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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 양식의 조정과 침체의 시기: 1993년 이후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이렇게 고조되었던 민족극 계열 마당극은, 1992년을 계기로 그 기세가 수그러들기 시작한다. 야당 출신이면서도 여당을 기반으로 당선된 김영삼 정권의 시작은, 한편으로 중간층 시민들의 형식적인 민주주의적 요구의 상당 부분을 충족시켜주는 한편 기존의 보수층들의 이해관계를 크게 해치지 않는 방향의 정책을 펴나감으로써 대중의 전면적 민주화 실현을 위한 노력이 또다시 부분적 실패로 돌아갔음을 보여주었다. 즉 김영삼 정권 시기는 극단적 비민주적 상황을 벗어난 데에서 오는 안정감과, 대중의 정치적 노력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데에 대한 무력감이 겹쳐,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이 팽배하고 기존 조직의 응집력은 약화된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까지 대중의 정치적인 적극성과 집단성을 바탕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민족극 계열의 마당극이, 대중의 관심사가 집단적으로 응집되지 않는 상황에서 제대로 공연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 말에 구축해놓았던 노동자, 농민에게로의 독자적 유통구조 역시, 대중운동의 약화로 크게 훼손되었다. 이 시기의 마당극은 크게 네 부류의 활동 방식을 보인다. 첫째,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노동현장 등 기층민중의 삶의 현장과 만나는 순회공연, 둘째, 기성연극계의 공연공간 안에서의 공연, 셋째, 각 지역을 기반으로 한 행사를 기획하거나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방식, 넷째, 비전무인 대상의 연극교육 등이다. 첫째의 활동방식은 1990년대 후반까지 부산의 놀이패 ‘일터’와 서울의 극단 ‘현장’이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놀이패 ‘일터’만이 이러한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는 노동현장에서 연극 공연의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데, ‘일터’가 연극만이 아니라 노래 등 다른 장르의 공연에 많은 시간을 투여하고 있는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은 달라진 노동환경 속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갈등과 일상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둘째의 활동방식은, 1990년대 중후반 크게 확대되었으나 2000년대 들어서서 다시 줄어드는 양상을 보인다. 즉 마당극의 유통 통로가 사라짐으로써 기성연극계의 연극시장 안에서의 활로를 적극적으로 모색했던 시기가 있었으며, <밥>, <점아 점아 콩점아> 등 이전 시기의 수작들이 매우 긴 장기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관객의 집단성과 자발성이 낮은 기성연극계의 공간이 마당극의 본질적 특성과 배치된다는 모순을 극복하기 힘들었다. 그런 가운데에, 독자적인 관객 동원능력을 가진 교사극단 ‘징검다리’의 <블루 기타> 등은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으며, 상대적으로 실내 공간에의 적응이 쉬운 일인극으로 김헌근 출연의 <호랑이 이야기>, 유순웅 출연의 <염쟁이 유씨> 등이 실내 극장에서 성공하였다. 놀이패 ‘한두레’의 <밥꽃수레> 역시 드물게 실내 극장에서 성공한 작품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의 활동방식은, 이 시기에 들어서서 특별히 확대된 것으로 할 수 있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급격히 늘어난 지역의 축제는 마당극의 또 다른 장이 되었는데, 이미 제작된 작품을 공연하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축제 전체를 조직하거나 해당 축제에 적합한 작품을 새로 창작하는 등, 각종 이벤트는 행사적·축제적 연극으로서의 마당극의 창작역량이 활발하게 발휘되는 공간이 되었다. 이 중 고부와 정읍에서 열렸던 동학농민전쟁 100주년 기념제 등은 전국의 마당극 역량이 총집결되어 만들어낸 성공적인 사례였다. 또한 그 해의 우수한 마당극을 서울, 목포, 광주, 성주 등 전국 몇 개 지역에 연극제 형태로 순회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공연의 장을 만들었다. 한편 1997년 이후의 과천마당극제는 세계 야외극과의 교류의 장이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장을 통해 대전의 ‘우금치’는 전국을 대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역량 있는 단체로 성장하였다. 넷째, 비전문인 대상의 연극교육은 전국의 상당수 마당극 단체들의 일상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마당극이 지닌 교육연극적 특성이 이러한 활동에서 충분히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교육연극 전문단체인 ‘해마루’ 등이 창단되어 수도권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시기의 활동이 그 양상으로는 다기해졌으나 여전히 쇠퇴와 침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전향적인 내용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데에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와중에도, 과거 역사를 다룬 작품으로 <칼노래 칼춤>, <밥꽃수레>, 청소년이나 여성 등 새로운 문제들을 포착한 작품으로 <블루 기타>, <북어가 끓이는 해장국> 등의 수작이 없는 것은 아니나, 집단화되지 않은 새로운 관중층의 일상적 문제들을 마당극적 표현방법으로 포착해내는 관행을 아직 확립하지 못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 - 이영미(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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