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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의 맹아기: 1960년대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으로 시작된 1960년대는 한국의 현대 예술문화운동의 싹이 트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연극 분야뿐 아니라, 문학과 미술 분야의 예술운동의 맹아가 모두 1960년대 중반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존의 예술문화에 대한 반성적 문제제기를 한 담당자들은 바로, 대학에서 4·19를 경험한 세대였던 것이다. 4·19는 분단과 냉전체제의 반공이데올로기와 미국의 원조로 유지되어 온 이승만의 비민주적인 자유당 정권을 국민들의 힘으로 붕괴시킨 최초의 역사적 경험이었다. 그로써 세워진 민주당 정권은 1년 후 5·16 군사정변으로 단명하고 말지만, 이를 통해 학생들은 해방 후 교과서적으로 배웠던 민주주의의 대의에 대한 확신과 통일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가지게 되었다. 3년의 군정기를 거친 후 탄생한 박정희의 공화당 정권은 대외의존적인 급속한 경제개발을 추진하며 한·미·일 3국의 동북아 지역통합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한일국교정상화와 베트남전쟁 파병을 추진한다. 한일국교정상화 시도는 대학생을 비롯한 광범위한 국민적 반대(비록 구조적 인식의 소산이라기보다는 역사적으로 축적된 반일의식에 기초한 것이었지만)에 부딪치게 되는데, 1964년 한일협상 발표에 이르러서 대학은 4·19 이래 최대 시위인 이른바 6·3한일회담 반대운동을 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1965년 한일협정은 여당만의 단독국회에서 정식 비준된다. 이렇게 1960년대의 대학생과 지식인들은 초보적인 민주주의 의식과 반일의식으로 대표되는 반외세의식을 지니게 되었고,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 속에서도 대중적 시위와 진보정당 결성 시도가 가능했을 정도로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지켜졌던 것이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대학생과 젊은 지식인들의 진보적 의식은 예술문화 분야에서도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드러날 수 있었다. 서울대 문리대 연극반에서의 몇 가지 움직임은 후에 이를 중심으로 마당극을 탄생시키는 모태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크게 두 가닥이라 할 수 있는데, 하나는 창작극에 대한 관심이며, 다른 하나는 전통민속연희에 대한 관심이다. 한국인이 쓴 희곡을 바탕으로 한 창작극을 공연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당시 외국 번역물 중심의 한국 연극과 대학연극 풍토에 대한 반성의 일환으로, 한국의 사회 현실에 대한 연극적 형상화를 향한 갈구였다. 즉 한국 현실에 대한 형상화와 통찰은 한국 희곡이 가장 풍부하게 담고 있기 때문인데, 바로 이 점이 창작극에 대한 관심의 핵심이었다. 이는 외국의 사회비판적인 작품과 작가에 대한 관심을 포함한, 연극의 순수주의 극복, 리얼리즘정신 회복에 대한 관심이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는 같은 시기 문학 분야에서의 ‘순수참여논쟁’과 계간지 <창작과 비평> 창간, 미술 분야의 동인그룹 ‘현실’(‘현실과 발언’의 전신) 결성 등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한편 전통민속연희에 대한 관심은 일제 식민지의 잔재를 청산하고 올바른 예술사관을 확립하고자 하는 민족의식과 관련 있다. 여태껏 일제시대 이래 일본과 서양으로부터 이식되어 온 흐름만을 예술로 인정하던 사고를 반성하고, 일제 식민지 침탈 이전에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었던 판소리, 민요, 탈춤과 인형극 등을 예술로 인정하며, 이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고 연구하며 현대의 창작작업과의 접맥을 모색하는 시도를 했던 것이다. 당시 연극반에서는 마당극과 비슷한 <원귀 마당쇠>라는 작품을 공연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작업은 이 시기에 시작한 국학에 대한 새로운 연구 바람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맹아적인 작업은 그 후까지 조직적으로 전승되지는 않지만, 1970년대 이후 마당극이 본격적으로 탄생하는 데에 중요한 토대로 작용한다. 이러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고 서울대 연극반에서 활동을 했던 성원 중 허술과 조동일은 이후 학문적 관심으로 이를 발전시켜 나갔다. 특히 조동일은 <한국가면극의 미학>(한국일보사, 1975), <탈춤의 역사와 원리>(홍성사, 1979) 등 탈춤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서를 내어놓아 1970년대 탈춤부흥운동과 마당극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해주었고, 민요, 판소리 등 구비문학 전반에 걸친 넓은 연구로 한국문학사 서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 두 사람과 달리 김지하는 1960년대의 이러한 경험을 1970년 <오적>을 비롯한 판소리체의 담시(譚詩) 창작으로 연결시켜 우리 나라 근현대시사의 독특한 영역을 열어놓는 한편, 1970년대 초 본격적인 마당극의 탄생에 직접적으로 간여한다. - 이영미(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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