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감 > 문화TV 문화영상

문화영상문화포털의 크리에이터 문화PD의 영상을 소개합니다

  • 문화유산
  • 전체

[문화PD] 고조선 실용 외교의 설계자, 대부예

제작
김태훈
재생시간
03:51
등록일
2021-12-03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우리민족의 시조이자 환웅과 웅녀의 아들인 단군왕검은,

기원전 2333년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건국하였습니다.

고조선은 그 후로도 오랜 기간 동안 끊임없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동서남북에 위치한 크고 작은 부족국가들을 차례로 복속시켜나갔습니다.

기원전 4세기. 고조선은 바야흐로 대 제국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큰 성공에는 큰 위협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때 조국을 향해 다가오는 위협을 전략적 식견으로 막아낸 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고조선의 대부예입니다.

 

[고조선 실용외교의 설계자 대부예’]

 

한편, 서쪽에 위치한 현재의 중국 대륙은 당시 여러 개의 국가가 죽고 죽이는 싸움을 반복하며 배신과 음모가 난무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특히나 요서지방을 경계로 위치한 연나라는, 파죽지세로 뻗어져 나가는 고조선과 마침내 요서지방에서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양국 간에는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나라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당시 고조선의 왕은 나라를 정벌해야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나아가 서쪽으로 진출하여 중국 대륙을 고조선의 영토로 만들려는 생각 역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고조선의 대부관직을 맡았던 신하 는 생각이 조금 달랐습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혼란한 중국내 여러 국가들의 상황이었습니다.

대부예는 중국 대륙의 여러 국가들이 끊임없이 반목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지리멸렬한 틈을 타 공격하는 것이 고조선에게 있어서는 최적의 상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나라의 힘이 건재한 상황에서는, 고조선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또한 양국의 국력이 소진된 상황에서는 오히려 다른 나라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꼴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계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조선왕은 그 말이 참으로 옳다고 여겼습니다.

대부예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외교관이 되어 연나라로 가길 청했습니다.

이윽고 대부예는 연나라에 도착하였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화친파와 저항파로 나뉘어 있는 연의 정치세력들이었습니다.

대부예는 연왕에게 이르기를 고조선과 화친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연왕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대부예는 현재 연나라가 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의 결과는 부딪혀야만이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양국 모두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특히나 다른 세력들과의 팽팽한 대립 속에서 놓인 국가가 복구하기 힘들 정도의 국력을 소진하게 될 경우 그 나라의 안전은 풍전등화에 놓인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연왕도 대부예의 말이 옳다고 여겨 군사를 일으키려는 것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고조선의 충신이자 외교가였던 대부예로 인해 고조선은 큰 분쟁 없이 국력을 보존할 수 있었고,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예는 이 밖에도 특징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는 한국사에 기록된 이름 중 단군왕검을 제외하고는 최초로 등장하는 관직을 부여받은 인물입니다.

한국사 최초의 인물 대부예는 국제정세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실용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직접 연나라를 찾아가는 용기까지 보여준 위대한 외교관입니다.

함께 볼만한 영상

공공누리

한국문화정보원이 창작한 [문화PD] 고조선 실용 외교의 설계자, 대부예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공감댓글

0
코멘트 입력
0/140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