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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의 비약적 발전의 시기: 1987년~1992년

제5공화국 시기에 성장한 민주화운동 세력의 저항은 1985년 경부터 정부의 강경한 공세로 이어졌으며, 1986년에 이르러서는 수많은 공안조직사건이 양산되면서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었다. 정권재창출을 기도하는 정권에 맞선 민주화운동 세력의 저항은 1987년 6월 대학생과 진보적 지식인을 넘어선 중간층 대중으로까지 계층적으로 확산됨(이를 6월항쟁, 6월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른다)으로써, 신군부 출신인 노태우 민정당 대표로 하여금 직선제 개헌안에 의한 대통령 선거, 시국관련사범 석방, 언론자유 보장 등 시국수습방안을 발표하도록 하였다. 이른바 6·29선언이라고 부르는 이 수습방안의 발표와 곧 이어진 대통령 선거에 의한 기존 지배세력의 정권 재창출은, 신군부 출신의 지배층이 변화하지 않은 채 상대적으로 민주적인 유화적 지배가 이루어지는 제6공화국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편 대학생과 지식인을 비롯한 중산층 중심의 6월항쟁은, 기층노동대중의 생존권 투쟁으로 확산되어 폭발적인 7·8·9월노동자대투쟁으로 발전되어 나간다. 1980년 이후 거의 사라졌던 민주적인 노동조합이 바로 이 시기를 통해서 새롭게 만들어졌고, 노동운동은 비로소 전국 규모의 대중운동의 양상을 띠게 된다. 민족극운동을 비롯한 여러 장르의 진보적 예술운동은 이전 시기보다 좀더 넓어진 합법적 공간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반(半)합법적 활동 영역도 넓어졌다. 이 시기의 마당극은 이제 새롭게 열린 상황에서 노동자 대중이라는 새로운 관중층을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다. 1980년대 초중반의 작품들이 지녔던 관념적 민중지향성과 구체적 리얼리티의 결여라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민족극운동의 마당극 창작자들은, 노동자대중의 삶을 직접 체험하고 이들을 관중으로 직접 만남으로써 그 과제가 가장 빨리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7·8·9월노동자대투쟁 이전부터 조심스레 그 시도를 하고 있었다. 1987년 봄에 이루어진 극단 ‘천지연’의 <쇳물처럼>과 놀이패 한두레의 <어떤 생일날>의 두 작품은 이런 의미에서 이 시기 노동연극의 첫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이 두 작품은 소품임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적 관념성의 한계를 벗고 노동자 대중의 구체적 리얼리티에 접근함으로써, 이후 노동연극의 전성시대를 예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폭발적인 노동자대투쟁을 겪으면서 이루어진 민주노조의 조직적 기반을 바탕으로, 민족극 계열의 마당극은 전국적인 순회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극단 ‘현장’의 <횃불>, <노동의 새벽>, <돈놀부전>(이상 박인배 연출), <껍데기를 벗고서>(김영만 연출), 놀이패 ‘한두레’ <우리 공장 이야기>, <일터의 함성>, 놀이패 ‘일터’의 <흩어지면 죽는다>, <동지여 너와 함께라면> 등은,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의 이야기를 담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노동연극이다. 이들 노동연극은 작품 당 수십 회 내지 수백 회의 전국적 순회공연을 통해, 지속적으로 집단적이고 자발적인 관중을 만나게 되었고, 그간 십여 년에 걸친, 양식 실험과 대중적 확산 등의 마당극의 성과는 이로써 가장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또한 1989년 경부터 시작한 대중적인 농민운동을 바탕으로 대전 놀이패 ‘우금치’ 등이 농민적인 리얼리티를 담은 마당극 <호미풀이>, <아줌마 만세> 등으로 농촌 순회공연을 함으로써, 노동연극과는 또 다른 성과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기층민중을 대상으로 한 노동연극과 농민연극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즉 마당극 양식의 대표적인 특성들이 노동연극과 농민연극을 통해 가장 모범적으로 집약되어 드러나게 된 것이다. 또한 이 시기는 마당극 창작집단이 전국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됨으로써, 집단 나름의 독특한 색깔을 지닌 작품을 생산하는 시기로, 본격적인 전국화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이들 지방의 극단들은 대부분 그 지역의 역사와 대중적 경험에 근거하여 지역 특성이 강한 작품을 만들어내었으며, 그 지역의 방언과 민속예술적 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광주의 놀이패 ‘신명’의 1980년 광주항쟁을 다룬 작품 <일어서는 사람들>(김정희 작, 연출)은 광주 극단 ‘토박이’의 <금희의 오월>과 함께 광주항쟁 관련 작품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또한 제주도는 1989년 <4월굿 한라산> 이래 매해 4·3제주민중항쟁을 소재로 한 작품을 끈질기게 다루어 내고 있다. 부산 극단 ‘자갈치’는 <복지에서 성지로>, <민주꽃신바람>, <뒷기미 병신굿>, <날거라, 아침 갈매기야!> 등 채희완의 독특한 작가적 색깔을 담은 마당극들을 발표하며, 대구 ‘함께 사는 세상’은 거창 양민학살 사건을 다룬 <이 땅은 니캉내캉>, 교육문제를 다룬 <선새앰요!>, 노동연극인 <노동자, 내 청춘아!> 등을, 청주 ‘예술공장 두레’는 농촌문제와 노동문제를 다룬 <황소울음>, <월급도둑> 등을 발표하면서 지역적 기반을 다져나갔다. 이 시기의 활발한 공연활동에 비해 기성연극계 안의 극장공간에서의 공연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이미 마당극의 중심적 활동의 중심이 마당극다운 마당극이 가능한 노동현장과 농촌현장, 혹은 지역의 활동공간으로 옮겨졌고, 극장 공간에서의 공연은 민족극 계열 마당극의 고정 관객을 위한 배려로 이루어지는 짧은 기간의 공연과, 이들 공연의 공식화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전국적인 연극제 <민족극한마당>(1988년 이래 매해 계속되었다)가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1985년 이후 ‘연우무대’가 마당극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성연극계의 중심지라 할 만한 서울 동숭동 극장가에서의 마당극을 공연할 수 있는 민족극 계열 집단은 극단 ‘아리랑’ 정도에 불과했으며 이들의 <갑오세 가보세>, <불감증>, <점아 점아 콩점아>, <격정만리>로 이어지는 양식혼합적 작품들만이 있었을 뿐이다. 기성연극계의 공간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민족극 계열의 마당극은, 노동현장과 농민현장을 중심으로 한 마당극다운 마당극을 발전시키고 기존의 연극시장 이외의 유통구조를 확보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마당극의 성과를 기성연극계와 공유하고 상호영향을 주고받을 기회를 만들지 못했고, 기존 연극시장 바깥의 현장중심적인 유통 방식이 취약해지는 시기에 이러한 성과를 지속시킬 수 없었다는 문제점을 남겼다. 한편 이 시기의 고조된 마당극의 성과는, 1989년 말부터 대규모의 총체공연물인 ‘노래판굿’을 가능하게 하였다. <꽃다지>라는 이름으로 1989년 말부터 1995년까지 매해 한두 차례씩 공연된 이 대형총체공연물은, 관중 집단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진행된다는 점에서 마당극과 그 기본원리를 공유하되 연극적 장면뿐 아니라 노래와 춤, 풍물 등이 편집되듯 구성된 작품이다. 공연의 규모는 대학의 노천극장이나 대강당에서, 실내 공연의 경우는 회당 1천 내지 3천명, 야외 공연의 경우는 5천에서 1만명 정도의 관중을 놓고 진행될 정도로 매우 큰 규모이다. 또한 이 시기는 1970년대 말부터 시도되었던 비전문인들에 대한 연극교육 내지는 교육연극 지도가 활발하게 진행된 시기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러한 연극교육은, 정돈된 교안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였고, 전문창작과의 상호관련성이 제시됨으로써 예술발전에 있어서의 의의가 강조되기도 하였다. 연극계 내의 마당극은, 1980년대 말에도 여전히 MBC 마당놀이가(김시라 작·연출의 <품바>를 제외한다면) 그 정통의 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마당극은 관중 집단과 대화를 나누듯 하는 연기 방법과 장면 조직 등에서 다른 연극에 스며들듯 영향을 주었다. 극단 ‘미추’를 창단함으로써 ‘민예’로부터 독립한 손진책은 한편으로 매해 마당놀이를 계속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마당극 양식이 아닌 다른 작품에서 마당극의 경험이 스며들어 있는 질감을 창출해 내었다. 또한 1990년 이후부터는, 서양 번역극투의 연기법과는 다른, 1980년대 ‘연우무대’와 ‘아리랑’ 등에서 시도했던 한국 보통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질감을 지닌 연기가 크게 확산되었으며, 희극이나 희극적 장면의 양이 늘어남에 따라 마당극이 지닌 한국적 질감의 희극적 장면과 그 연기법 등이 다른 연극에 영향을 주었다. - 이영미(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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