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개요

자세히보기

한국의 동양화가

근대 미술의 기점을 명확히 규정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경우 일본을 통해 서구미술을 수용하는 한편 미술계라는 제도가 정착되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 한국 근대미술의 내용일 것이다. 그 시기는 대충 1920년대 그 즈음이다. 이전 시대의 전통미술이 더 이상 현실에서 효력을 상실하고 의미가 없어지는 한편 새롭게 받아들인 서구미술이 이를 대체해나간 역사가 한국의 근대미술이란 사실은 매우 불우하다. 근대기 동양화단은 무엇보다도 조선왕궁의 마지막 도화서 화원인 조석진과 안중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여전히 전통화를 고수하기는 하지만 사실화법이 가미되고 구체적인 실경을 소재로 하면서 현실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실 조선의 붕괴와 일제의 합병, 서구미술의 수용은 전통화의 심각한 붕괴를 초래했다. 산수화와 사군자, 초상화 및 민화 등의 그림은 이제 더 이상 이념을 상실하고 실제 생활에서 쓰임이 없어지면서 급속히 약화되었다. 조석진과 안중식 역시 마지막 도화서 화원의 생을 마감하고 물러난 후 경성서화미술회(1911)를 통해 제자들을 길러냈는데 그들이 결국 한국 근대기 동양화단의 첫 세대들이 된다. 이곳을 거쳐간 대표적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 오일영, 이용우, 김은호, 박승무, 이상범, 노수현, 최우석 등이 바로 그들이다. 아울러 외조부인 조석진에게 영향을 받고 직접 지도를 받으며 화가의 길을 개척해 나갔던 변관식이 있었으며 전남 진도 출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전통적인 남종화법을 공부하고 돌아온 허백련 등도 있었다. 1910년대에 배출된 전통화단의 새 세대를 대표하는 이들은 물론 여전히 중국화풍을 모방하고 시·서·화를 함께 다루었고 지극히 전통적인 화풍을 답습했으나 당시 시대의 변화, 특히 서양화법의 합리적 사실주의와 현실적 자연주의에 자극을 분명하게 받고 있었다. 따라서 전통적인 산수화의 방법론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거기에 서양화의 원근법이 가미되는가 하면 관념적인 풍경(산수)을 그리기보다는 구체적인 현실풍경을 조금씩 끌어들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들은 전통회화의 새로운 변모를 지향하는 한편 당시 일본화와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양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보면서 변화를 모색해 나갔다. 1920년대에는 ‘동양화’란 말이 처음으로 언급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우리의 전통회화의 새로운 시대적 변화를 상징하고 있었다. 1923년에 이상범, 노수현, 변관식,. 이용우 4명이 발족한 ‘동연사(同硏社)’는 중국화풍으로부터의 해방, 새로운 영향력으로 증대되기 시작하던 일본화풍의 배격, 따라서 우리미술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최초의 단체였다. 비록 그 모임은 곧 소멸되었으나 이들은 이후 근대기의 가장 대표적인 화풍을 이루었던 작가들이었다. 다분히 서양화적인 표현방법의 실경을 주로 그린 이용우와 독보적인 세필 채색화로 인물(미인도, 신선도 등)을 그린 김은호, 근대적 역사화의 개척자인 최우석,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이자 전통초상화기법에 서양화의 음영 등을 구사한 채용신 등이 당시 대표적 작가였다. 아울러 수묵화의 새로운 경향을 개척해나간 이들은 이상범, 노수현, 변관식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종래의 형식화된 산수화에서 조금씩 벗어나 현실시각에 따른 향토성 짙은 산수풍경을 선보였다. 특히 이상범과 변관식은 이후 1950~60년대에 와서 작품이 절정에 이르러 가장 한국적인 작가, 작품으로 기억된다. 평범한 산야를 까칠한 선묘와 붓질, 수묵중심으로 펼쳐내면서 유장한 가락과 스산한 정취를 물씬 풍기는 이상범의 산수는 관념성과 현실감이 교묘하게 공존하면서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확립해 선보였다. 그와 한 쌍으로 거론되는 이는 변관식이다. 금강산풍경을 주로 그렸던 그는 변화무쌍한 구도, 과감한 먹의 쓰임 등으로 거칠고 골기를 담은 산수의 새로운 경지를 선보였다. 노수현은 전통적인 관념산수풍의 그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세밀하고 정확하며 장중한 전개를 통해 남성적인 산수를 추구했으며 허백련은 전통화법에 충실하면서 문인정신이 깔려있는 산수를 고수했던 이다. 김은호는 1930년대에서 1940년대를 거쳐 유능한 제자들을 많이 길러냈는데 그 대표적인 이가 김기창과 장우성, 이유태 등이다. 그 제자들의 모임이 바로 후소회란 단체다. 해방 이후 국전을 통해 새로운 작가들이 배출되기 시작했으며 일제시대 때 활동했던 작가들 대부분도 일본화적인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도적인 변화를 추구했다. 정교한 사실력과 채색화를 통해 탄탄한 기량을 선보였던 김기창은 일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활달한 수묵화 기법, 평면적인 구성, 담채의 가미 및 민화, 산수화 등을 차용해서 새롭게 구성하는 그림들을 선보였다. 부인인 박래현 역시 반구상적인 그림을 추구했고 이후 미국유학을 가서는 추상성 짙은 그림 및 동양화를 벗어나 판화, 타피스트리 등으로 작업을 넓혀갔다. 장우성 역시 인물채색화에서 벗어나 전통적인 문인화를 나름대로 번안한 그림을 통해 해방 이후 민족미술의 구현이란 과제를 문인화에서 찾아나갔고 그 영향은 서울대 제자들을 통해 계승되었다. 환상적이며 탐미적인 색채를 통해 서술적인 그림을 그렸던 천경자는 매우 자전적이며 설화적이고 여성적인 서정이 강한 그림으로 독자적인 위상을 차지했다. 이응로는 일찌감치 동양화의 여러 방법론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그림으로 실험적인 작업 및 문자를 변용해 내는 이른바 문자작업으로, 성재휴는 전통산수의 소재를 그만의 독특한 먹의 활용과 새로운 감성의 색채를 가미해 현대적인 산수화를 전개시켰다. 이들보다 젊은 세대인 국전을 통해 배출된 신예작가 서세옥은 1960년대를 거치면서 수묵의 현대적 실험작업을 추동시켜 나간 대표적 인물이다. 묵림회를 통한 집단적 발언은 동양화의 추상화를 가능하게 했다. 동양화의 실험성이 강화되어 오브제나 입체작업으로 까지 전개시킨 이는 안상철이다. 1970년대에 와서 동양화의 현대적 작업은 더욱 번성하였는데 한지의 재질을 활용한 권영우의 추상작업을 비롯해 정탁영, 심경자, 이규선, 안동숙, 송영방, 신영상 등은 수묵을 중심으로 하되 전통에 기반한 새롭고 감각적인 비구상 작업들을 선보였다. 다분히 복고적인 인물산수화를 예리한 선묘와 감각적인 채색으로 구현한 박노수와 일본채색화에서 벗어나 강렬한 채색으로 한국의 토속적인 신화, 민화와 무속화, 불화 등을 차용해 그만의 독자적인 채색화를 선보여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화단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 박생광 등은 시류에 부침하기 보다는 자기 그림세계를 부단히 밀고 나간 작가의 대표적 사례다. 1970년대에는 또한 실경 산수가 잠시 붐을 형성했고 그 영향들이 꾸준히 진행되어왔다. 이영찬, 이열모, 김동수 등이 대표적 작가였다. 오용길, 이왈종, 권기윤, 김천일, 한진만 등이 그들이다. 아울러 수묵에 대한 실험성과 그 묘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여러 작업들이 집단적인 흐름 속에서 추구되었는데 송수남이 그 중심인물이었다. 황창배는 1980년대 이후 가장 주목되는 작가였는데 그는 동양화의 고루한 방법론과 기법, 구성 등을 과감히 해체하고 변모시켜 자유로운 발상을 가능케 한 작가였다. 이후 황창배 신드롬이란 이름이 나올 정도로 그의 영향은 박생광과 함께 이후 젊은 세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채색화 분야로는 서정태, 정종미, 김선두, 인물화로는 김호석, 수묵은 김호득, 오숙환, 이종목, 조환, 박문종, 유근택, 이기영 등으로 전개되어 오고 있다. 근자에 흥미로운 동양화작업을 선보이는 젊은 작가들로는 박윤영, 권기수, 서은애, 김은진 등이 주목되는 작가들이다.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