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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소통과 헌신의 지도자, 세종대왕

제작
문화포털
재생시간
5:57
등록일
2015-10-23

자막>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릉

 

na : 지난 5월 15일, 세종대왕 탄신 617돌 숭모제전이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릉에서 봉행되었다.
숭모제전은 조선을 탁월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글창제는 물론 국방, 과학, 문화 등 수많은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의 위업과 애민정신을 기리고 추모하는 행사이다.

 

int : 박종국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세종대왕의 교육 정신을 계승하고 이어가고자 하는 취지에서 정부에서는 1982년도에 세종대왕 탄신일을 법정 기념일(스승의날)로 정했습니다. 세종대왕의 정신과 교훈을 이어받아 교육을 시키는 것에는 기본적인 바탕에 그분의 신의와 믿음이 있습니다. 사람이 거짓말 하지 않고 신뢰를 지키면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됩니다.
그래서 심정, 즉 마음이 고르면 정치와 행정 모두 조금의 문제 없이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종대왕은 신하들에게 직언도 서슴없이 하셨는데

 

na : 세종은 결코 ’고분고분한’ 왕이 아니었다. 신하들의 말을 경청하고, 백성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한 임금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추진력이 강한 군주였다. 목표가 일단 정해지면 끈질기게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다독이며,
또 어떤 때는 위협까지 하면서 ’이끌었던’ 지도자였다.

 

결단을 내리는데 있어 끊임없이 신하들과 의논하고 토론했고, ’소통하지 않는 정치는 이미 정치가 아니다’라고 보았던 세종은 설정된 목표에 왜 도달해야 하는지,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조만간 어떤 파국을 맞게 되는지를,
상세하고 명확하게 일깨워가면서 함께 나아갔다. 이것이 찬란한 조선시대의 문화를 꽃피운 세종리더십의 요체였다.

 

int : 박현모 / 여주대학교 교수, 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
대부분 정치가나 관료들, 또 어떤 기업이나 조직의 장만 해도 내가 잘해서 너희에게 베풀어 줄게 이런 생각을 하지, 더불어서 목표를 정하고 그들의 수준을 끌어올려서 함께 갈려고는 하지 않거든요. 아시다시피 한글창제,
문자란 권력을 백성들에게 준 거잖아요. 그건 굉장한 불편함을 지도자가 감내하는 거거든요.
문자라는 권력을 주고, 또 해시계 물시계와 같은 시간이라는 중요한 정보를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거 거든요. 본인은 왕 스스로 불편할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백성들의) 수준을 확 끌어 올려서
함께 나아가도록 하는, 그런 일종의 모험인데 그 점에서 굉장히 우리가 요즘 배워야 할 요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na :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책을 보며 정사를 돌보기에 힘썼던 세종은 재위 중반부가 되면서 온몸은 망가지고
갖가지 질병으로 힘들어하면서도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설득하고 추진하고, 확인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말 뿐인 지도자가 아닌 몸으로써 결과로써 백성을 하늘같이 섬기는 정치를 해내었다.

 

int : 박현모 / 여주대학교 교수, 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
외국인들도 세종에게 굉장히 공감하는 코드들이 있는데, 지도자가 결정할 때 바로 눈앞에 보이는 엘리트들이 아니고, 가장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면서 결정을 내리는 것들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사람이 반응을 보이고 그것이 말로 휴머니즘에 대표적인 사례다. 이것은 단지 한민족의 문제가 아니고, 글로벌하게 다 통하는 리더십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조치를 하고 그걸 제도화해서 경국대전에 반영되도록 한 그런 휴머니즘적인 리더십, 리더십의 지평을 좀 확 넓히면 굉장히 사람들로 하여금 신이 나게 하는 그런 리더십의 사례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na : 취미이자 특기가 공부였고, 의젓하고 조심하며 부지런한 성격의 소유자 세종. 성격이 다정다감해서 부모 형제에게 효제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겸손하면서도 공경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 왕이라고 자신의 지위를 들어가니 않고 겸손으로 백성을 섬겼던 왕 소통과 인내가 부재한 이 시대에 사회 계층의 각각의 지도자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소통과 헌신의 리더십을 일깨워 또 다른 세종시대가 열리길 바래본다.

 

자막>
세종대왕 업적
1397년(태조 6년, 1세) 4월 10일(양력 5월15일)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로 한양에서 탄생하다.
1408년(태종 8년,12세) 충녕군에 책봉되고 심온의 딸(소헌왕후)과 혼인하다.
1412년(태종12년,16세) 충녕대군에 진봉되다.
1418년(태종18년,22세) 6월 왕세자로 책봉되다.
1418년(태종18년,22세) 8월 10일(양력 9월 18일) 조선 제4대 임금으로 등극하다.
1419년(세종 1년,23세) 이종무가 227척의 병선을 이끌고 대마도를 정벌하다.
1420년(세종 2년,24세) 대마도를 경상도에 편입시키다.
                      집현전의 기구를 확장하여 궁중에 설치하다.
1421년(세종 3년,25세) 주자소에서 금속활자 「경지자」를 완성하여 인쇄술을 개량하다.
1423년(세종 5년,27세) 금속화폐 「조선통보」를 주조하다.
1424년(세종 6년,28세) 사죄(死罪) 삼복법(三覆法:삼심제)을 정하여 죄인의 억울함을 줄이다.
                      불교의 종파를 선종, 교종 양종 35사로 통합하다.
                      악기도감을 설치하고 악기를 제조하다.
1426년(세종 8년,30세) 젊은 학자를 뽑아 사가독서(賜暇讀書: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하는 제도)를 하게 하다.
1430년(세종12년,34세) 새로운 세법인 공법(貢法)의 실시 여부를 각도의 수령과
                      백성들에게 물어 찬반의 숫자를 조사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론조사)             
                      관노비(官奴婢)의 출산휴가에 대한 법을 정하다.         
1433년(세종15년,37세) 압록강 이북 여진족을 토벌하고 4군을 설치하여, 국경을 이룩하다.
                      정초,이천 등의 「혼천의」를 제작하다.
1434년(세종16년,38세) 장영실이 제작한 「자격루」를 보루각에 설치하여 사용하다.
                      조판 주조의 법을 개량하고, 새 활자 「갑인자」를 만들다.
                      「앙부일구」를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하다.
1437년(세종19년,41세) 이천 등이 파저강 야인(여진족)을 정벌하고 6진을 설치하여
                      국경이 동북으로 두만강에 이르게 하다.
1441년(세종23년,45세) 「측우기」를 제작하고, 「수표」를 세우다.
1443년(세종25년,47세)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언문청을 설치하다.
1445년(세종27년,49세) 화포를 개량하여 화포의 사정거리가 2배 이상 늘어나다.
                      「용비어천가」,「의방유취」를 편찬하다.
1446년(세종28년,50세) 소헌왕후가 승하하여 영릉(서울 내곡동)에 장사하다.
                      훈민정음을 반포하다.「훈민정음 해례본」을 완성하다.
1447년(세종29년,51세) 「치화평」, 「취풍형」, 「여민락」등의 악보를 완성하다.
                      「석보상절」을 간행하고,「월인천강지곡」을 편찬하다.
                       서울 도성의 정문인 숭례문을 개축하다.
1448년(세종30년,52세) 경복궁 안에 내불당을 건립하다.「동국정운」을 간행하다.
1449년(세종31년,53세) 두만강 유역의 6진을 모두 개척하다.
1450년(세종32년,54세) 2월 17일(양력 4월 8일) 영응대군 집 동쪽별궁에서 승하하시어,
                      소헌왕후가 안장된 영릉(서울 내곡동) 서실에 합장하다.
1469년(예종 1년)      영릉을 서울 내곡동에서 경기 여주군 능서면 위치에 천장하다.

 

자막> 우리 모두가 소통과 헌신의 리더십을 일깨워 이 시대에 또 다른 세종시대를 열어 나가길 소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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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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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0
  • 2014-12-02

    조선을 탁월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글창제를 위시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의 위업을 본받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 2014-11-13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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