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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상차림, 며느리는 나서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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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9.22.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명절 며느리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죽하면 ‘명절증후군’이란 것이 생겼을까. 그런데 언제부터 며느리가 이렇게 혹사당하게 되었을까? 며느리의 당연한 의무인 듯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제사상은 남자의 몫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 가본 명절 가상 여행. 그리고 현대적인 대안 찾기.

추석 상차림, 며느리는 나서지 마!

명절의 ‘며느리 잔혹사’에 반전이 있다?

추석 상차림, 며느리는 나서지 마!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명절 며느리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죽하면 ‘명절증후군’이란 것이 생겼을까. 그런데 언제부터 며느리가 이렇게 혹사당하게 되었을까? 며느리의 당연한 의무인 듯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제사상은 남자의 몫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 가본 명절 가상 여행. 그리고 현대적인 대안 찾기.

 

이야기 1. 진주 남강, 어느 며느리의 한 맺힌 이야기

울도 담도 없는 집에서 시집살이 삼년만에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얘야 아가 며늘아가

진주낭군 오실 터이니 진주남강 빨래 가라

(중략)

‘산도 좋고 물도 좋은’ 강가에서 빨래를 하는데 남편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하늘 같은 갓을 쓰고 말을 탄 남편은, 그러나 아내를 보지 못한 척 그냥 지나간다. ‘흰 빨래는 희게 빨고 검은 빨래는 검게’깨끗하게도 빨아 돌아오니, 시어머니가 낭군 돌아왔으니 사랑방에 가보라고 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눈 뜨고는 못 볼 현장을 목격한다. 며느리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사랑방에 나가보니 온갖 가지 안주에다

기생첩을 옆에 끼고서 권주가를 부르더라

이것을 본 며늘아가 아랫방에 물러 나와

아홉가지 약을 먹고서 목 매달아 죽었더라

(중략)

울고불고 매달릴 법도 하건만 이 ‘며늘아가’는 아랫방으로 돌아와 목을 매고 세상을 달리하였다. 그제야 철부지 남편은 ‘버섯발로 뛰어나와’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화류 정은 삼 년이요, 본댁 정은 백 년’인데 미처 몰랐다며 ‘사랑 사랑’을 외치지만이미 때는 늦었다.

 

‘남편의 횡포에 의의를 제기한’ 서사 민요라고 전해지는 <진주낭군가>. 남편의 횡포에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죽음’밖에 없는 당시 여인들의 억울한 처지가 묻어난 가사로 여인들의 입과 입을 통해 전해온다. 세상이 많이 변해서 남자들이 ‘역해방’을 외치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어김없이 ‘며늘아가’로 반복되는 시기가 있다.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과 집안 제사. 이때는 세상의 모든 며느리들은 그 고단한 ‘며늘아가’가 되어 고단한 하루를 보낸다. 언제부터였을까? 예전부터 여자들이 이렇게 큰 행사의 상차림을 책임지고 준비해왔을까?

 
  

이야기 2. 궁중 음식도, 제사상도 남자의 영역이었다

일두 정여창 종가의 진찬 - 제사상에 올려지는 음식은 남자들의 몫이었다. 

<일두 정여창 종가의 진찬> 제사상에 올려지는 음식은 남자들의 몫이었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알기 쉬운 명절 차례와 제사>


잠깐 <진주낭군가> ‘며늘아가’의 시집살이를 상상해보자. 강가에서 하는 빨래도 ‘검은 빨래 흰 빨래’ 색을 나눠 빨만큼 손이 여문 여자이니 살림 솜씨가 여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조상을 모시는 제사나 차례 상차림은 오죽 잘 준비했을까’하지만 당시차례나 제사상 차림에 아녀자는 오히려 평소보다 덜 힘들었을 수 있다. 추석 즈음에는 며느리도 친정으로 보낸다는 <농가월령가>의 가사도 있고, 다른 기록을 보면 제사상이나 중요한 수라상은 여자가 아닌 남자가 차렸을 가능성이 그려진다. 조선 선조 때 재상들이 노모의 장수를 기원하여 벌인 잔치를 그린 <선묘조제재경수연도>나 <이경석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 등을 보면 음식을 장만한 ‘요리사’들은 남자였다. ‘숙수’라 불린 이들은 왕의 식사와 궁중에서 올리는 오만 가지 모임과 제사상을 차려내는 일을 했다. 여기에는 여러 얘기가 있다. 임금이나 조상에게 올린 경건한 음식을 여자의 손이 닿는 것은 불경스럽기 때문이라는 이유와 그 무거운 식재료와 엄청난 양의 음식을 한번에 하려면 여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해서라는 것. 모두 그럴 법한 얘기다. 실제로 안동 등 일부 지역 양반들은 제사를 지낼 때 장보는 것에서부터 차리기까지, 제사에 오를 음식은 남자들이 하고 여자들은 허드레 심부름 정도만 하는 풍습도 있다. 그 고귀한 ‘양반의 혈통’이라면 지금도 조상에게 바치는 귀한 음식은 그 집안 남자들의 몫이 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경석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 

<이경석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 
연회도 중앙에 화로 주변에 모여 있는 흰 색 옷의 남자들이 요리를 담당했다. 
모자를 쓰고 위생을 지킨 모습이 눈에 띤다. 문화재청




이야기 3.조상의 직계 ‘자손’이 주체,‘포트럭’상차림으로 약속!

 

집안마다, 지역마다 달라지는 종가의 제사 상차림 

집안마다, 지역마다 달라지는 종가의 제사 상차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애 류성룡 종가, 퇴계 이황 종가
충재 권벌 종가, 양민공 손소 종가의 상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알기 쉬운 명절 차례와 제사>


이제 현재의 이야기를 하자. 요즘 추석이나 설상차림은 어떨까? 여전히 남자들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 여자들은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나눠지고 장보고 전 굽고, 고기나 생선 삶고 굽고 하는 건 여자의 몫이다. 더욱이 맏며느리는 손님 방문만으로도 책임이 막중해지고 스트레스가 커진다. 그나마 요즘은 온전히 맏며느리에게만 맡기는 경우는 드물고 각자 음식을 나눠 장만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으니 다행한 일이다. 좋은 현상이다. 이와 더불어 음식 장만의 주체는 조상의 직계 자손이 되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남자들이 적극 제 몫을 찾아 음식 장만에 참여 하는 것이 어떨까? 제사, 차례 등이 되어서야 비로소 온전히 모이는 가족 형태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피해의식과 스트레스에 병들어간다면 그 형태가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들, 시누이, 막내 며느리까지 각자 분담해서 서양의‘포트럭’파티처럼 준비해오는 것이 현실적인 해답이 될 수 있다. ‘홍동백서’니 하는 어려운 격식에서 벗어나 제철 재료로, 소박하게 치르는 것은 물론이다.


[참고 자료]
- 출처
: 문화재청www.cha.go.kr,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알기 쉬운 명절 차례와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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