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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막신(3000300) 크게보기 3D 뷰어
나막신(3000300)
국적/시대
한국/조선
재질
나무
용도
신발
소장처
경북대학교박물관
3D프린팅 가이드
추천재질 1 : 파우더(SLS/DMLS)
추천재질 2 : 플라스틱(FDM/FFF)
원천유물설명
나막신은 나무를 파서 만들고 굽을 달아 비 오는 날 신는 신발을 말한다. 보통은 높은 굽을 달아 진 땅에 다니기 좋게 하고, 그것이 닳으면 다시 새 굽을 바꿔 달아서 오래오래 신었다. 굽이 높으면 휘뚝거려 위험하기 때문에 애초에 굽을 안 달거나 굽이 닳은 것을 평나막신이라고 한다. 격지, 목극, 각색, 목리, 목혜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 말기에 나막신으로 통칭되었다. 지방에 따라 나막개, 나모께, 나무신, 목신, 남신, 나막개짝, 토막신, 껏두기, 미엉, 남박신, 나묵신, 나묵개, 나맥신, 나목신, 나목개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나막신의 형태를 보면 평극, 굽이 있는 것, 굽이 없는 것, 굽에 징이 박힌 것 등이 있었다. 재료는 다양하게 사용되었는데 특히 오동나무와 버드나무로 만든 것을 제일로 쳤다. 나무의 속성이 마르면 터지기 쉬우므로 밀을 녹여 겉에다 칠해서 납극을 만들어 신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편편한 나무 바닥에 끈을 매어 발가락이나 발끝에 걸고 다녀 일본의 게다와 비슷하였으나, 차차 발달하여 다른 신 모양과 같아지고 다시 여러 가지 맵시를 내게 되었다. 일본의 게다는 한국의 나막신, 중국의 극이 원류이다. 나막신은 상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신었는데 굽이 높아서 비나 눈이 올 때는 좋으나, 무겁고 활동적이 못되어 말을 탈 때나 먼 길을 갈 때는 신지 않았다. 맑은 날에도 많이 신었으며 특히 어린 남자아이가 신었던 채극은 진신으로서 뿐만 아니라 마른신으로도 신었다. 널리 신겨지다가 1910년 이후 고무신이 등장하자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고 질긴 고무신을 신게 되어 차츰 쇠퇴하여 1940년대를 전후하여서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경우 대개 소나무, 오리나무를 파서 신과 굽을 통째로 만들었는데, 남자용은 좀 더 투박하였으며, 여자용은 측면에 여러 가지 무늬를 그리거나 코를 맵시 있게 팠다. 굽 끝에는 중국의 극처럼 쇠로 된 발을 붙여 닳는 것을 막기도 하였다. 이 나막신은 일반적인 형태와 비슷하며 앞코와 뒤축이 좀 더 높은 편이다. 앞코는 뾰족하며 굽은 낮은 편이다. 앞굽은 좀 더 완만히 깎아 앞으로 기울어지게 되어 있다.
활용설명
나무로 만든 나막신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해서 패션소품으로 활용하였다. 여성용 신발로 높은 굽과 뾰족한 앞코를 그대로 살려서 정확하게 표현한 모습이다. 나무의 질감도 그대로 반영하였으며 오늘날의 패션 아이템으로 폭넓게 활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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