인식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전통적인 서정시가 차지하던 광범위한 영역이 축소되는 동시에 참여시, 실험시의 영역이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에 등단한 신인들의 시세계를 일별할 때 우선 눈에 띄는 특징은 이른바 전통적 서정파가 거의 소멸하고 대부분 모더니즘의 압도적 영향 아래 있었다는 점이다. 전통적 서정파의 소멸은 1960년대 신인들의 교양적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지만, 특히 5·16 이후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잔존한 농업적 기반이 급속히 붕괴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60년대 신인들의 모더니즘이 50년대의 답습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50년대 모더니즘은 30년대보다 약간은 경박한 면모를 띠는 데 비해 60년대 신인들의 모더니즘은 나름대로 강렬한 의식 속에서 내화되어 있는 것이다. 철학적 사유와 구체적 이미지를 능숙하게 결합할 줄 아는 정현종은 60년대 신인들의 모더니즘풍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정현종의 모더니즘은 전망이 철저히 차단된 황폐한 내면 풍경에도 불구하고 사회성을 일정하게 내포한 것인데, 이러한 경우는 황동규의 경우 보다 뚜렷하게 나타난다. 냉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자조적인 어조에도 불구하고 분단체제의 악몽과 같은 현실이 1960년대의 모더니즘에 틈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모더니즘의 재편 과정에서 새로운 시의 흐름이 대두하는데, 문병란, 이성부, 황명걸, 조태일, 최하림 등의 참여시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황명걸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는 전라도 출신인데, 이 점에서 더욱, 모더니즘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극복하는 고투의 시적 도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성부의 <전라도> 연작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성부의 <전라도> 연작을 한걸음 밀고 나간 지점에서 조태일의 <식칼론> 연작이 태어난다.이성부와 조태일로 대표되는 60년대의 참여시의 대두는 김수영과 신동엽의 탁발한 작업을 계승하는 한편 70년대 민족·민중시의 개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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