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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대접(3001193) 크게보기 3D 뷰어
백자대접(3001193)
국적/시대
한국/조선
재질
도자/백자
용도
음식기
소장처
해군사관학교박물관
3D프린팅 가이드
추천재질 1 : 파우더(SLS/DMLS)
추천재질 2 : 플라스틱(FDM/FFF)
원천유물설명
백자는 백색의 바탕흙(태토, 胎土)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 한 자기를 말한다. 백자는 고려 초기부터 청자와 함께 일부가 만들어졌으며, 그 수법은 계속 이어져 조선시대 자기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백자는 무늬를 표현하는 수법이 물감(안료)의 종류에 따라 순백자(純白磁), 청화백자(靑華白磁), 철회백자(鐵繪白磁), 진사백자(辰砂白磁)로 구분된다. 15세기 전반에는 백자의 생산이 거의 없었고, 왕실에서 약간을 구워 사용했을 뿐이다. 16세기에는 백자의 발달이 더욱 촉진되며 양질의 백자와 청화백자가 만들어지는 가운데 임진왜란이 일어나 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게 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나라가 크게 황폐하였으며 조선의 도자기 산업도 크게 위축되었다. 17세기 초는 임진왜란으로 생산이 거의 중단 상태에 있다가 전란 후 주로 부장용으로 재 번조되지만 수량은 매우 적었다. 17세기 중기 백자는 유약에 아주 미량의 철분이 들어있고, 태토도 순백이다. 유약은 그물모양의 빙렬이 있는 경우가 많고 표면에 재티가 내려앉아 작은 요점(凹點)이 있는 것도 있으며, 희고 비교적 굵은 모래받침으로 번조 하였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일본의 침략으로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대자본을 투입하여 대규모의 공장을 세워 기계 생산 제품이 대량 생산되었다. 또 무미건조하고, 선의 변화가 전혀 없으나 두껍고 견고하며, 매끈하게 생긴 백자류가 일본에서 들어오기도 하여 우리 전통의 도자기들은 독 깨 그릇과 질그릇을 제외하고는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대접은 입 지름이 넓고 바닥은 입 지름보다 좁은 그릇을 말한다. 이 백자 대접은 백색의 태토에 회색의 유약이 입혀진 것으로서 표면에 광택이 있으며 빙렬이 있다. 그릇 내부 바닥면에는 제작 과정에서 생긴 이물질이 붙어 있으며, 가운데는 1㎝ 정도의 금이 가 있다. 그릇 외부 표면에 유약이 입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으며, 굽은 외부 바닥면에서 튀어나와 있다.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출토되었다.
활용설명
백자 대접의 형태를 그대로 활용하여 주방용품을 개발하였다. 조선시대의 백자에서 느낄 수 있는 청초함과 간결함도 잘 드러나도록 하였다. 대접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그릇으로 주방에 잘 어울리는 친숙한 모습이며 이를 통해 조선시대의 가치관과 조형 의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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