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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데이터
남해군청 남해유배문학 활용신청
URL http://175.125.91.94/oasis/service/rest/other/getNAMN2101
설명 남해군청의 남해유배문학 정보를 외부 개발자 및 사용자가 이를 활용 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API 서비스입니다. 제목, 시대, 왕조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기관명 남해군청
서비스 분야/주제 문화유산 > 역사자료 > 인물 API 유형 REST
등록일 2015-02-24 활용도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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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문화데이터

문화데이터 186

문화데이터
No 제목 내용
186 권세장(權世長) 권세장은 환관 최필웅의 모역에 연루되어 남해로 정배되었다. 영조 29권, 7년( 1731 신해년) 3월 25일 무자 네 번째 기사 <전략>드디어 억경은 벽동(碧潼)으로, 이만은 갑산(甲山)으로, 자근동은 기장(機張)으로, 남하문은 명천(明川)으로, 목성리는 장흥(長興)으로, 수택은 거제(巨濟)로, 권세장은 남해(南涇)로, 노미는... 바로가기
185 김조택(金祖澤) 현감으로 있던 경종 1년(1721)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전라도관찰사를 지내는 등 주로 지방관으로 활약하였다. 그의 집에서는 그 외에도 형인 본택(普澤)·운택(雲澤)·민택(民澤)도 과거에 급제하였고, 강경(强硬) 성향을 띠는 노론 명문가의 후손으로서 노론계의 정치적 성쇠와 함께 부침(?沈)을 거듭하였다. 1722년... 바로가기
184 이사명(李師命) 현종 13년(167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숙종 6년(1680) 춘당대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사간원, 홍문관에서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고, 형조판서, 병조판서에 올랐다. 그러나 1688년 윤세희(尹世喜), 최석항(崔錫?) 등의 탄핵으로 평북 삭주(朔州)에 유배되었다가 숙종 15년(1689) 기사환국 때 사사되었다는 기록이... 바로가기
183 박의손(朴義孫) 세종은 태종으로부터 왕권은 받았으나 병권은 넘겨받지 못했다. 박의손(朴義孫)은 태종의 병권 장악에 따른 피해자 병조판서 박습의 아들로 박습은 반역죄로 처형되었지만, 박의손(朴義孫)은 죄인의 아들로서 남해로 유배되던 중 좌찬역(佐贊驛)에서 도망치다가 다시 잡혀 유배지 남해로 오게 되었다. 이후 세종 4년(1422)... 바로가기
182 조유맹(趙?孟) 아버지 조상찬이 죄가 아닌데도 김봉선에게 모함을 받아 형신을 받고 죽자, 형 조유관과 함께 김봉선을 죽이고 스스로 관에 고했다. 형 조유관은 거제에, 조유맹은 남해에 유배되었는데 풍토병에 걸려 죽었다. 바로가기
181 조성(趙煋) 연려실기술 제34권 「숙종조고사본말(肅宗朝故事本末) 」 기록에 의하면, 경신대출척으로 남해에 유배된 인물로는 조성(趙煋) · 기상진(套尙震) · 김초삼(金楚三)이 있다. 바로가기
180 임홍(林泓) 임홍(林泓)은 1710년 나주에 정배되었다가 호남의 기흉(飢凶) 때문에 1713년 남해현에 이배되었다. 숙종 54권, 39년(1713 계사년) 11월 10일 갑인 첫 번째 기사 호남(湖南)의 기흉(飢凶) 때문에 나주에 정배한 죄인 임홍(林泓)을 경상도 남해현(南涇縣)으로, 이배(移配)하였다. 바로가기
179 이이명(李?命) 숙종 6년(1680)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1705년에 우의정, 1708년 좌의정에 올랐다. 경종 1년(1721) 노론(老論)의 영수 김창집(金昌集)과 이건명(李健命), 조태채(趙泰采) 등과 함께 영조의 대리청정을 추진하였으나 소론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1721년 유봉휘(柳鳳輝) 등의 탄핵을 받고... 바로가기
178 정언신(鄭彦信) 명종 1년(1546) 병과에 급제하여 동부승지, 경기도관찰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589년 우의정이 되어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을 다스리고 위관(재판관)이 되었으나, 서인 정철(鄭澈)의 탄핵을 받아 스스로 모든 관직을 사퇴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정여립의 일파로 모함을 받아 남해에 유배되었다. 유배... 바로가기
177 이영(李翎) 이영은 명종 7년(1552)에 병과에 급제하여 정언, 지평을 역임하고 명종 9년(1554)에 강원도 암행어사를 거쳐 공조좌랑 등의 벼슬을 지냈다. 그러나 뇌물을 받는 등 횡포가 심했다. 명종 17년(1562)에 예조와 이조판서를 지낸 이량의 횡포가 심하자 사림세력들이 이량을 탄핵하였는데, 이영도 이량과 같은 일파로 몰려... 바로가기
176 주연지(周演之) 본명은 최산보(崔山甫)이며 점술가 승려 출신이다. 집권자 최이(崔?)의 문객으로 세력을 얻어 큰 부자가 되었으며 음양술수에 밝았다. 최이의 심복 김희제를 설득하고 무장들을 끌어 모아 반역을 도모하면서 희종 복위와 최이 제거를 모의하던 중 고종 15년(1228)에 발각되어 친인척들과 함께 남해에 유배되었으며 이후... 바로가기
175 윤임(尹任) 중종의 장인 파원부원군(坡原府院君) 윤여필(尹汝弼)의 아들이며, 장경왕후(章敬?后)의 오빠다. 1544년 중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하자 형조판서를 거쳐 찬성에 올랐으나 재위 8개월 만에 인종이 죽자 1545년 명종이 11세로 즉위,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었다. 이후 윤원형(尹元衡)일파가 주도한 을사사화에 화를 입어... 바로가기
174 이경(李璥) 호는 덕암(德巖). 태종의 아들 경녕군(敬寧君) 비의 증손이다.중종 14년(1519)에 일부 선비들의 모함으로 조광조 일파가 억울하게 쫓겨나자 억울함을 임금께 상소 하였으나 오히려 화를 당해 남해로 귀양 갔다가 무술년에 석방되어 돌아왔다. 그러나 벼슬을 사양하고 시골에 묻혀 우매한 백성들을 깨우치며 살았다. 바로가기
173 양윤온(梁允溫) 양윤온은 구례 현감을 지냈으며 장경왕후의 오빠인 윤임(尹任)과 사돈 지간이다. 명종 즉위년에 일어난 을사사화가 유배의 발단이 되어, 명종 2년(1547)역적 윤임(尹任)과 내통한 혐의로 남해에 안치되었다. 명종 6년(1551) 4월 11일 명종실록에는 양윤온이 매일 형장을 맞다가 옥중에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바로가기
172 김난상(金鸞祥) 중종 2년(1507)에 태어나 중종 23년(1528)에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을사사화와 양재역벽서사건으로 (이언적(李彦迪)과 권발(權撥) 등과 함께 삭제) 남해에 유배되어 19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다가 문정왕후가 죽자 윤원형의 세력이 몰락함에 따라 복관되었고 선조가 등극한 후 집의(執義)에서 직제학으로 승진하여... 바로가기
171 이팽년(李彭年) 중종 14년(1519) 11월 23일의 중종실록 기록에 따르면, “이팽년은 연안부(延安府)의 공리(貢吏) 귀손(貴孫)을 때려 죽인 죄로 사형이 의논되었으나, 왕실 종친이라는 이유로 감형하여 유배되었다. 처음에는 진도로 유배되었으나 그곳에서 폐단을 일으켜 중종 32년(1537) 다시 남해로 이배되었다.”고 한다. 바로가기
170 왕진(王璡) 남해현에 유배 온 최초의 유배객이다. 왕진(王璡)은 문종을 폐위하고 현종의 넷째 아들 평양공(平壤公) 기(基)를 왕으로 옹립하려는 역모사건에 연루되었다. 동사강목(東史剛目)에 기록하기를 “문종 26년(1072) 7월 교위(校尉) 거신(巨身)이 모반하다가 복주(伏誅)되고 평장사 왕무숭은 유배되었다. 당초 교위 거신이 그의... 바로가기
169 우음련(于音連 우음련은 국가의 제사나 시호(諡號) 정하는 일을 관장하는 봉상시(?常寺)의 종(?)으로 있다가 남해로 유배되었는데, 중종 4년 (1509)에 아버지가 그립고 보고 싶어 도망쳤다가 참수에 처했으나 정이 그리워 도망하였기에 사형을 면 하였다. 바로가기
168 남공준(南公俊) 중종 36년(1541) 남공준은 요사한 말을 믿고 아비의 무덤을 팠다가 다시 묻어서 인륜을 크게 어지럽힌 죄로 곤장 일백 대를 맞고 남해로 유배되었다. 바로가기
167 김구(金絿)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자 조선 전기 4대 서예가 중 한 사람이다. 1519년 11월에 남곤(南袞)·심정(沈貞)·홍경주(?景舟) 등 훈구세력이 일으킨 기묘사화로 개령(開寧)에 유배되었다가 수개월 뒤에 죄목이 추가되어 남해로 이배되었다. 남해에 이배된 지 13년 만에 임피(臨陂)로 가깝게 옮겼다가, 2년 뒤에 풀려 나와 고향인... 바로가기
166 정숙첨(鄭叔瞻) 정숙첨은 당시 무신정권의 실세인 최우의 장인으로, 순탄치 못한 정세에도 살아 남은 고려시대 문신이다. 일찍부터 관직에 올랐으나 명종 24년(1194) 아버지 정세유와 함께 반역죄에 연루되어 남해로 유배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난 뒤, 고종 원년(1214)에는 참지정사(參知政事)라는 높은 벼슬을 지냈다. 그러나 1217년... 바로가기
165 엄귀손(嚴貴孫) 연산 6년(1500) 11월 18일, 홍길동을 도와준 엄귀손(嚴貴孫)을 어떻게 처결할 것인지 논의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엄귀손(嚴貴孫)은 무식하고 힘이 센 사람으로 악한 무리들과 소통할 것을 우려하여 유배지가 남해로 결정되었다.연산 9년(1503)에 엄귀손이 옥중에서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바로가기
164 장순손(張順孫 장순손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자는 사호(士?)·자활(子?)이며 본관은 인동이다. 그가 언제 유배되었는지는 사서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1504년 갑자사화 때 홍문관 재직시 후원관사(後苑觀射)를 간했던 것으로 남해로 유배 온 것으로 추정되며,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경상도관찰사로 발탁되었다. 이듬해... 바로가기
163 배계종(裵係宗 배계종(裵係宗)은 김해에서 태어난 천민 출신으로, 유배 경위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으나, 연산군 4년(1498) 10월 8일의 기록을 살펴보면 도적의 수장으로서 죄를 지어 남해에 유배된 인물로 되어 있다. 바로가기
162 이인(李仁) 이인은 세종의 9남 영해군(寧涇君) 당(塘)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지극한 효성과 우애의 성품을 타고 났다. 성종 5년(1474)에 영춘군(永春君)에 봉해졌으며, 사옹원제조(司饔院提調)를 지냈다. 연산군 때 아들 기(祺)의 사건에 연좌되어 부자와 형제가 모두 유배당하였는데, 이때 남해로 유배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바로가기
161 최숙정(崔淡丁) 최숙정은 성종 때의 무관으로, 남해현에 충군(充軍) 형식으로 유배되었으나 유배 사유와 시기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다만, 성종 12년(1481) 3월 14일 남해현에 충군되었던 박호산(朴?山), 이근필(李謹弼)과 함께 방면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바로가기
160 이종금(李終今) 이종금(李終今)은 함경도 길주의 호족인 이시애(李施愛)의 누이동생으로 이명효(李明孝)에게 시집갔다. 길주 인근 최고 세력가의 여식으로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누리던 종금은 오라버니 ‘이시애의 난’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세조 13년(1467) 8월 12일 이시애가 처형되어 난이 진압된 후 연좌되어 남해로 유배되었다. 그... 바로가기
159 이근필(李謹弼) 이근필은 성종 때의 무관으로, 남해현에 충군(充軍) 형식으로 유배되었으나 유배 사유와 시기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성종 127권, 12년(1481 신축년) 3월 14일 무자 세 번째 기사 형조(刑曹)에 전지(傳旨)하여, 남해(南涇)에 정속(定屬)한 덕중(德中), 곤양(昆陽)에 정속한 김자산(金自山)·관남(觀南),... 바로가기
158 승려 성재(省才) 승려 성재는 남해에서 정역(定役)하다 성종 7년 방면되었다.성종 63권, 7년(1476 병신년) 1월 21일 병인 여섯 번째 기사 형조(刑曹)에 전지(傳旨)하여<중략>하동(河東)에 충군(充軍)된 최계동(崔繼同)과 평은역(平?驛)에 정역(定役)된 배자경(裵子敬)과 남해(南涇)에 정역(定役)된 중 성재(省才)와 진주(晉州)에... 바로가기
157 김시생(金始生) 김시생이 유배간 시점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성종 15년 (1484) 1월의 기록에 따르면, 남해에 유배되었던 내관 김시생을 방면하라는 내용이 있어 유배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로가기
156 박호산(朴好山) 성종 때의 무관이었던 박호산의 유배 기록은 없다.그러나 성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성종 12년(1481) 3월 14일 남해현에 충군되었던 박호산을 최숙정(崔淡丁), 이근필(李謹弼)과 함께 방면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바로가기
155 박형근(朴亨根) 박형근(朴亨根)은 무관으로 첨절제사를 지내다 노략질 당한 죄로 장형 1백대에 남해현에 충군으로 유배되었는데, 성종 15년 (1484)에 아들 박감(朴堪)이 부친의 죄를 인정하면서 조부모의 나이가 82세의 노령에 질병이 겹쳐 언제 죽을지 모르니 한번만이라도 상면하기를 청하자 방면시켜 주었다. 바로가기
154 김전(金詮) 김전(金詮)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연산군 4년 (1498) 전한(典翰)이 되었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로 파직되었고, 다시 부호군(副護軍)에 등용되어 대사성(?司成)에 이르렀으나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좌천되었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서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켰고, 이어 우의정, 영의정 겸 세자사(世子師)를... 바로가기
153 정세유(鄭世裕) 정세유는 명종 15년(1185) 형부상서에 올라 부정부패를 일삼다가 탄핵되어 남해로 유배되었다. 얼마 후 복직되었으나 명종 24년(1194) 반역을 도모하다가 대정 이금대의 고변으로 아들 숙첨과 함께 남해에 두 번째로 유배되었다. 바로가기
152 김덕중(金德中) 김덕중은 성종 4년(1473)에 안윤손(安閏孫)의 집을 위협하여 강도질을 한 죄로 남해현에 유배되었으며, 성종 12년(1481)에 풀려났다. 바로가기
151 최금동(崔今同) 최자지(崔自池)의 아들인 최금동(崔今同)은 예종 1년(1469)에 “이시애의 난”에 연루된 이효상, 이효정, 이철산 등과 함께 남해(南涇) 로 유배되었다 바로가기
150 이확(李穫) 장인인 강순(康純)이 “남이 역적사건”에 연루되어 죄를 입게 되자 이확이 강순의 재산을 몰래 옮긴 죄로 예종 즉위 년인 1468년 12월 17일에 남해현(南涇縣) 관노(官?)로 영속(永續)되었다. 바로가기
149 이예중(李禮中) 이예중(李禮中)의 유배지가 성종 2년(1471) 기록에는 해남(涇南)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성종 5년(1474)에는 남해에 영속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시애의 난과 연계된 백시 이효상, 이효종, 이철산, 최금동 등과 함께 1469년에 유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배에서 풀려난 시기는 1471년 또는 1474년으로 기록되어... 바로가기
148 백시(白時) 예종 1년(1469) 역적 이시애의 난과 연관된 자들을 극변에 유배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이효종(李孝宗)의 아내 백시(白時)가 남해현 노비로 영속되었다. 바로가기
147 최잠(崔涔) 조선시대 내시였던 최잠(崔涔)은 국정에 간섭하고 조정을 경멸한 죄로 세조 1년(1455)에 이강(李崗)과 함께 남해 관노로 유배되었다. 이후 유배생활을 하던 중 세조 5년(1459) 6월 27일에 자원(自願)에 따라 외방(外方)으로 옮기게 되었다. 바로가기
146 이철산(李哲山) 이명효(李明孝)의 아들인 이철산(李哲山)은 예종 1년(1469) “이시애의 난”에 연루되어 최금동, 이효상, 이효정 등과 함께 남해(南涇)로 유배되었다 바로가기
145 이효정(李孝精) 예종 1년(1469) “이시애의 난”에 연루된 이들이 모두 극변에 유배되었다. 이에 따라 이효순(李孝順)의 형 이효상(李孝詳)과 이효정(李孝精)은 남해현(南涇縣)의 노비로 영속되었다. 바로가기
144 이효상(李孝詳) 예종 1년(1469) 2월 1일, “이시애의 난”에 연루된 이들이 모두 극변에 유배되었다. 이때 이효순(李孝順)의 형 이효상(李孝詳)과 이효정(李孝精)은 남해현(南涇縣)의 노비로 영속되었다. 바로가기
143 임총(林聰) 유배 온 기록은 알 수가 없지만 세조 2년 김고음룡(金古音龍)과 함께 석방되었다. 세조 4권, 2년(1456 병자년) 5월 23일 신묘 다섯 번째 기사 <전략>남해(南涇)에 유배한 배시개(裵時介)와 안치한 김고음룡(金古音龍)과 정로간(庭爐干, 관가에서 풀무질하는 일을 맡아 보던 천역)으로 정역(定役)한 임총(林聰)과... 바로가기
142 최세보(崔世輔) 고려시대 무신이었으며 2번에 걸쳐 남해로 유배 왔다. 첫 번째 유배는 의종 21년(1167) 당시 금군대정으로 유시(流矢)의 변(變)에 협의를 받고 남해로 유배되어 4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였다. 이후 1170년 정중부 등의 난을 계기로 복직하였고, 1184년 문하시랑평장사, 병부판사, 상장군에 올랐다. 1186년 무관으로는... 바로가기
141 이강(李崗) 조선시대 내시였던 이강(李崗)은 조정 경멸과 국정에 관여한 죄로 세조 1년(1455)에 최잠(崔?)과 함께 남해로 유배되었다. 이후 관노로 유배생활을 하던 중 세조 5년(1459) 6월 27일에 자원(自願)에 따라 외방(?方)으로 옮기게 되었다. 바로가기
140 한만흡(韓晩洽) 승정원 일기, 고종 29년 임진(1892, 광서 18), 1월 5일(을축) 맑음 <전략> “각도의 유지도류안(油紙徒流案)에 등급을 감하여 정배하도록 써서 내리셨습니다. 삼가 써서 내리신 대로 각도에 유배된 죄수 가운데 <중략> 남해(南海)에 유배된 한만흡(韓晩洽)은 울진현(蔚珍縣)으로 모두 각각의 배소로 즉시 압송하도록 각... 바로가기
139 최종길(崔宗吉) 승정원 일기, 고종 31년 갑오(1894, 광서 20), 6월 28일(계유) 맑음 <전략> “도류안(徒?案) 가운데에 실려 있는 잡범(雜犯)으로서 사죄(死罪) 이하를 모두 풀어 주라.’고 전교하여 명을 내리셨습니다. 삼가 전교에 따라 <중략> 남해의 최종길(崔宗吉), 등을 모두 즉시 풀어 주도록 각 해당 도신에게 분부하겠습니다.... 바로가기
138 채기한(蔡蓍漢) 승정원 일기, 고종 4년 정묘(1867, 동치 6), 2월 5일(기축) 맑음 <전략> “경상도 도류안 가운데 남해현(南涇縣)에 햇수를 정하지 않고 유배한 죄인 채기한(蔡耆漢) 등에 대해 ‘방(放)’ 자를 써서 내렸습니다. 삼가 써서 내린 데 의거하여 모두 즉시 방송하라고 해당 도의 감사에게 분부하였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바로가기
137 이창선(李昌善) 승정원 일기, 고종 3년 병인(1866, 동치 5), 9월 2일(무오) 맑음 <전략> “이창선(李昌善)이라는 놈이 궁차(宮差)라고 가탁하고 육지와 섬에 출몰하며 위세를 믿고 백성을 괴롭혔으니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에 본조에서 즉시 남양부(南陽府)로 유배 보내어 배소(配所)에 도착하였다는 장본(狀本)을 이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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