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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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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시풍속
내용 내용:태음력(태음태양력)을 일상력으로 사용하던 전통사회에서 겨울은 음력 [10월](/topic/10월)부터 [12월](/topic/12월)까지이다. 겨울의 첫 달인 10월은 맹동(孟冬)이라 한다. 초겨울이라는 뜻인데 이 밖에도 초동(初冬)이라고도 하며 상달[上月]이라고도 한다. 상달은 으뜸의 달이라는 뜻으로 이는 하늘에 제사지내는 달이라는 데에서 그 연원을 찾기도 한다. 10월이면 농작물의 수확이 모두 끝나므로 천신(天神)에게 추수감사제를 지낸다. 아득히는 고구려(高句麗)의 동맹(東盟), 예(濊)의 무천(舞天)이 그러하였고, 마한(馬韓)에서도 농공(農功)이 끝난 후인 10월에 제천의례(祭天儀禮)를 행했다. 10월은 일년 중 가장 좋은 계절이다. 절기상으로는 입동(立冬)과 소설(小雪)이 들어 있어 이미 겨울임을 알 수 있지만, 아직 햇볕이 따뜻하여 소춘(小春)이라 할 정도이다. 상달이라 함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달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이때에는 하늘이 높고 쾌청하기에 그 이름이 더욱 더 어울린다. 또 개천(開天)한 달이기 때문에 으뜸달이 될 수 있다. 10월 3일 개천절은 원래 음력 기준이었으나, 양력으로 바꾸어 국경일로 제정한 것이다. 단군을 섬기는 대종교에서 일제강점기에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하였고, 임시정부가 이를 인정하였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이를 계승하였다. 그러다가 1949년 ‘국경일에관한법률’에 따라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다시 정하였다. 10월에 뚜렷하게 명절로 정해진 날은 없지만, 말날[午日]과 손돌날[孫乭日]을 각별하게 여기며, 각 문중에서는 시제(時祭)를 지고 상달고사 또는 천신제를 지내기도 한다. 주로 첫 말날[上午日]이 되면 팥시루떡을 쪄 성주신, 삼신, 터주, 용단지 같은 가정신을 비롯하여 외양간에도 올려 정성을 드리며 가정의 평안과 우마의 건강을 빈다. 그러나 첫 말날이 병오일(丙午日)이면 고사를 지내지 않는다. 병(丙)자가 병(病)과 발음이 같으므로 행여 말이 병이 들 것을 염려해서이다. 무오일(戊午日)을 으뜸의 말날로 여기는데 이는 무(戊)와 무(茂)가 발음이 같아 말의 무성(茂盛)을 기원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상달고사의 맥락이지만 10월에 성주굿을 크게 하거나 또는 성주를 비롯하여 각 가정신의 신체(神體)인 신주단지의 햇곡물을 갈아 넣으며 고사를 지낸다. 이는 일종의 천신제로서 그동안 땀 흘려 농사를 지은 햇곡물을 신에게 바치는 추수감사제이기도 하다. 10월 20일을 손돌날이라 한다. 김포에서 강화로 가는 바다는 물이 소용돌이쳐서 뱃길로는 무척 위험하다. 고려때 왕 일행이 강화도에 들어갈 때 뱃사공 손돌이 왕을 모시게 되었는데 배를 험한 곳으로 몰고 갔다. 왕은 고의적으로 위험한 곳으로 몰았다고 오해하여 손돌을 죽이도록 하였다. 왕을 위험한 곳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손돌의 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손돌이 숨진 날이 10월 20일이어서 이날을 손돌날이라 부르고 이곳을 손돌목[孫乭項]이라 하는데, 이 무렵이면 큰 바람이 불고 매우 춥다. 이를 억울하게 숨진 손돌의 원혼 때문이라고 여겨서 이 바람을 손돌풍(손돌바람)이라 부르는데 강화도 사람들은 손돌풍이 불 때에는 배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10월에는 문중 단위로 시제를 지낸다. 시제는 가정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 5대조 이상의 조상을 산소에서 모시는 제사로, 각 문중마다 일정한 날짜를 정하여 제를 지낸다. 이때에는 여러 파로 갈린 각파 친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묘제(墓祭)를 지내는데 많은 자손들이 모이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예전에는 10월 입동을 전후하여 김장을 했지만 오늘날에는 전반적으로 기온이 올라가서 입동이 한참 지난 뒤에 김장을 한다. 한편 10월에는 무배추를 수확하고 메주를 쑨다. [11월](/topic/11월)은 겨울의 가운데 곧 중동(仲冬)이라고 하며 그 밖에도 동짓달, 복월(復月), 지월(至月)이라고도 한다. 24절기로는 대설(大雪)과 동지(冬至)가 들어 있어 이제야 말로 본격적으로 겨울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동짓달이라 한 까닭은 바로 이달에 동지가 들어 있기 때문인데 동지는 그만큼 중요한 날이다. 동지는 24절기의 하나이며 오랜 명절로서 아세(亞歲) 또는 작은설이라 한다. 이는 중국의 고대 역법에서 동지를 세수(歲首)로 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날은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지만, 다음날부터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이를 태양 운행의 시발점으로 보았는데 그래서 동지는 설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집안의 신에게 올려 정성을 드리고 마당이나 대문에 뿌려 액을 막기도 한다. 팥죽 속에는 새알심이라 하여 찹쌀로 빚은 경단을 넣는다. 설날 떡국 한 그릇을 먹으면 나이 한 살 먹는 것으로 여기듯이 동짓날 팥죽 한 그릇을 먹으면 나이 한 살을 먹게 된다는 말에서도 세수 곧 설날의 유습을 찾아볼 수 있다. 동지는 초순에 들면 애동지[兒冬至],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하순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 한다. 중동지와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지만 애동지에는 아이에게 좋지 않다고 하여 팥죽을 쑤지 않는다. 근래에는 절에서 팥죽을 쑤어 신도들이 함께 시식한다. 한편 동지팥죽으로 팥죽점을 보고 이듬해 농사의 풍흉과 날씨 그리고 태아(胎兒)의 성별(性別)을 미리 점쳐보는 풍속이 전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말기까지 관상감에서는 새로운 책력을 만들어 궁중에 올리면 황장력(黃粧曆)과 백장력(白粧曆)을 모든 관원에게 나누어 주는데, 책력에는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어새(御璽)를 찍어 관원들에게 차등을 두어 나누어 주었다. 각 관청마다 나누어 받는 몫이 있고 관청의 아전들도 각기 친한 사람들을 문안하며 책력을 전했다. 이 밖에도 서울에서는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여 단옷날에는 관원이 아전에게 부채를 나누어 주고 동지에는 아전이 관원에게 달력을 바쳤다. 그러면 관원은 그 달력을 자기 출신 고향의 친지, 묘지기, 농토 관리인에게 나누어준다. 동지는 양력으로 12월 21일 또는 22일 무렵으로, 오늘날 연말이면 달력을 선물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동짓날에는 동지부적(冬至符籍)을 부엌의 벽이나 기둥에 붙였다. 12월은 겨울의 마지막 달이자 한 해의 마지막 달이며 겨울의 마지막으로, 계동(季冬)이라 한다. 섣달, 납월(臘月), 연종(年終), 막달, 썩은달이라고 부른다. 24절기로는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이 들었는데 그 이름과는 달리 “추운 소한은 있어도 추운 대한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24절기가 우리의 날씨와는 다소 맞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4절기가 애초 중국의 주(周)나라 때 화북(華北)의 날씨에 맞춘 것이기 때문이다. 섣달에는 특별한 명절은 없지만 납일(臘日)과 섣달그믐 곧 제석(除夕)을 각별한 날로 여긴다. 납일은 동지로부터 세 번째 미일(未日)로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산돼지와 산토끼를 종묘와 사직에 올려 제사를 지냈다. 이를 납향(臘享)이라 한다. 납(臘)이란 원래 엽(獵)의 뜻으로 사냥한다는 뜻이다. 민간에서는 이날 참새를 잡아먹기도 했는데 예전에는 겨울철 영양식으로 여기기도 했다. 이날의 참새잡이에 대해서는 동국세시기에도 기록이 있다. 그에 따르면, 참새를 잡아 어린이에게 먹이면 마마를 깨끗이 한다고 하여 항간에서는 이날 그물을 쳐서 참새를 잡기도 하고 활을 쏘아 잡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이날만은 총을 쏘아 잡아도 묵인했다. 납일에 눈이 내리면 곱게 받아 독에 받아두었다가 녹은 물을 김장독에 넣으면 김치 맛이 변하지 않고 의류와 책에 바르면 좀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또 이 물로 눈을 씻으면 안질(眼疾)을 막을 수 있으며, 이 물로 한약을 달이거나 환약을 지을 때 쓰기도 한다. 조선시대 내의원(內醫院)에서는 납일에 각종 환약을 만들어 올리는데 이를 납약이라 했다. 임금은 그것을 근시(近侍)와 지밀나인[至密內人]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밖에 기로소(耆老所)에서도 납약을 만들어 여러 기신(耆臣)들에게 나누어 주고 각 관청에서도 많이 만들어 나누어 주기도 하고 서로 선물하기도 했다. 섣달그믐 날을 제석 또는 제야(除夜)라고 하며 민간에서는 흔히 ‘까치설’이라고 한다. 이날 저녁 가묘(家廟)에 한 해가 끝남을 알리는 사당제(祠堂祭)를 지내서 어른들께 한 해를 보내는 인사를 올린다. 이를 구세배(舊歲拜) 또는 묵은세배라고 한다. 또 수세(守歲)라 하여 방, 뜰, 부엌, 대문 앞과 같은 집안 곳곳에 불을 밝히고 밤을 샌다. 이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도 하는데 이날 불을 밝히는 까닭은 이제까지의 묵은 것을 태워 새로운 시간을 맞는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날 밤의 잠은 영원한 잠이라 생각하여 밤을 새는 것이다. 주부들은 세찬 준비에 바쁘다. 자정 무렵이 되면 마당에 불을 피운 뒤 청죽(靑竹)을 태운다. 이를 대불놓기라 하는데, 청죽 마디가 탈 때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므로 폭죽(爆竹)이라고도 한다. 이 또한 묵은 것을 태우고 잡귀들이 놀라서 달아나도록 함으로써 신성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일종의 의례이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나례(儺禮)라는 축귀의식(逐鬼儀式)을 행했는데 제석의 이러한 행사는 한 해를 보내는 송년의례의 성격을 지닌다. 제주도에서는 대한 후 5일부터 입춘(立春) 전 3일까지 약 일주일간을 신구간(新舊間)이라고 하는데, 민간에서는 이사나 집수리를 비롯한 집안 손질을 이 기간에만 할 수 있는 것으로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 겨울철 놀이로 눈싸움, 다리세기놀이, 썰매타기, 제기차기, 팽이치기와 같은 놀이가 있으며, 예전에는 매사냥, 저리사냥 같은 사냥놀이를 즐기기도 하였다. 또 윷점[柶占]을 보거나 촛농점을 보고 개인의 신수를 점치기도 하였으며, 고드름점이나 눈점[多雪占]을 보고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였다. 또 겨울철에는 방아를 찧거나 이듬해 농사를 위해 종자를 보관해둔다.||참고문헌:東國歲時記, 洌陽歲時記 韓國의 歲時風俗 (張籌根, 螢雪出版社, 1984) 曆法의 原理分析 (이은성, 正音社, 198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한국세시풍속Ⅰ (김명자, 민속원, 2005)
연계 기관명 한국민속대백과사전DB
부제 歲時風俗
등록일 2017-06-20 00:00
갱신일 2017-06-20
분류 한국세시풍속사전>겨울(冬)>10월>정일
집필자 김명자(金明子)
출처 東國歲時記, 洌陽歲時記 韓國의 歲時風俗 (張籌根, 螢雪出版社, 1984) 曆法의 原理分析 (이은성, 正音社, 198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한국세시풍속Ⅰ (김명자, 민속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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