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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유산
  • 서울

[한국문화100] 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

제작
문화포털
재생시간
8:14
등록일
2015-10-20

조선왕조 400여년의 역사가 기록된 국보이며 당대의 중요한 사건들을 모조리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 문화유산이다.
조선왕조실록의 탄생과 제작과정을 알아보고 실록에 담긴 역사적 사건에 대해 알아보자. 

---------- 대 본----------                                                                

나레이션)
472년간의 조선 왕조 역사를 연월일 순으로 기록
조선의 정신이 담긴,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1,832권. 1,832책의 높이는 32미터.
글자 수 만 6만 4천권의 분량.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각 왕 별로 기록한 편년체 사서이다
실록은 왕이 죽은 뒤에 다음 대에서 전임 왕 때의 역사를 정리하는 방법으로 제작되었다.
1996년.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세계가 그 가치를 인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강문식/ 규장각 학예연구사
Q. 유네스코에 조선왕조실록만이 지정된 이유?
실록은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중국, 일본, 베트남에 있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 다른 실록 보다 우수한 점은 단일국가 기록으로 
470년이 넘는 가장 오랜 기간 빠짐없이 기록이 되었습니다.
왕이나 고위대신들은 실록의 기록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실록을 기록하는 사관들이 공정하고 자신이 역사적인 관점에서
당시에 정치나 사람들의 행동이나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논설이 들어가서
객관성, 공정성, 자세함, 논설 등이 포함되어 가장 우수한 실록으로
평가를 받았고 그래서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가 되었습니다.

나레이션)
500년의 역사,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정확했다. 진실성과 객관성으로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은 어떻게 편찬됐을까?
조선시대 국가의례였던 대사례의 기록을 보면, 의식 진행되는 중에도 임금의 옆에 종이를 들고 기록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사초를 작성한 사관이다. 사관은 왕과 신하간의 대화와 토론내용을 기록하며 왕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표정까지 묘사하고 기록했다.
태종실록 4년을 보자. 실록을 살펴보면 勿令史官地之(물령사관지지)라는 한 대목을 발견 할 수 있다. 무예능력을 자부하던 왕 태종의 이야기다. 사냥을 하던 태종은 말에서 떨어지게 되는데,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관이 알게 하지 말라”하였다. 하지만 태종실록에는 이또한 임금의 말까지 기록되었다. 사관은 임금이 숨기고자 했던 일화도 주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또한 폭정을 일삼았던 연산군조차도 ‘세상에서 무서운 것은 사관뿐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史草皆入內(사초개입내) “사초를 모두 대궐로 들여오라”
임금들은 이러한 사초의 내용이 궁금했지만
卽後世無直筆也(즉후세무직필야) “임금이 만일 사초를 보면 후세에 직필이 없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쉽게 기록된 사초의 내용들은 볼 수 없었다.
사관들이 매일 작성한 기록인 사초가 조선왕조실록의 주요한 기초자료가 된다. 사관은 직필을 생명으로 여겼으며 이러한 기록정신으로 500년의 역사가 진실하고 공정하게 기록되었던 것이다.

나레이션)
조선왕조실록에는 어떠한 기록들이 담겨있었을까? 실록에는 500년 조선왕조역사와, 또한 흥미롭고 진귀한 이야기도 기록 돼 있다.
세종 1권을 보면 “상왕이 노상왕에게 첫눈을 봉하여 올리다”라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어떠한 내용이 담겨있을까.

인터뷰)
강문식/학예연구사
Q. 세종1권의 첫눈에 관한 기록?
세종실록을 보면 당시 상왕(태종)이 노상왕(정종)에게 첫눈을 받아 보낸 기록이 있습니다.
노상왕이 첫눈을 보고 쫒아가서 잡으려 했지만 놓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설명에 보면 고려시대부터 나라의 풍속에 첫눈이 왔을 때 첫눈을 담아 다른 사람에게 보내면 받은 사람이 잔치를 열어 음식을 대접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합니다.
왕실 안에서도 민간의 풍속이 재미난 것들이 시행되고 있었다.
그러한 것들이 실록에도 기록이 돼 있고,
단순히 실록이 정치적인 문제와,  국정운영에 관한 것 뿐 만 아니라 왕실이든지
민간이든지 일상생활에 대한 내용도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레이션
또한 연산군 일기 60권 22장을 보자.
 ‘공길이라는 광대가 왕에게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비록 곡식이 있더라도 먹을 수 있으랴”는 문구가 등장한다. 여기서 공길은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는 실존 인물이다. 이를 모티브로 2005년 한국 영화 최대 흥행작 ‘왕의 남자’가 탄생된 것이다.  영화를 비롯해 드라마 등,, 실록의 기록을 모티브로 다양한 문화 콘텐츠 작품들이 제작되고 있다.
이렇듯 현대에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학술 뿐 아니라 문화 콘텐츠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터뷰
요즘에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 사극의 소개가 돼는 실록에 기록이 돼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장금의 같은 경우 중종실록을 보면 의녀 대장금이 등장합니다. 왕을 진료했던 의녀로 대장금으로 나옵니다.
그것을 모티브로 학술연구로도 중요한 자료가 돼지만 문화적 콘텐츠를 만드는 유용한 자료로 활용이 되고 있습니다.

나레이션
500년 역사의 기록 조선왕조실록,
일관된 객관성과 진실성을 바탕으로 편찬.
조선왕조실록은, 진정한 기록을 보여주는 귀중한 인류의 보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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