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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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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9.11.

“어제 길을 지나던 중이었소. 길가 담벼락 너머로 막 피어나던 목련꽃이 내게 말을 걸었소.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내가 아팠던 건지 아닌 건지는 모르오. 다만 목련이 날 보고 그렇게 말했다는 것 뿐. 햇살에 눈을 찌푸린 내가 찌푸린 얼굴로 목련을 올려다보았을 때,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목련은 막 꽃봉오리를 밀어내고 있는 중이었소. 세상에 이 세상에 꽃을 피워 내려 안간힘을 쓰는 목련 보다 더 아픈 것이 어디 있단 말이오.”

당신에게 박수를

당신에게 박수를


 

 

“어제 길을 지나던 중이었소. 길가 담벼락 너머로 막 피어나던 목련꽃이 내게 말을 걸었소.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내가 아팠던 건지 아닌 건지는 모르오. 다만 목련이 날 보고 그렇게 말했다는 것 뿐. 햇살에 눈을 찌푸린 내가 찌푸린 얼굴로 목련을 올려다보았을 때,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목련은 막 꽃봉오리를 밀어내고 있는 중이었소. 세상에 이 세상에 꽃을 피워 내려 안간힘을 쓰는 목련 보다 더 아픈 것이 어디 있단 말이오.”

 

연극 <줄리에게 박수를>의 주인공은 연극배우다. 우유배달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배우의 꿈을 놓지 않는 가난한 연극배우다. 인용한 대사는 가난한 그가 자신만큼이나 가난한 그녀에게 하는 사랑고백이다. 이제 막 꽃을 피워내려 꽃봉오리를 밀어 올리는 중인, 세상에서 가장 아플 목련이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던지더란다. 자기가 더 아프면서……. 힘들 때면 언제나 떠오르는 말이다.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 적극적으로 구직시도를 하지 않았으니 이렇다 할 일을 찾지 못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연이 닿아 잠시 몸을 의탁했던 곳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결국 당초 약속한 시간만 채우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이후로도 구직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한 동안 밥벌이를 하지 못했다. 그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그때 저 대사가 생각났다. “아프지 마라”는 목련의 위로의 말이.

 

취직을 준비하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공연관람은 사치일 수도 있다. 한 끼 식대를 아끼려 굶고, 교통비를 아끼려 걷는 형편이라면, 분명 사치다. 그러나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가 지갑 형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보다 궁극적인 이유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일 터. 그 시간에 영단어 하나를 더 외우거나, 이력서 한 통을 더 쓰는 게, 그도 아니라면 술 한 잔에 시름을 잊는 게 낫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예술작품이 그것을 만드는 생산자에게라면 모를까, 수용자에게 밥을 먹여주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예술에는 분명 다른 몫이 있다.

 

 

 

NT live-hamlet 

 

NT live-hamlet ⓒ 씬플레이빌 제공

 

 

 

우리가 익히 아는 고전들은 대개 실패한 사람들의 서사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그랬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랬다. 덴마크 왕자 햄릿은 왕위를 잇지 못했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현생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다.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의 이상은 끝끝내 실현되지 않고, 그는 정신이상자라는 손가락질을 피하지 못한다. 러시아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대가 안톤 체호프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지리멸렬한 생을 이어간다. 대표적으로 <바냐 삼촌>의 바냐가 그렇다. 죽음의 벼랑까지 내몰리지는 않으나, 변화가 없는 상태는 죽음과는 다른, 또 다른 이름의 비극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현대의 고전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고와 디디는 언제 올지, 심지어 올지 말지조차 모르는 절대자 고도를 기다리며 하릴없는 시간을 보낸다. 나아가 카프카의 <변신>에서 벌레로 변했던 그레고리 잠자는 결국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벌레의 몸으로 생을 마감한다.

 

결말만 놓고 따지면, 이들 모두는 실패했다. 파멸했다. 스스로 자처했건 운명에 맞서다 패배했건 그들은 결국 요즘 말로 표현해 ‘루저’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바로 저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고전이라 부르며 예찬한다. 고전이란 모든 것을 마모시키고 소멸시키는 시간의 힘에 맞서 생명력을 잃지 않은 것.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그것을 읽고 보고 받아들이고 널리 전파했던 수용자들이 있었던 덕이다. 사람들은 온갖 고초를 견디고 고난을 이겨낸, 그래서 마침내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담에 희망을 엿보기도 하지만, 반대로 스스로 몰락의 길로 들어선 이들을 통해 어떤 위로를 받기도 한다. 거기서 예술작품의 사회적 기능을 찾을 수 있다. 예술이란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지는 못하지만, 누구나 쓰러질 수 있다고, 쓰러진 것이 전부가 아니라 말하며 일어설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고도를 기다리며 산울림소극장 공연사진 

 

고도를 기다리며 산울림소극장 공연사진 ⓒ 씬플레이빌 제공 

 

 

 

앞서 저들에게 실패한 사람이라 낙인을 찍었지만, 그들을 실패자하는 세 글자로 단정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햄릿은 선왕의 복수를 이루었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지켜냈다. 돈키호테는 꿈을 잃는 것이야말로 비극임을 몸소 보여주었고, 바냐 삼촌은 지리멸렬한 인생이라도 견뎌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고고와 디디는 기다림을 완성한다. 그레고리 잠자는 사람으로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살아생전 보지 못한 진실을 대면했다. 죽음이 인생의 끝이라 단정하는 이들에게 죽음은 비극이나, 삶의 한 과정이라 생각하는 이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비극이 아니다.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죽음을 통해서 생의 어떤 성취를 거두었다면, 그들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라 단언할 수 없다. 우리는 거기서 위안을 받고, 남들이 쉽게 말하는 패배가 패배만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이자 응원이고 격려이다.

 

갈무리는 앞서 인용했던 연극 <줄리에게 박수를>의 대사로 대신하려 한다. 자신의 생은 아무런 특별할 게 없는 어중간한 인생이었지만, 사랑만큼은 특별하고 싶다며 남자의 고백을 거절하는 그녀에게 가난한 연극쟁이가 남기는 말이다. “아프지 말라”는 대사만큼이나 큰 위로가 되었던 이 말이, 지금 힘겨워하는 이들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당신에게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

 

“저는 오늘부터 세상의 모든 어중간한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낼 겁니다. 이름 없는 꽃은 정말 이름 없는 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그 이름을 찾아 내지 못했을 뿐. 그 꽃들도 분명 향기를 뿜고 벌 나비를 유혹했을 테니까요. 아직 제 이름을 찾지 못한 모든 꽃들의 향기가 오늘 하루 종일 코끝을 찔러댔습니다. 향기에 취해서 제일 먼저, 제가 있는 자리가 어딘지 확인해 주고 있는 이 줄리에게……. 줄리에게 조용히 박수를 보냅니다.”

 

 

 

바냐삼촌_2008 타바코프 극단_SPAF공연 

 

바냐삼촌_2008 타바코프 극단_SPAF공연 ⓒ 씬플레이빌 제공

 

 


** 청춘이 다 가기 전 한 번은 보면 좋을 공연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을 포기하는 것이라 강변하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공연 중). 나아질 것 없는 현실에서도 ‘더 좋아질 거야, 더 나아질 거야’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연극 <바냐 삼촌>(공연 중). 사랑으로도 성공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치환 가능한 고도를 기다리는 이들의 부조리한 이야기 <고도를 기다리며>(내년 공연 예정). 무엇보다 당신의 어중간한 인생에도 향기가 있다며 조용히 박수를 보내는 <줄리에게 박수를>(내년 공연 예정). 그리고 한 편 더. 우리 시대 청춘들을 위한 가슴시린 찬가 <청춘예찬>(현재 공연 예정 없음)도 젊은 날 놓치면 아쉬울 연극이다.

 

 

[메인 사진 출처]

- 2015 라만차 김호영, 조승우 씬플레이빌 제공

 

 


- 글 김일송(씬플레이빌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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