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개요

자세히보기

춤 르네상스와 백화제방의 양식적 실험

80년대에 들어와 춤계는 무엇보다도 양적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70년대 이래 대학의 무용과가 속속 늘어나고 웬만한 수준의 춤 공연장들이 건립되며 공립 무용단들이 다수 창설된 것에 덧붙여 소극장이라는 보다 용이한 춤 공간이 춤의 양적 성장을 재촉한 주요인이었다. 이러한 성장 추세는 향후 IMF 시기를 제외하고 근 20년간 지속된다. 이와 같이 우리 춤계에서는 춤이 공연 건수면에서의 양적 팽창을 기반으로 다양한 양식적 실험을 거듭하며 예술춤의 입지를 넓혀간 현상을 춤 르네상스라 한다. 이 시기에는 또한 시민들의 춤에 대한 인식도 크게 호전되었다. 1979년에 정부의 지원으로 창설되어 문예진흥원 예술극장에서 열린 대한민국무용제(현행 서울무용제의 전신)는 80년대 중반까지 해마다 춤계의 새로운 흐름을 대변하고 검증하는 무대로서 무용인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다수의 안무가들이 대한민국무용제를 통해 입신한 것도 그 당시의 일이었다. 80년대 중반부터 국제현대무용제, 한국무용제전 같은 특정 장르 중심의 크고 작은 행사들이 창설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국공립 단체를 제외하면 이전에 민간 단체들에는 드물었던 정례 공연이 80년대에 관행으로 정착되었고, 춤 르네상스는 80년대 중반에 실질적인 단계로 돌입하게 된다. 아울러 문예진흥기금은 다수의 무용인들이 무용 창작과 실험에 나서도록 유도하였다. 춤 르네상스는 80년대 초의 소극장 춤운동에서 발단되었다. 1980년에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은 서울의 공간사랑에서 ‘현대무용의 밤’을 매월 발표회 형식으로 연 것을 필두로 한국무용아카데미가 이 공간에서 발표회를 꾸준히 가졌다. 80년대 중반 이후에는 몇 해 서울의 창무춤터와 바탕골극장이 소극장 춤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당시에 이들 소극장들은 일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무용인들에게 춤 예술 작업의 지속성을 보장하고 창작 경험을 축적케 함으로써 양식을 실험하는 장으로서 각인되었다. 전국적으로 70년대에 연간 20회 정도 공연되던 춤은 80년대 중반에 연간 1백회를 기록하고 1990년대 초반에 500회를 넘겨 2000년대 들어 연간 2천회 이상 공연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춤 르네상스기 시작되던 시기를 분수령으로 해서 무용에서 나타난 주요한 변화는 첫째 춤을 여흥이 아니라 예술로 인식하게 된 사회적 변화, 둘째 춤이 예술로서의 짜임새를 갖추게 되거나 의식하고 예술적 메시지에 눈뜨기 시작하였다는 점으로 압축된다. 이후 새롭게 모색된 춤 조류는 양식을 기준으로 하면 다음의 세 가지로 대별된다. ·첫번째, 한국무용에 바탕을 두고 현대적인 양식을 추구하는 조류 ·두번째, 현대무용에 바탕을 두고 한국무용과의 접목을 추구하는 조류 ·세번째, 현대무용에 바탕을 두고 발레의 기법을 활용하는 조류 그 가운데 가장 현저한 것은 첫 번째 조류이다. 80년대 중반부터 가시화된 창작춤을 통해 현대적 주제와 춤 형식을 갖는 한국무용이 형성되는 단계가 전개되었다. 이는 80년대 초 이래 현대무용 분야로부터의 자극에 눈을 뜨고 현대적 창작을 지향하게 된 바가 컸다. 새 한국무용은 전통적 기교와 호흡법에 바탕을 두고 춤의 전통적인 제의적 기능과 현대에 새로 추가된 문명비판적 기능을 수렴하는 특징을 보였다. 이들 춤은 이전 한국무용의 낭만주의적 분위기, 과도한 감정 노출, 집단적인 매스게임풍의 구성을 탈피하여 보다 정련된 춤 구성을 지향하였다. 여기서 한국무용은 역동성, 내적 긴장감과 같은 인상을 더하고 움직임은 발굴되고 해체되어 모난 동작을 비롯 다양한 움직임들을 동원하였다. 80년대 전반까지 현대무용은 춤계에서 창작을 선도하였다. 80년대 중반부터 현대무용은 다양화되어 이제는 다원적인 현대무용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두 번째 조류에서 현대무용은 한국의 민담, 설화, 제의를 현대무용의 어법으로 묘사하는 것을 주 경향으로 드러내고 있다. 세 번째 조류는 현대무용 분야에서 전반적으로 드러났다. 발레 기법의 활용을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그러한 활용은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발레는 1980년대까지 사회적 여건과 관념의 벽 때문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고 또한 고전발레를 맴돌았다. 90년대 들어 해외에서 직접 수학한 발레 무용수가 늘어나고 해외 발레 단체들의 한국 내한 공연이 늘어나며 해외 안무가들이 한국에서 자주 객원 안무를 맡음으로써 발레 레퍼토리들은 완성도가 높아지고 다양해지기 시작하였다. 이 동안 유니버설발레단, 국립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의 활약에 힘입어 발레는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애호받는 춤 장르가 되었다. 이 시기에 새로운 춤 조류는 춤에 대한 개념의 전환과 궤를 같이 하였다. 이 개념의 전환은 무엇보다도 춤을 예술로서 재인식할 것을 80년대에 강하게 환기하였으며, 그에 따라 춤에 필요한 예술적 형식과 내용의 문제에 무용가들은 새로운 태도로써 접근하였다. 한국무용을 한국 전래의 무용 어법과 소재에 국한시키지 말고 자신의 주체적 형식과 내용을 덧붙여야 할 필요성도 춤의 변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런 추세에 따라 전래의 무용 어법을 현대무용 및 발레와 동떨어진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그들 장르의 어법과 동등하게 보면서 예술적 어법으로 성장하는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무용은 전통의 압력을 벗어나되 한국적 양식으로 구분될 수 있는 현대무용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의 가장 현저한 두 가지 징후는 춤을 한국무용·현대무용·발레로 분류하던 3분법이 와해되었다는 점, 어느 장르에서건 전통과 현대성 사이에서 한국의 춤들이 나름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 춤의 어휘는 여전히 존중받고 있으나 전통춤 어휘를 점진적으로 개량하던 이전의 추세를 벗어나 동작소 단위로 해체해서 부분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증대하였다. 80년대에 특히 한국무용에서 전통춤의 동작절과 같은 어휘와 춤 대형과 같은 틀 그리고 전개 방식을 어느 정도 고수했던 데 비해 90년대의 춤은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무용가 자신의 자율적인 미적 판단에 일임하였다. 90년대의 춤들에서는 전래의 한국무용의 맵시뿐만 아니라 그로테스크한 무정형의 미, 스펙터클한 무용극까지 어떤 소재와 미적 범주도 차별을 받지 않고 형상화되었으며, 작품마다 강조하는 바가 일치하지 않는 비균일성이 현저해졌다. 비균일성은 바로 무용가마다 개성적 지향점을 추구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춤 르네상스가 진척된 20년간 한국에서 춤이 완성도 높은 양식을 향해 실험을 지속해 왔음을 대변한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