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개요

자세히보기

한국의 공예가

개화기 이후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무엇보다도 왕실과 귀족들의 생활 양식이 서구화됨에 따라 일상적인 기물들이 모두 서양식으로 변화되었다. 생활도구로서의 서양 공예가 전해져왔는데 그것들은 하나의 사물, 물건으로서 들어온 것이다. 아울러 일본인들에 의해 한국의 전통적인 공예가 그들의 상혼과 취향에 따라 변질되는 과정을 급속히 겪어 나가게 되었다. 근대적 공예로의 변모는 1907년에 만들어진 관립공업전습소가 1908년 한성미술품제작소가 되고 당시 황실에서 자본을 댔기 때문에 ‘이왕직미술품연구소’라고 불리웠다. 이후에는 일본인들의 의도적인 운영 아래 전통공예와는 그 성격이 무척 다르게 변질되었다. 이 시기에는 이미 일본인들의 자본이 국내에 대거 투입되어 산업공예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공장들이 많이 들어섰다. 이에 따라 사상은 빠지고 형태와 문양이 전통공예품과 약간 닮은 공예품의 일반화가 더욱 진척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어느 정도 조선시대의 전통은 남아있었다. 그러나 해방이후에 우리의 전통은 뿌리째 뽑혀졌고 사상적 혼돈 역시 심화되었다. 특히나 일제시대(1931)에 조선미술전람회에 공예부가 신설된 이후 일본과 일본을 통해 들어오는 새로운 공예의 자극이 심화되었다. 선전에 공예부를 신설한 것이 공예발전의 장애와 공예개념의 혼란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우리 전통의 재정립에 소홀했던 점이 또한 문제였다. 근대까지 공예는 생활과 실용에 기반을 두고 어느 정도 제작되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미술로서의 공예와 대량 생산의 산업공예로 이분되었다. 이는 무엇보다도 일본에 의한 타율적인 생활의 변화에 기인한다. 1945년 이전, 즉 일제식민지시대는 공예의 전통적인 요소와 실용과 생활적인 측면이 어느 정도 지속되어왔다. 그러던 것이 해방 이후 미국과 서구의 조류에 떠밀려 사상의 혼돈을 가져오게 된 측면이 있다. 1950년대에는 서구적인 산업이 시작되긴 했으나 오늘날과 같은 현대적 산업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한 여건에서 수공업은 그것과 무관하게 수공예 나름대로의 활발한 활동도 하지 못했다. 당시는 수공예가가 기계적인 메카니즘으로서의 산업체에 필요한 존재, 즉 산업디자이너로 활동할 수도 없던 애매한 시기였다. 아울러 초창기 미술대학의 응용미술교육 또한 직능적이고 현실적인 교육을 실시하지 못하다가 디자인 교육이 세분화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와서야 가능했다. 한편 1950년대에는 국가적인 차원의 미술전람회인 국전에 공예부가 설치되어 공예가의 신분이 갑자기 예술가로 격상되었고, 산업생산과는 전혀 관계없이 명분상으로는 전통공예의 현대화를 내세운 일품공예로서 참가하게 된 것이다. 초창기에는 전통나전칠기나 도자기를 만들던 장인들이 많이 참여하였고 그러한 패턴이 미술전람회 형식으로 출발되었기 때문에 공예라면 의래 전람회의 미술품으로서의 공예라는 생각이 굳어지게 되었다. 1950년대의 공예는 어느 정도 현실과의 접근을 시도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갖는 공예개념을 예술, 또는 미술로서 고정시키게 된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술로서의 공예개념은 일본의 경우 이미 19세기 초부터 보편화되었고, 서구의 경우도 급속한 산업발전으로 인해 개인공예가의 출현이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나타났다. 1960년대부터 여러 다양한 사조의 경향과 함께 오늘날의 공예는 더욱 미술의 한 분야로서 인식되고 있다. 일제시대에 활동했었던 대표적 장인들은 건칠을 했던 강창원이나 나전칠기를 했던 강창규, 김진갑 및 자수의 윤봉숙, 노영원의 차도구 등의 작업을 꼽을 수 있다. 또한 한홍택은 동경 도안전문학교를 졸업, 산업미술과 디자인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고 이순석, 유강열 역시 다자인, 공예와 판화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던 이다. 이들의 작업에서는 나름대로 엄격한 장인정신이 스며들어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인 심사위원들에 의해 나전칠기나 자수 그리고 벼루 등 일본인들의 기호에 맞고 한국 공예의 독특한 맛이 있는 것만이 선정되고 논의되었다는 점은 문제였다. 1960년대 들어와 공예가들과 공예가들의 창작활동 그리고 그들이 제작한 공예품들을 현재 우리의 문화상황 속에서 뚜렷한 하나의 행위와 활동으로서 인정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1960년대의 공예가들은 미술대학에서 공예 교육을 받았고 순수미술품으로서의 공예작업을 교육받은 세대들이다. 오늘날의 공예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 하나는 미술대학에서 수공예 교육을 받고 배출되어 자신의 창작활동을 하는 유형이다. 다른 하나는 여러 지방의 전승공예 현장에서 전통기법을 통해 작업하는 유형이다. 한국의 미술지형 속에서 소위 응용미술 원리였던 공예는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산업디자인에 대한 수요확대, 1960년대 가속화된 정보화와 영상분야에 대한 폭발적 관심 등으로 상대적으로 위축되면서 더 이상 응용미술의 본류가 아닌 변방, 혹은 과거의 유물정도로 치부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대학에서의 현대공예 교육이 1970년대 중반부터 정착되기 시작된 이래 대부분 대학교수로 흡수된 한국의 1세대 현대공예작가들의 행보와 고질적인 폐쇄성은 작품활동과 교육에서 공히 공예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들 대부분이 추종했던 1980년대를 횡행한 작업들, 소위 ‘오브제’라는 말로 대표되던 공예의 순수조형주의는 매우 자폐적인 작업이었다. 극소수를 예외로 한다면 이전의 공예작업의 내용이었던 기능(쓰임새로서의 공예적 가치)를 대신할 작업내용을 공예가 자신이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다. 이 공예가들의 순수 작품은 아무 검증이나 비평의 장치를 갖지 못한 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공예 작업에서 정체성의 혼돈, 이로 인한 전공자들의 목표의식 부재는 이 분야가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하기에 힘겨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최근 한국 공예계는 공예의 사회화를 주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가들은 아래와 같다. 한국건축의 창살과 가구에서 볼 수 있는 크고 작은 면분할을 재구성하여 형상화하고 있는 박수철은 주로 모사, 면사, 운사 등 은은한 재질감을 갖고 있는 재료를 평직과 스리트기법으로 직조하여 차분히 가라앉는 정적인 미를 표출하는 타피스트리 작품을 주로 선보였다. 성옥희는 원래 타피스트리가 가진 장식적 성격보다 회화성이 지배적인 부드럽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표출해왔다. 이신자 역시 그러한 범주에서 거론할 수 있는 작가다. 수직면, 부직포 등의 재료에 납방염, 전사염, 퀼팅, 미싱 스티치 등 다양한 기법을 구사한 기하학적 형태의 유니트를 자유롭게 배열, 장식적인 효과를 추구하는 장연순의 작업도 눈에 띈다. 그 같은 측면에서 백태호 역시 순수 회화적인 섬유작품의 세계를 선보여왔다. 실크에 그림을 그리고 다림질을 한 후, 다시 찌는 등의 공정을 거치는 바틱 페인팅 기법으로 회상적인 풍경이나 동화적인 이야기를 묘사하는 이해선 등도 있다. 서재행도 비슷한 범주에서 논할 수 있는 작가다. 섬유작업이 좀더 확장되고 순수 작품적인 차원으로 나가는 경우는 송번수, 정경연 등이 있다. 통영의 나전칠기를 수업한 후, 그 같은 탄탄한 전통 공예의 바탕 위에서 한국적인 의장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목칠공예품의 작가로는 김성수가 있다. 좌우대칭과 기하학적 패턴의 반복을 통한 견고한 구성력과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최승천의 목공예도 주목된다. 느티나무, 랭가스 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모자거리나 잡지꽂이, 탁상시계, 아동용 흔들의자 등 실용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작품들을 민예품과 같은 소박한 양식으로 제작하는 곽대웅과 함께 홍송, 박달, 화류, 흑단 등의 목재가 가진 재질을 충분히 살려 실용의 측면을 아우르면서 고전적 소재를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하는 김덕겸도 주목된다. 그런가 하면 분청으로 일관한 윤광조는 귀얄로 백토분장한 그릇에다 자유분방하고 소략한 필치로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분청사기의 맛을 살려내는 작가다. 황토 빛 태토에 매흙칠한 듯한 분장의 부드러움, 수수하면서도 든든한 기형에다 시원스런 무늬 등 재료와 표현의 조화를 잘 이루어내고 있다. 면과 각으로 되살린 백자의 멋을 지닌 김익영의 작업은 전통적인 백자의 형태감과 순도 높은 백색을 주조로 엷은 담청색이 감도는 깊이를 가지고 있다. 주로 착색점토를 사용하여 기형을 만든 후, 백토로 반복적인 문양을 상감한 작품을 제작한 조정현은 전통적인 기형과 우리의 분청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하고 자유로운 문양을 차용하고 있다. 전통도예의 부담을 벗어나서 단순화된 기하학적 형태를 추구해 온 신광석은 그릇의 기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도자 조각을 통해 조형적인 관심을 강조하고 있다. 간결한 생김새와 문양으로 백색과 조화를 이루며 현대의 생활건강과 접목되는 박영숙의 백자작업은 전통계승의 작업으로 의미있는 작업이다. 신상호는 도조의 영역을 확장시키며 동물의 형태와 다양한 형상을 제작하고 있다. 우관호 역시 현대도조의 새로운 가능성을 넓혀나가는 작가다. 한애규는 도조를 통해 여성적인 메시지와 친근한 형상을 통해 대중적이며 문학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절제되고 속도감 있는 선을 표현해 사유의 공간을 드러내고 있는 최성제의 분청작업도 있다. 판금기법을 구사하면서 절제된 선에 의한 현대적인 기형을 강조하는 김승희는 은, 황동, 적동 등의 재료를 혼합, 회화적인 표면처리를 보여주고 있다. 완벽한 공예기술로 성취되는 정교함, 깨끗함, 기하학적 간결함, 우미한 형태의 추상성으로 요약되는 유리지의 작품은 서정적인 자연의 모티브를 보여줌과 함께 최근에는 장례와 연관된 공예품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정용일의 금속공예는 작품성과 실용성의 절묘한 조화를 추구하는 작업이다. 목조에는 인위적인 외형성을 거부하고 내면의 유연한 격조를 추구하면서 전통의 절제미를 형성하는데 최병훈의 목조작품을 들 수 있는데 그의 화두는 자연주의와 미니멀리즘이다. 그런데 이런 경향이 한국 작가들에게 상당히 많이 공유되는 특성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