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개요

자세히보기

다양한 극의 등장과 발전시기

1980년대 연극, 연극 인력의 ‘백화제방(百花齊放)’은 1990년대 다양한 연극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 시기는 연극인들에게 연극의 대(對)사회적 발언과 의무감이 팽배했던 1980년대와는 다른 방식을 요구했다. 민주화 이후 자유화 물결, 그리고 영상시대의 도래 등으로 연극은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됐다. 1990년대 초반은 그런 변화에 적절한 대응방식을 찾지 못해 고전하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자유화는 분명 많은 의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여성 연극인들의 힘이 무게를 얻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이다. 미디어의 발달로 연극배우들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스타가 탄생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 박정자, 손숙, 윤소정, 윤석화, 김지숙 등이 자리잡았다. 이들은 연극을 통해 대중성과 흥행성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윤석화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 박정자의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등이 스타 배우의 가공할 힘을 보여준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이밖에 여성 연출가로는 강유정, 최형인, 한태숙, 김아라, 극작가로는 정복근, 오은희, 김명화 등이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성(性)의 불균형이 해소되는 과정 못지않게 1990년대 연극은 형식면에서 다양한 변화를 모색한 시기이기도 하다. 놀이극, 제의극, 총체극 등이 크게 유행했다. 이런 형식의 자유로움은 앞에서 밝혔듯이 시대적 변화의 연극적인 반영이기도 했다. 거지극 <품바>(김시라 작·연출, 1983년)의 지속적인 인기가 그런 변화에 일조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무렵 놀이연극의 중심에 놓여야할 인물은 극단 미추의 손진책과 극단 목화의 오태석이다. 물론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도 빼놓을 수 없다. 손진책은 1980년대부터 ‘MBC마당놀이’를 통해 대중적인 풍자 해학극의 한 유형을 개척했다. <허생전> <별주부전>을 필두로 지금까지 수많은 레퍼토리를 만들었다. 오태석은 1970년대 이후 유니크한 연극세계를 구축해온 놀이극의 대명사다. 전통 탈놀이를 차용한 <쇠뚝이놀이>(1972년)를 시작으로 <백마강 달밤에>(1993년)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씨는 전통연희의 현대적 재창조에 몰두해 오고 있다. 전통의 재발견과 변용, 나아가 그 위에 당대의 연극 문법을 구축하려는 작업에 이윤택의 이름을 외면할 수 없다. 부산 출신의 이씨는 1989년 연희단거리패를 이끌고 상경해 <시민K>를 서울연극제에 선보이며 그야말로 벼락스타가 된 인물이다. 장례의식을 놀이화한 <오구-죽음의 형식>을 비롯해 <바보각시-사랑의 형식> <문제적인간, 연산> <시골선비 조남명>에 이르기까지 통념에 도전하는 많은 시도들이 그로부터 나왔다. 선배들의 이런 놀이극의 전통을 이어 받아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연출가로 조광화, 장진, 박광정, 윤우영 등을 꼽을 수 있다. 중견 극작·연출가인 이상우는 전통에 기반을 두지는 않고 있지만, 특유의 알레고리를 가미한 풍자극으로 자기만의 차별적인 길을 걷고 있는 인물이다. 2000년 선보인 <마르고 닳도록> 등이 이런 계열의 최근작이다. 이밖에 정일성, ·강영걸, 정진수, 김도훈·, 김광림, 심재찬, 김철리, 채승훈, 김명곤, 윤영선, 최용훈, 이성렬, 김동현, 박근형, 김광보 등이 1990년대 연극의 다양성에 일조하면서 지금도 맹활약하는 연출가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립극단은 일반 극단과 소극장에서 할 수 없는 대형 창작·번역극의 보루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 하고 있으며, 예술의전당은 ‘오태석 연극제’ 등을 통해 1990년대 연극을 살찌우는데 노력했다. 연극인들의 이런 불굴의 노력 덕분에 우리 연극은 상업논리가 팽배한 이 사회에서 꺼지지 않은 생명력을 유지하며 늘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정재왈(연극평론가·LG아트센터 운영부장)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