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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청주향교에서 바라본 충혼탑,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제작
김용환
재생시간
2:56
등록일
2019-03-08
청주향교는 전통의 산물이다. 그런데 맞은편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충혼탑. 충혼탑 자리는 본래 사직단이 있던 곳이다.
충혼탑에는 어떤 역사적 맥락이 있었고, 우리는 오늘날 시점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까?


- - - - - 대 본 - - - - -


내레이션


충혼탑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충혼탑을 청주 향교에서 바라보겠습니다.
조선 건국 초 유학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 공간으로 전국 모든 군현에 향교를 세웠습니다.
당시 모든 군현이 3단 1묘를 채택하고 있었는데, 대성전은 여전히 보존되어 있으나,
3단 즉 사직단, 성황단, 여단의 흔적은 현재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3단 1묘는 어떻게 1묘가 되었을까요?
사직단은 지금의 사직동 충혼탑이 자리하는 곳으로 동 이름에는 남아있습니다.
성황단과 여단은 임진왜란 이후 자취를 감췄습니다. 조선왕조가 멸망하면서 새로운 시설이 들어섰는데요.
조선시대 지방관은 왕을 대신해 토지신과 곡식을 맡은 신에게 매년 2차례 제사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가뭄이 들거나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도 때때로 올렸습니다. 그곳이 해방 후에 현충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사직단과 충혼탑은 얼핏 제향의 공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사직단이 농본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충혼탑과는 차이가 보입니다.
충혼탑이 청일전쟁, 러일전쟁 당시 전몰장병을 추모하던 공간었다는 것을 알고계셨나요?
그렇다면 왜 일본은 의도적으로 사직단을 없애고 충혼탑을 만들었을까요?


청주연혁지에 따르면 지금의 사직동 충혼탑 자리에는 과거 전사한 일본군을 위한 위령탑이 위치했습니다.
일제는 전통시대 사직단이 있던 곳에 식민지 침략군을 위한 위령시설을 세웠는데요.
그곳이 해방 후에도 전몰장병을 추앙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편 내려오면서 보면 천지신단비가 있습니다. 이 비는 일제가 1930년대 농촌진흥운동의 일환으로 세운 건조물입니다.
이 비는 수탈과 압제로 상징되는 일제 식민지 정책의 산물입니다.
이 비는 그동안 사직단이나 전통의 유물로 잘못 알려져 왔기에 여기에 있었다고 하는데요.
천지신단비의 원형은 충북대학교 교정에 현재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어떤 관점에서 이 현장을 바라봐야 할까요?
어떻게 기억하고 복원해야 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사용음원
Kevin MacLeod - Autumn Day

Audionautix - What Child Is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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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누리

한국문화정보원이 창작한 청주향교에서 바라본 충혼탑,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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