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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의 이해

한국 전통문양의 특징

문양은 의식의 반영이며 정신활동의 소산임과 동시에 창조적 미적활동의 결과이다

순수감상용 미술이 작가 개인의 주관적 사상과 정서를 표현한 것인 반면에  생활미술로서의 문양은 항상 집단적인 가치 감정의 상징형으로 일반화되어 있다.

한국 미술사에서의 문양의 의미

문양은 의식의 반영이며 정신 활동의 소산임과 동시에 창조적 미화 활동의 결과이다. 이런 점에서 문양에는 조형 미술의 일반 원리가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주제의 성격이나 표현의 내용으로 볼 때는 순수 감상용 미술과는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곧 순수 감상용 미술이 작가 개인의 주관적 사상과 정서를 표현한 것인 반면에 생활 미술로서의 문양은 항상 집단적인 가치 감정의 상징형으로 일반화되어 있다.

문양은 그것을 향유하는 집단 사이에서 약속된 부호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 이 때문에 문양이 묘사하고 있는 사물이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도 사람들은 문양만 보고도 어떤 적절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예컨대 상상의 동물인 용이나 봉황 문양을 보게 되면 그것에 얽힌 이야기와 신이(神異)한 현상들을 기억해 상서(祥瑞)와 길상(吉祥)의 기운을 감지한다. 복숭아 문양을 보면 서왕모 전설의 천도(天桃)와 관련된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장수(長壽)의 의미를 되새기며, 잉어 문양을 보면 등용문 설화의 내용을 기억하면서 입신출세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들은 문양을 그린 사람이나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된 인식 세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

특정 사물이 다른 세계를 연상시킨다든가 다른 사물과 흡사하다는 것에 근거를 두고 거기에 현실적인 욕망을 실어 그것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것이 주술의 사고 원리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 민족이 공통적으로 소망하던 부귀(富貴), 다남(多男), 강령(康寧) 또는 일상적 윤리 덕목 같은 현세적 가치들이다. 활짝 핀 모란꽃을 그린 문양을 부귀에 대한 소망의 표현이며 여성들의 생활공간에 석류나 포도 문양을 장식하는 것에는 많은 아들을 얻고자 하는 주술적인 심리가 담겨져 있다. 효제충신(孝悌忠信)의 문자 문양은 그러한 덕목을 현실에 실천함으로써 장래에 이상적인 세계에서 살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부적의 글씨처럼 만(卍)자나 희(囍)자 같은 추상적인 문양은 단순한 장식 효과를 뛰어넘는 계속되는 즐거움과 행복에 대한 기원을 담고 있다. 따라서 전통 문양은 이상적인 삶에 대한 현실적 기원을 의탁하는 일종의 주술적 대상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우리 전통 문양은 우리 민족의 집단적인 가치 감정이 통념에 의해 고정되고 표상된 제2의 자연 또는 상징적 기호에 의해 표현된 미술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문양은 생활 미술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단순히 감상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기원을 담은 주술적 대상으로 또는 그런 정서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매개체 구실을 하고 있는 상징적 조형물이다.

시대별 문양의 특징
원시시대

한반도에서 생활용기에 의도적으로 나타낸 무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신석기 문화기에 들어서면서 부터이다.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빗살무늬토기는 입구가 넓고 바닥이 뾰족한 형태에 짧은 음각(陰刻)으로 새긴 기하학적인 줄무늬가 특색을 이룬다. 주둥이 부분 둘레에는 점(點) 또는 짤막한 빗금무늬를 띠 모양으로 몇 줄 돌렸고, 그 밑 넓은 공간은 우선 긴 빗금 띠를 가로줄 또는 세로줄로 정연하게 베푼 것일 일반적인 형태이다. 이러한 무늬는 간결하면서도 장식하겠다는 뚜렷한 의도가 보일 뿐 아니라, 그 정연하고 통일된 무늬의 내용이 지니고 있는 더 깊은 뜻을 암시하고 있다. 신석기 문화 후기에는 직선적인 무늬는 점차 쇠퇴하고 몸체에는 배경을 남겨둔 채 점열로 물결모양, 노끈모양, 산모양 등을 표현한 곡선무늬가 나타난다. 신석기 문화에 이러한 기하학적무늬가 나타나게 된 배경에는 초기(草器)의 사용을 들 수 있다. 초기(草器)는 나뭇가지나 대오리, 풀줄기 등을 엮거나 짜서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의 토기에 나타나는 무늬들은 초기의 짜임새를 닮아 있다. 처음에는 질그릇을 만드는 과정에서 무심히 무늬를 박아 내었지만, 점차 농경신앙이 싹트면서 의례적인 무늬로 그 성격이 변화하여 풍요와 수확을 상징하는 기호가 되었다. 따라서 빗살무늬토기는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다기보다는 제기(祭器)의 성격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문화는 화북지방의 오르도스(Ordos)와 시베리아의 미누신스크(Minusinsk), 스키타이(Scythian)의 청동문화를 받아들여 수렵·기마민족의 문화요소가 나타난다. 하지만 청동기나 바위구름에 나타나는 농경생활 장면, 사냥장면, 고기잡이 장면, 각종 물고기무늬 등을 통해 주로 농경과 어렵생활 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삼국시대에는 중국문화권의 영향과 불교의 유입으로 인해 미술전반에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삼국시대의 유물은 같은 문화권 안에 있기에 유사한 특징을 나타내면서도 무늬의 소재나 표현방법에 있어 차이점을 보인다. 우선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사신도(四神圖)를 비롯하여 일(日)·월(月) 성숙도 등은 신라미술에서는 토기에 주로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밖에 신라의 선각무늬 토기와 인물, 동물형상 토우장식토기(土偶裝飾土器)들이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는데 특히 경우 천마총 출토 ‘천마도(天馬圖)’ 역시 고구려 고분벽화에 똑같은 모양으로 묘사되고 있는 등 고구려 고분벽화에서의 숭천사상(崇天思想)이 신라미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한편 금속공예 장식법에서 투작기법(透作技法)은 삼국이 다 같이 유행을 했으나, 무늬의 소재나 표현방법이 다소 다르기 때문에 쉽게 지역적 특성을 알 수 있다. 같은 문화권 속에서 같은 시기에 나타나면서도 이렇듯 서로 다른 뉘앙스를 풍기게 된 것은 각기 다른 외래문화의 영향을 말해준다. 투작무늬의 기본 소재는 크게 식물무늬 계열과 동물무늬 계열, 그리고 추상적 무늬 계열로 구분된다. 식물무늬 양식은 주로 백제 금속공예장식의 특징으로 볼 수 있으며, 동물무늬의 소재는 신라 금속공예장식, 추상적인 표현은 고구려 금속공예미술에서 특성을 이루고 있다. 백제의 식물문양은 중국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신라의 동물문양은 한식(漢式) 투조장식에서 영향 받은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

7세기 중엽, 오랜 숙원인 삼국 통일을 이룩한 신라는 고구려, 백제가 지닌 문화적 특성과 언어, 습속 등을 본래 지니고 있는 신라 고유문화 속에 흡수하여 새로운 민족문화를 창출할 수 있었다. 이 시기는 특히 불교가 가장 흥성했던 시기로 서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새로운 양식과 공예기법의 도입으로 서역풍(西域風)의 무늬가 나타나면서 한층 원숙한 표현력이 발휘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무늬로는 와당이나 금속공예에 자주 사용되었던 화려한 보상화무늬를 들 수 있다. 분황사(芬皇寺) 석탑 내에서 발견된 금동 투각 장식판에도 보상화무늬가 투조되어 있으며, 임해전지(臨海殿址)에서는 다양한 보상덩굴무늬가 새겨진 문양전이 발견되었다. 특히 임해전지 보상덩굴무늬의 덩굴 사이에는 마주보고 있는 사슴 한 쌍이 있어서 서역계 무늬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통일신라기에 와서는 내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경향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데, 그 예로 불교적인 장례방법에 의해 생겨난 녹유인화문골호(綠釉印花文骨壺)가 있다. 여기서는 삼각형무늬, 빗살무늬, 동그라미무늬와 같은 기하학적인 무늬와 보상화무늬,덩굴무늬 등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골호의 무늬들은 고분 벽화에서 꽃이나 구름, 구슬 등이 장엄된 것이나 사찰의 불탑이나 사리장치 등을 장엄한 것과같은 의미로, 극락정토를 표방하는 것이다.

고려시대

고려는 건국 초부터 국교를 불교로 정하였고, 통일신라의 융성하였던 불교의 바탕 위에 귀족사회가 번영하게 되었기 때문에 불교미술의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또한 공예분야에서도 고려청자를 비롯하여 나전칠기, 장신구, 동기(銅器) 등 화려한 무늬가 시문된 각종 공예품들이 등장하기에이른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표면에 무늬를 새기고 그 안에 다른 재료를 넣어 장식하는 상감기법이 공예의 각 분야에서 나타난다. 상감기법은 청자에서 가장 먼저 발달되었으며, 11~12세기경 불교의 흥성과 더불어 기술적으로 발전을 보았던 청동은입사기법(靑銅銀入絲技法)과 나전칠기(螺鈿漆器)의 무늬 놓기 방법과 연관되며 고려시대 공예문화의 특성을 대표한다. 이들 공예품에는 가을철 강변을 배경으로 수양버들과 물새들이 있는 풍경무늬인 갯버들·물짐승무늬(蒲柳水禽文)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이 특징적이며, 한국적인 정취를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다. 고려청자에는 앞서 언급한 갯버들·물짐승문과 같이 자연경관을 소재로 한 무늬와 구름·학문과 같이 동물을 소재로 한 무늬, 국화문, 모란문, 덩굴문과 같은 식물무늬 등을 시문(施紋)하였다. 고려시대 나전칠기에 나타나는 무늬는 가재, 대모(玳帽), 은(銀) 또는 동선을 감입하여 나타내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하였다. 그 무늬는 대개 상감청자, 청동은입사정병과 향로, 고려 불화(佛畵) 등에서 나타나는 소재와 일치하는데, 덩굴문, 국화문 등이 특징적으로 쓰여 졌으며, 또한 수양버들, 단풍, 갈대 등이 있는 물가 풍경과 하늘에는 물새가 날아오르고 또 물에도 쌍쌍이 헤엄치는 물새가 회화적으로 묘사되었다.

조선시대

조선은 국가적인 정치 이념과 문화의 배경이 주자학(朱子學)을 바탕으로 한 유교(儒敎)에 있었다. 새로운 바탕 위에 세워진 조선은 적극적으로 국가체제의 정비를 이루었으나,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일어난 전쟁으로 인해 사회전체가 타격을 입었으며 문화 발전의 저해요소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미술은 새로운 한국적인 성격이 두드러지게 드러났으니 그것은 전대의 숙련된 기술의 계승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민간의 소박한 의식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조선시대의 특징적인 무늬로는 길상(吉祥)무늬를 들 수 있다. 대표적인 길상무늬인 문자(文字)무늬는 수(壽), 복(福), 강(康), 녕(寧), 부(富), 귀(貴)와 같은 문자를 원형이나 사각의 테두리 선 안에 써넣은 형태로 장식의장으로서의 성격을 더욱 강조하였다. 문자무늬로는 연년익수(延年益壽)나 다남자(多男子)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도 사용되었다. 또 발음상 길상의 의미를 지닌 무늬를 시문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예를 들면 중국어 복(福)과 불(佛)이 발음이 같다고 하여 불수감나무(佛手柑)무늬를 복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사용하였고, 박쥐무늬의 경우도 박쥐복(?)자와 복 복(福)자가 발음이 같아서 애용되었다. 그리고 우주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이 되는 태극무늬나 십장생무늬같이 모든 사람이 바라는 소원을 의미하는 무늬들이 선호되었다. 조선왕조가 시작되면서 용무늬에 대한 인식도 새로워져서 곤룡포나 궁궐 건축에 왕가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다. 단청의 무늬로는 연꽃무늬나 덩굴무늬, 구름무늬 등을 장식하였으며 만자(卍字)무늬나 아자(亞字)무늬, 거북등무늬와 같이 기하학적으로 도안화된 무늬들도 건축물이나 공예품에 시문되었다. 분청사기에서 백자로 전개된 조선시대 도자기에도 다양한 무늬들이 나타난다. 분청사기에는 인화무늬기법[印花文技法], 조화무늬기법[彫花文技法], 박지무늬기법[剝地文技法], 상감무늬기법[象嵌文技法], 철화무늬기법[鐵?文技法] 등 여러 가지 기법을 사용해서 각각의 기법에 어울리는 무늬들을 시문하였다. 도장 같은 도구로 눌러 무늬를 새기는 인화무늬기법으로는 국화무늬나 빗방울무늬(雨點文) 등을 나타내었으며, 박지나 조화무늬기법으로는 잎이 넓은 모란 같은 식물무늬를 주로 나타내었다. 또 붓과 안료를 이용해 그를 표면에 무늬를 그려 넣는 철화무늬기법으로는 이름을 알 수없는 풀꽃무늬나 연꽃무늬, 덩굴무늬, 물고기무늬 등을 자유롭게 표현하였다. 청화백자의 경우에도 구름·용문을 비롯하여 꽃·새문, 국화문, 대나무문, 산수무늬, 각종 길상무늬 등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며 나타난다. 조선시대의 목칠공예품에 나타나는 무늬는 대개 시대적으로 도자기 무늬와 유행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으며, 자수, 매듭 노리개장식, 금은제 장신구들, 옥석공예품, 직물류들과 맥을 같이 한다. 예를 들자면 조선 초기 15, 16세기의 나전칠기의장에는 연꽃덩굴무늬, 보상덩굴무늬, 봉황무늬, 용무늬 등 고려시대의 도안이 계승 연장되는 경향이 있지만 성글어지면서 순박한 맛을 보여준다. 중기인 17, 18세기에는 도안과 구성에 점차 매화무늬, 대나무무늬, 꽃·새무늬 등이 많아진다. 말기에 들어선 19세기에는 나전기법에 끊음질기법이 성행되고 산수풍경의 점경(點景)을 사실적으로 표현된 것이 많아진다. 또한 나전, 자수 등의 도안에\서 전화(轉化)된 듯싶은 무늬가 화각공예(華角工藝)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화각베갯모의 무늬 중에는 거의 자수베갯모나 나전베갯모의 도안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화각실패, 자, 침통, 베갯모, 반짇고리, 애기농, 필통, 부채살, 장도칼, 예물함, 경대, 참빗, 벼루집, 붓뚜겁, 등에 베풀어진 무늬는 십장생이 가장 흔히 쓰여 졌고 그리고 용, 봉황, 기린, 국화, 매화, 대나무, 꽃·새 무늬가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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