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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데이터
경상남도청 충무공 이순신 활용신청
URL http://175.125.91.94/oasis/service/rest/other/getGSNN3801
설명 경상남도청의 충무공 이순신 정보를 외부 개발자 및 사용자가 이를 활용 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API 서비스입니다. 이순신의 집안, 연대표, 난중일기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기관명 경상남도청
서비스 분야/주제 문화유산 > 역사자료 > 역사 API 유형 REST
등록일 2015-02-24 활용도 516

오픈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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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문화데이터

문화데이터 352

문화데이터
No 제목 내용
352 국난을 알리는 은행나무 상주시 외남면 소상1리(좀실)에 있는 은행나무는 옛날부터 마을에서 섬겨 오는 고목으로 확실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500년 이상으로 전해온다._ 옛 어른들의 말씀은 나라에 큰 재난이 날 때면(임진왜란,6.25동란) 큰 가지가 부러지고, 나무가 "윙윙" 소리를 내며 운다고 한다. 또 지금부터 100여 년 전 마을 어느... 바로가기
351 국굴암 장기면 임중리에 있는 역곡지의 계곡에 자연적으로 된 석굴이 있는데 이 굴을 국굴암 또는 꾸굴암이라 부른다. 이 석굴의 높이가 약 3m,지름이 3~4m정도의 반구형으로 생긴 굴인데 출입구는 한 사람이 겨우 엎드려 기어 들어갈 정도이다. 일명 국승암이라고도 부른다. 바로가기
350 구암의 부처미이 구암리(龜岩里)를 부처미이(佛頂)라고 부르며 구암초등학교를 '부처미이학교'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의성읍에서 점곡(點谷)을 경유하여 청송(靑松)으로 가는 길이 구암교(龜岩校) 정문 앞을 지나가는데 이 길을 따라 동쪽으로 약 1KM 가면 산고개가 있고,그 고갯길 동편에 수백년 묵은 소나무 밑에 부처가 길을 향해... 바로가기
349 구름다리 마을 성산면 북쪽에 위치한 가장 높은 의봉산 위에 약수가 솟아나는 샘이 있었는데 어떤 장군이 이 샘의 약수를 마시고 힘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다._ 이 장군의 힘이 어찌나 세었던지 샘 가까이 있는 평평한 큰 바위 위에 담뱃대와 활을 놓아 둔 자리가 쑥 들어갔다고 하며, 임진왜란때 왜적이 쳐들어 와서 이 사실을... 바로가기
348 경천대용마 사벌과 중동을 가로 질러 흐르는 낙동강가 절벽 경천대 밑 청소(淸沼)를 용소라고 불리어 오고 있다. 번개처럼 날쌘 말이 백사장에 뛰어 나와 놀다가 물속으로 들어갔다고들 했다. 어떤 사람들은 말에 날개가 달렸다고들 했다. 때로는 날아다니다가 내려 오더라고들 했다. 그 말을 용마라고도 하고, 천마라고도 하고,... 바로가기
347 감연 설화 조선 선조 18년 호조참판 심연이 개척한 마을로 마을 입구 쌍바위 밑에 큰 소가 있었는데 샘물이 맑고,그 맛이 좋으며 특히 이 물을 먹으면 어린 아이들의 잔병이 잘 낫는다 하여 단물, 즉 감연(甘淵)이라 칭한 것이 마을명으로 불리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바로가기
346 청도군 무심암 매전면 관하천 하류 동창천과 합류지점 못 미쳐 하상에 몇 개의 바위덩이가 모여 있는 곳이 있다. 때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북지리에 살던 성씨 미상의 젊은 남편도 구국의 일념으로 출정하게 되었다. 유독히 금실이 좋았던 부부라, 이별을 하면서 전쟁이 끝나면 이 바위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남편을 싸움터에... 바로가기
345 문경 모산굴의 전설 문경시 가은읍 성저리에 못산(池山)동굴이 있다. 임진왜란때 왜병이 문경새재를 침공하느라 이곳 지산을 통과하면서 성별 노약을 가리지 않고, 약탈, 살해를 자행하였다. 이 난을 피하기 위해 근처 주민들은 우마를 몰고, 성 밑 굴로 피난을 갔다. 왜병이 이곳 성저마을을 지날갈 때 인적이 드물어 이상하게 생각하여... 바로가기
344 명나라 장수의 무례함을 혼내준 예천 대성전의 대들보 예천향교는 흑응산 동쪽 송대언덕에 있는 조선시대 공립학교로 초창년대는 조선 태종 7년(1407)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 후 1656년 군수 심유행, 1658년 군수 이휘조 등이 수차례 중건한 것으로 보아 조선후기 건물로 보이며 대성전, 명륜당, 내삼문, 동소문으로 공자 5성과 국내 8현을 비롯한 23성현을 모시고 제사를... 바로가기
343 군위군 말방울산 군위군 소보면 달천리를 내려다보며 위천 강물을 끼고 서 있는 산이 속칭 말방울산이다. 옛날, 큰 인물은 산에서 맥을 뚫고 솟아난다고 한다. 그래서 명산에는 그만큼 훌륭한 지맥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도 마침 명산의 지맥을 타고, 큰 장수가 태어나는 도중이었다. 이때 공교롭게도 임진왜란의 원병으로 온... 바로가기
342 청송군 말채나무와 마능지 청송군 안덕면의 소재지인 명당리에 말채나무와 마능지라는 곳이 있다. 무덤은 풍우로 인하여 지금은 흔적조차 없지만 그 유래를 지켜오는 400여 년 묵은 말채나무(회나무) 한 그루가 아직도 살아남아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감당해 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당시 임모라는 휼륭한 장군이 있었는데... 바로가기
341 금학마을 가산면 영2리의 금학 마을은, 지맥이라고도 부른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원병으로 와서 조선땅에 큰 인물이 나지 못하도록 가는 곳마다 산의 맥을 끊었다. 달암티 재도 그때 끊겼는데 여기를 끊을 때 땅 속에서 금빛 나는 학과 미륵이 나왔다고 하여 금학이라 했다 한다. 바로가기
340 신성포와 야죽불 신성포 야트막한 산 위에 있는 성은 한국에서 쌓아 놓은 것이었는데 우리 수군은 왜놈들에게 밀려서 거기를 뺐겠다. 그래서 왜놈들이 거기서 진을 친 것이었다. 그 때 이순신 장군은 하동의 대를 베어다가 짚을 펴놓고 짚 둥치 안에 대를 다발다발 넣어서 둥그렇게 묶어 야죽불을 만들었다. 노량 바다쪽에서 신성포로... 바로가기
339 이장군의 계책2 옛날에는 역의암까지 물이 들어 왔는데 거기서 이순신 장군이 묘계로 군인들에게 옷을 서너가지를 입혔다. 흰 옷을 입고 한 바퀴 돌고 제자리로 와서 노랑 옷을 입고 한 바퀴를 돌고 해서 왜적들이 그걸 보게 했다. 그렇게 의복을 갈아 입혀서 전쟁을 한 곳이다 해서 역의암이다 그 역의 바구가 산꼭대기에 서있다. 우리가... 바로가기
338 이장군의 계책1 왜군이 다시 쳐들어 와 조선조정에서는 야단이 났다. 막을 사람이 누구냐고 원균에게 물으니 원균이 안된다고 하여 이순신장군이 나갔는데 거북선을 타고 큰 기를 달고 나갔다. "일본군이 조선으로 나와 일본이 비었으니 우리는 일본을 점령하자"라고 크게 쓴 깃발을 높이 들고 나갔다. 그렇게 거제바다로 나갔더니... 바로가기
337 이순신과 송구봉 이순신이 십이삼세 때 친구들과 돌을 모아놓고 진법연습을 했다. 송구봉이 그걸 보고 있다가 집에 다녀가라고 했다. 이순신이 밤에 송구봉의 집에 갔는데 방에 누워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순신이 송구봉의 방에서 구선도(龜船圖)를 보고 집에 왔다. 송구봉이 묵언으로 교지한 것이다. 바로가기
336 처녀원혼과 장군 이순신이 열여덟 살 때 활 공부를 하고 산에서 내려오다 목이 말라 처녀에게 물을 얻어 마셨다. 처녀가 그릇에다 나뭇잎을 따서 주었는데 이순신이 괘씸하게 여겨 처녀의 가슴에 활을 대었더니 물에 체할까 봐 그랬다고 했다. 후에 패랭이 쓴 영감이 와서 그 처녀가 상사병이 걸려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순신이 이말을... 바로가기
335 할아버지의 도움 왜놈들이 자물질을 해서 조선의 군함밑을 뚫고 있었다. 이순신이 바다에서 놀고 있는 배를 보면서 문득 할아버지가 명심하라던 글귀를 생각해 냈다."伐木丁丁 山更幽요 毒龍潛處水偏淸이라"는 글귀였다. 이순신이 부하들을 시켜 "저 건너 앞산에 나무 비는 소리가 나는구나 창을 갖고 배밑을 더듬어 봐라"라고 시켰다. 과연... 바로가기
334 김득연의 효성 와룡면 지내2리 창골(倉谷)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는 중용암(中庸巖) 이라고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선 중종때 와룡면 이상리에 김득연(金得硏)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효성이 지극한 그는 가야리에 살고 있는 부친 김언기(金彦璣)를 매일 찾아뵙고, 문안을 드렸다. 그는 집을 떠날 때 무료함도 달랠 겸 중용을... 바로가기
333 울진군 마분동 조선 명종 말기인 서기 1565년 김언륜 장군은 경북 울진군 북면 고목리 지장골에서 태어났다. 골격이 장대하고 기상이 비범하여 인근 주민을 놀라게 하였는데 소년기에 이르자 한학 수업을 틈타서 병서를 심독하고, 활쏘기와 칼 쓰기를 좋아하더니 20세 되던 해부터 "쇠도리깨" 쓰는 연습과 승마를 일과로 삼아 가리산... 바로가기
332 예천 마주목설화 약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당시의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나무로 무이(武夷)리 우물곁에 있다.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백진양(白震陽)이 무이촌(武夷村)에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한 필(匹)의 애마가 있어서 늘 집앞 우물가의 이 나무에 매어두었다고 해서 마주목이라 부르게 되었다. 바로가기
331 사명대사 설화 밀양 무안면에 임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어 진사 벼슬을 했는데, 아들 하나를 낳고 본처가 죽어 후처를 보게 되었다. 후처도 아들을 낳았는데, 전처자식이 있으면 자신이 낳은 아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여 그를 죽여 없애기로 작정하였다._ 큰 아들은 어언 장성하여 장가를 가게 되었다. 후처는 자신이 시집올 때... 바로가기
330 벙어리와 염탐꾼 설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몇 해 전의 일이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칠 야심을 품고 염탐꾼을 잠입시켜 방방곡곡을 염탐하게 하였다. 그런데 안동 지방에 왜놈 염탐꾼이 숨어들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한 노인이 걱정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바로가기
329 내단에 관한 전설 기계면과 신광면 경계의 내단, 내단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고개를 넘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_ 약 300여년 전 최국일, 박충국 두 선비가 지금의 내단리를 지나다가, 마침 날은 저물고 산세가 험한지라 하룻밤 묵어가기로 했다. 먼 길을 걸어온지라, 두 선비들은 금새 잠이 들었고, 기이하게도 이들 두 사람은... 바로가기
328 진주시에 전해오는 관인 발견 유래담 1747년(영조 23) 남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한 어부가 철인 하나를 건졌는데, 앞면에는 '慶尙右道 兵馬節度使印(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인)'이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萬曆 十三年 月 日造(만력 13년 월 일조)'라 새겨져 있었다. 당시 병사 최진한(崔鎭漢)은 이 사실을 조정에 장계로 올리면서 이것이 1593년(선조 26)에... 바로가기
327 임진왜란 때 활약한 조씨에 관한 설화 함안(咸安)에 조씨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편모 슬하에서 자라면서 다른 특별한 재주는 없었으나 돌팔매질은 아주 잘하였다._ 매일 밥을 먹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서는 나무를 한 짐 해 놓은 뒤, 산에서 돌팔매질 연습을 하곤 하였다. 처음에는 잘 맞지 않았으나 매일 반복하여 연습한 결과 맞히지 못하는... 바로가기
326 금곡면에 전해오는 임진왜란에 관한 설화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으로 떠나는 장졸(將卒)들에게 "조선에 가면, 반드시 송자(松字)를 피해라."라는 특명을 내렸다. 그래서 조선에 침입한 일본 장졸들은 송자(松字)가 들어간 지명을 피해 갔다. 선발 부대가 지나가며 송(松)자가 들어 있는 마을이나 산에는 깃대를 꽂았다. 바로가기
325 김덕령 장군이 진주성싸움에 참가하게 된 사연 전라도 광주 일대에서 효자로 소문난 김덕령(金德齡)이 스물두 살 때였다.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살아날 가망이 없었는데, 당시 경상도 진양땅 자매실(지금의 수곡면 자매리 자매 마을)에 명의(名醫)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 김덕령은 밤새 삼백 리 길을 말을 타고 달려왔다. 바로가기
324 효자 앵두나무 설화 임진왜란 이후 삼백 칠십여 년 쯤에 가야읍 백산고을에 성품이 청렴결백하고 효행이 돈독했던 선비가 있었다. 윗대에는 대가벌족(大家閥族)으로 중앙을 무대로 삼던 특권층에 속하였다. 그 당시 중앙의 정치정세의 불안과 탐관오리들의 부조리함을 꺼려서 일직 하향해서 은둔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위로는 부모님을 모시고... 바로가기
323 영규(靈圭) ? ~ 1592(선조 25) 본관은 밀양박씨(蜜陽朴氏). 호는 기허(騎虛)이며, 공주출신으로 계룡산 갑사(甲寺)에 들어가 출가하고, 뒤에 휴정(休靜)의 문하에서 법을 깨우쳐 그의 제자가 되었다. 공주 청련암(靑蓮庵)에 있으면서 선장(禪杖)을 가지고 무예를 익히기를 즐겼다고 한다. 바로가기
322 조경(趙儆) 1541(중종 36) ~ 1609(광해군 1)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사척(士?)이며, 아버지는 병마절도사 안국(安國)이며, 어머니는 생원 권세임(權世任)의 딸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ㆍ제주목사를 거쳐, 1591년 강계부사로 있을 때 그곳에 유배되어 온 정철(鄭澈)을 우대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바로가기
321 김억추(金億秋) 생몰년 미상 본관은 청주. 자는 방로(邦老). 전라남도 강진 출신으로 증병조판서 충정(忠貞)의 아들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고 제주판관ㆍ사복시판관 및 진산ㆍ순창ㆍ초산의 현감을 거쳐, 1592년(선조 25)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이 평양으로 파천하자, 방어사로서 허숙(許淑) 등과 함께 수군을 이끌고 대동강을 지켰다. 바로가기
320 이일(李鎰) 1538(중종 33) ~ 1601(선조 34)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중경(重卿)으로 1558년(명종 13)무과에 급제하여 경성판관 등을 거쳐 1583년(선조 16)전라좌수사ㆍ경원부사를 지냈다. 1587년 함경도북병사가 되어 니탕캐(尼湯介)의 난을 평정하고, 녹둔도(鹿屯島)에 여진족이 침입하자 이듬해인 1588년 두만강을 건너 여진의 시전부락(時錢部落)을 소탕하여 가옥... 바로가기
319 이순신(李純信) 1554(명종 9) ~ 1611(광해군 3)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입부(立夫)._ 종실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진(眞)의 아들이다.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 온성판단ㆍ의주판관 등을 거쳐 일시 귀가하였다가 혜산진첨절제사(惠山鎭僉節制使)가 되었다._ 1592년 임진왜란 때 방답진첨절제사(防踏鎭僉節制使)로서 이순신(李舜臣) 막하에서... 바로가기
318 변이중(邊以中) 1546(명종 1) ~ 1611(광해군 3) 본관은 황주(黃州). 자는 언시(彦時), 호는 망암(望庵)._ 택(澤)의 아들이다.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8년(선조 1)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7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바로가기
317 이정암(李廷?) 1541(중종 36) ~ 1600(선조 33)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훈(仲薰), 호는 사류재(四留齋)ㆍ퇴우당(退憂堂)ㆍ월당(月塘). 서울 출신._ 사직서령(社稷署令) 탕(宕)의 아들이며, 이조참판 정형(廷馨)의 형이다._ 1558년(명종 13)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56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처음 승문원에 들어가 권지부정자를... 바로가기
316 정운(鄭運) 1543(중종 38) ~ 1592(선조 25)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창진(昌辰). 영암출신._ 훈련참군 응정(應禎)의 아들이다. 1570년(선조 3) 28세로 무과에 급제한 뒤 훈련원봉사ㆍ금갑도수군권관(金甲島水軍權管)ㆍ거산찰방(居山察訪)을 거쳐 웅천현감 등을 지냈으나 성격이 강직하고 정의를 지켰기 때문에 미움을 받아 몇 해 동안 벼슬을 하지 못하였다. 바로가기
315 이순신(李舜臣) 1545(인종 1) ~ 1598(선조 31)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 서울 출생이다._ 1576년(선조 9) 식년무과(式年武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권지훈련원봉사(權知訓練院奉事)로 처음 관직에 나갔으며 이어 함경도의 동구비보권관(董仇非堡權管)에 보직, 이듬해 발포수군만호(鉢浦水軍萬戶)를 거쳐 1583년(선조 16)... 바로가기
314 군위군 막암 설화 부계면 대율리(한밤)에서 팔공산 산허리를 따라 3km정도 오르면 신령스러운 팔공산의 정상이 쳐다보이고, 기암괴석으로 된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공산의 절경 속에 막암이라는 바위가 있다. 막암은 팔공산의 크고 작은 여러 골짜기에서 내려 온 물줄기가 이 곳에 와서 약10여 평 넓이의 평평한 바위를... 바로가기
313 칠곡 말무덤 골의 사람무덤 조선조 선조 때, 지금의 약목면 덕산리에 손사인용(孫士人龍)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특히 아끼는 말 한 필이 있어 항상 이 말을 타고 다니며, 가끔 강에 나가 말을 씻겨 주기도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병이 각지를 유린하였다. 이곳에 침입한 왜병은 낙동강변의 백포산(栢浦山)(지금의 구왜관)을 점령하여... 바로가기
312 대구 와룡산의 전설 아주 태고적 산 아래에 옥연(玉淵)이 있어 용이 노닐다가 그 못에서 나와 승천을 하려는데 지나가던 아녀자가 이를 보고 산이 움직인다하고 놀라 소리치자 이 소리를 들은 용이 승천을 못하고 떨어져 누운산이라는 데서 와룡산이라 불리워졌다고 한다. _ 임진왜란 때에 원군으로 우리나라에 온 이여송이 이 산의... 바로가기
311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1568 ~ 1622 일본의 장수로 지금의 오오이다겐에 있는 나가죠오의 성주였다. 전국시대의 무장 구로다 요시다가의 아들이다._ 임진왜란 때에는 1만 2천명을 이끌고 고니시 유키나가와 같이 평양성에 입성하고 황해도에 가서 주둔하였는데, 곧 이정암이 지휘하는 의병에게 패전하여 서울로 퇴각하였다. 그리고 다시 서울에서... 바로가기
310 모리 데루모도(毛利輝元) 1553 ~ 1625 일본의 장수로 히로마죠오의 성주였다. 전국 시대의 유명한 무장 모리 모도나리의 손자다._ 그는 오다 노부나가와 대항하여 오다 노부나가의 부장 도요토미와 싸우고 있었다. 모리측의 다가마쓰죠오가 강물가 저지대에 있었으므로 도요토미가 이 강에 둑을 만들어 물을 막으니, 그 성이 물위에 뜬 섬 같이 되어... 바로가기
309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 1573 ~ 1655 일본의 장수로 오가야마죠오의 성주였다. _ 임진왜란 때는 19세의 나이로 일본군 총사령관이 되어 서울에 있으면서 전 일본군을 지휘하였다. 정유재란 때는 좌군의 총지휘자가 되어 남원성을 공략하여 8월 15일에 함락시키고, 일본군 부대장들을 전주에서 모아 회의를 하고 일제히 충청도로 북상하였다. 바로가기
308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1535 ~ 1619 일본의 장수로 오오스미 구리노죠오의 성주였다._ 임진왜란 초기 한반도에 출병하기 위하여 일본군이 나고야에 집결하고 있을 때, 오오시미의 호족 우메기다 구니가네가 반란을 일으켰다. 시마쓰 부대가 출병한 후 후방을 맡고 있는 시마쓰 요시히로의 동생 시마즈 도시히사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할복자살 시켰다. 바로가기
307 고바야가와 다가가게(小早川隆景) 1533 ~ 1597 일본의 장수로 전국시대의 유명한 무장 모리 모도나리의 셋째 아들인데, 고바야가와 가문에 양자로 갔다. 깃가와가로 양자간 형 모도하루와 같이 모리 가문을 잘 돌봤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둘을 '모리 료오센'이라 했다._ 풍신수길의 양자 중에서 사고를 잘 낸 히데아기를 자기의 양자로 맡아 풍신수길의... 바로가기
306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 ~ 1600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의 무장으로 대표적인 천주교도 영주이며 기리시탄 다이묘라고 부른다._ 고니시 유키나가는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한 혼노지의 변란 이후로 히데요시를 섬기면서 아버지 류사와 함께 세토나이 해의 군수 물자를 운반하는 총책임이 되었다. _ 1588년 히데요시의 신임을 얻어 히고노쿠니 우토... 바로가기
305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 일본의 장수로 미까와 출신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 중 무단파의 한 사람으로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수군 제 3진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1592년 7월 10일 안골포해전에서 전라좌수사로 있던 이순신에게 대패했다. 바로가기
304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1562 ~ 1611 일본의 장수로 1562년 나카무라[中村]에서 출생하였으며, 아명(兒名)은 가토 도라노스케[加藤虎之助]이다._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는 6촌간으로, 3세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아래서 성장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히데요시의 시동을 지내며 많은 전투에 참가해 전공을 세웠다. 바로가기
303 권응수(權應銖) 1546(명종 1) ~ 1608(선조 41) 본관은 안동. 자는 중평(仲平), 호는 백운재(白雲齋). 경상북도 신령출신._ 1584년 별시무과에 급제, 수의부위권지(修義副尉權知)를 거쳐 훈련원부봉사(訓鍊院副奉事)로서 의주용만을 지켰으며, 그뒤 경상좌수사 박홍(朴泓)의 막하에 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에 돌아가 의병을 모집, 궐기하였다. 이해...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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