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시라노 드 벨주락(Cyrano De Bergerac)

작가소개
에드먼드 로스탕(Edmond Rostand, 1868~1918) 프랑스 극작가, 시인. 마르세유 출생. 처음에는 법률을 공부했으나, 시집 <심심풀이(Les Musardises)>(1890)를 낸 이후 문학으로 전향하였다. 이 시집에서 그는 이상을 유머로 표현하였는데, 유연한 시어의 구사능력을 보여 후일의 작품을 예고했다. 첫 희곡으로 <빨간 장갑(Le gant rouge)>(1888)을 발표했고, 이어서 빅토르 위고의 영향을 받은 시극 <로마네스크(Les Romanesques)>(1894)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극작에 들어갔다. 이어 중세의 전설에서 취재한 시성(詩性)이 풍부한 경희극 <먼 나라의 공주(La Princesse lointaine)>(1895)를, 2년 뒤에는 성서에서 취재한 <사마리아의 여인(La Samaritaine)>(1897)을 모두 베르나르 주연으로 상연하였다. 또 <시라노 드 벨주락(Cyrano de Bergerac)>(1897)을 생 마르탱극장에서 상연하여 크게 명성을 떨치고, 입센과 하우프트만이 유행하던 연극계에 서정적 이상주의로써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 뒤의 작품으로 나폴레옹 2세의 비운을 제재로 하여 쓴 <새끼 독수리(L'Aiglon)>(1900), 상징주의를 도입하여 등장인물이 닭을 비롯한 각종 동물로 분장한 우유극(寓喩劇) <샹트클레르(Chantecler)>(1910)가 있다.
내용
호걸이며 코가 크고 못생긴 군(軍)간부후보생 시라노는 극장에서 용감하게 권력에 저항한다. 그는 남몰래 좋아하는 사촌여동생 록산을 만나는데, 새로 온 간부후보생인 미남 크리스티앙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시라노는 무뚝뚝한 크리스티앙을 설득하여 두 사람의 밀회를 성공시킨다. 록산은 시라노가 대필한 편지에 감동되어 전쟁터로 오지만 크리스티앙은 전사한다. 그로부터 15년 후, 시라노는 수녀가 된 록산을 매주 찾아가 위로하는데, 그날 적의 음모에 걸려 상처를 입으면서도 약속한 시간에 나타난다. 록산은 시라노의 말에서 시라노가 처음부터 그녀를 사랑한 것을 알아차리지만, 때는 이미 늦어 시라노는 숨을 거둔다. 실재인물인 주인공 시라노의 의기, 시적 재능, 박식, 용감함을 극단화시켜 낭만적인 영웅을 창조하였는데, 지금도 애창되는 명대사가 많다.
국내공연연보
1958년 6월 20일~25일 국립극단 / 시공관 / 이진순 연출 1964년 연극아카데미 / 이진순 연출 1971년 1월 9일~18일 극단 실험극장 / 명동국립극장 / 김현일 연출 1992년 5월 14일~31일 극단 띠오빼빼 / 학전소극장 / 김철리 역 / 공연제목: 시라노 2004년 6월 연극원 / KNUA예술극장 / 서충식 연출
예술가
이진순(李眞淳, 1916~1984) 이해랑, 김동원 등과 함께 일본대학 연극과에서 함께 공부했던 이진순은 단역배우로 무대에 서면서부터 연극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일본유학생들로 결성된 학생예술좌에서는 주로 단역배우로 나섰고, 1938년 귀국 후에는 이해랑, 김동원 등과 함께 유치진 주도의 극연좌 신인배우로 한두 번 무대에 섰다. <목격자>(앤더슨 작)와 <깨어서 노래부르자>(클리포드 오뎃츠 작) 두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진순은 곧 극단을 떠나 북경으로 이주한다. 1938년부터 1946년까지 8년 동안을 그곳에서 보내게 된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그는 대학동기생인 이해랑, 김동원 등과 어울리다가 1947년 10월 중국통이라 할 김광주와 손잡고 극단 신지극사라는 단체를 조직했다. 그리고 김승호, 강계식, 전두영, 주선태, 하옥주 등 소장배우들과 함께 중국 작가 조우의 <태양이 그리워[日出]>를 직접 연출하여 공연했으나 별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2회 공연으로 <언덕에 꽃은 피고>라는 작품을 직접 쓰고 연출했으나 창립공연보다도 관심을 모으지 못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간간이 연출을 했다. 이때 신협에서 <붉은 장갑>을 연출했지만 호평을 받지 못하면서 신협과 멀어졌고, 이후 국립극장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국립극장과는 1950년 개관 공연 때 오페라 <춘향전>을 연출한 인연이 있었다. 그러다 1960년대 동인제 극단 시대가 열리자 그도 1966년에 극단 광장을 조직하고 나섰다. 그는 창단의 변에서 “어디까지나 민중과 더불어 살며 입김을 나눠야 한다. 민중이 연극에서 멀어져가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연극에 대한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데 있지 않을까”라며 기성극계를 비판한다. 따라서 그는 고설봉, 백성희, 신원균, 이진수, 이석구, 고은정 등 중견과 신인을 중심으로 극단을 조직하고 셰익스피어의 <윈저의 아낙네들>로 창립공연을 올린다. 음악극에 관심이 많았던 이진순은 국립극장에서 추진한 창극정립운동에 앞장섰고, 연극잡지 발간에도 열성을 기울였다. 즉 그는 6·25전쟁 이후 최초로 연극 전문지인 <연극>을 자비 출판한 것이다. 물론 이 <연극>지는 2호를 발간하는 데서 멈췄지만 우리 연극계에 전문잡지의 필요성을 제시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연극전문 잡지 발간에 대한 욕구는 그가 동국대 연극과 전임이 되고 연극협회 이사장까지 맡으면서 실현된다. 전문잡지 <한국연극>을 월간지로 발행하고 한국희곡전집도 발간하는 등 출판사업에 힘을 쏟는다. 이진순은 작품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연출하기로 유명했다. 가령 정통극에서부터 악극, 창극, 무용극, 오페라 등 전방위에 걸쳐 손대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그가 연출한 수백 편의 작품 가운데 대표작은 역시 정통극과 창극에 있다. 1961년 국립극단의 <산불>로부터 <갈매기>(체호프 작), <학마을 사람들>(이범선 원작), <로물르스 대제>(뒤렌마트 작)로 이어지는 정통리얼리즘 계열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미첼 작), <전쟁과 평화>(톨스토이 원작), <남한산성>(김의경 작) 등 대형작품들은 이진순이 연출가로서 족적을 남긴 작품들로 평가된다. 또한 1960년대 국립극장이 국극정립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면서부터 창극에 깊숙이 간여한 그는 누구보다도 창극에 애착을 갖고 작업에 임했다. <춘향가>, <흥보가>, <배비장전>, <수궁가>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어쨌든 이진순은 해방 이후 이해랑과 함께 연출 제3세대의 양각(兩脚)을 이룬 인물이다. 이해랑과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며 서구근대극을 이 땅에 이식, 구체화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연출활동을 했다. 그러나 연극전문화, 대중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오로지 신극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일관했던 이해랑과는 다른 의의를 지니는 연극인이라 하겠다.(……) 10회 공연(58년)은 반대로 너무도 유명한 불란스 낭만주의 극인 <시라노 드 벨주락>(1897, 손우성 역/ 이진순 연출)이었다. 에드몽 로스탕이 쓴 이 작품은 코가 너무 커서 사랑하는 연인 록산느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는 주인공이 신분을 감추고 록산느의 애인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재능을 쏟아 붓는 낭만 희극이다. 무술과 시작에 뛰어난 시라노는 자신의 신체적인 결함 때문에 자신을 감추고 사랑하는 록산느의 연인 행세를 하는 불란서 낭만적 영웅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런 낭만적 인물을 무대에서 훌륭히 소화해낼 만한 배우가 당시 한국 무대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한국의 시라노는 탄생하지 못했다. ‘초창기 번역극 무대’, 한상철, <국립극단 50년사>, 연극과인간, 2000(……) 다분히 이질적이고 도전적이면서 동시에 고무적인 공연이 얼마 전에 있었다. 김철리 연출로 극단 띠오빼빼가 학전 소극장 무대(5월 14일~31일)에 올린 <시라노>(에드몬드 로스땅 작, 김철리 번역)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사실주의가 태동하던 19세기말 낭만주의적 색채를 흠씬 풍기며 빠리 무대에 선보여져 관객의 갈채를 받아낸 고전 중 고전이다. 극형식, 극중인물, 그들의 삶, 삶에 대한 태도, 그리고 관객을 향한 작품의도 등에 있어서 극히 방대하고 복합적이며, 이상적·낭만적이라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시대적 취향과 여건 등을 감안할 때 작품이 지닌 강점이기보다는 작품의 약점, 한계로 느껴진다. 즉, 이 작품은 자칫 진부하고 무의미하며 퇴행적이고 비생산적이라고 일축될 수도 있으며 또한 그러한 생각이 현실화되기도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극단 띠오빼빼의 <시라노>는 그러한 예견을 뒤엎고 작품에 충실, 현명, 예리하게 접근함으로써 작품의 강점을 부각시키고 약점과 한계를 극복한 완성도 높은 무대였다. 또한 이번 <시라노>는 오랜만에 동숭동의 빈약, 결핍을 보완해주고, 동시에 다소 옛스럽지만 진지하고, 의미 있고, 깊이 있고, 이상적인 것에 대한 욕구, 그 욕구 충족의 가능성을 보여준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우선 이번 공연의 성과를 부각시키기 위해 위에서 언급한, 작품의 ‘방대하고 복합적이며, 이상적, 낭만적’인 특성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 주인공의 성향과 삶, 전체적인 인물구성, 극구조, 무대설정, 언어 등에 있어서 이렇듯 방대하고, 복합적이며, 이상적, 낭만적인 <시라노>가 동숭동의 소극장 무대에서 효과적일 수 있었던 것은 무대 여건을 감안하여 무대를 최대한으로 축소하고 연기에 치중한 연출의 기본방침에 기인한다고 여겨진다. 이번 <시라노>는 배우의 연기를 위한 기능적이고 치장 없는, 그로토우스키의 ‘가난한 연극’을 연상시키는 무대였다. 마루 처리를 한 기본 무대(무대 중앙 뒤편으로 무대 속의 무대 역할을 하거나 높이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조그만 단상이 있는)에 장소를 지칭하는 최소한의 소품 또는 장치들이 더해졌다. 샹들리에, 촛불, 의자 몇 개만으로 화려한 17세기의 호텔 드 브르고뉴 극장을, 천정에서 내려뜨린 시계와 탁자 2세트 등으로 레스토랑을, 이동식 사다리형 구조물로 발코니를, 그 구조물을 돌려놓고 원통형의 배럴을 무대에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전쟁터를, 그리고 하나의 벤치를 놓고 수녀원 정원을 표현했다. 이러한 무대는 당시의 화려함도 공연의 풍요로운 시각, 공간미도 제공 못하는 매우 절제된 것이지만 주어진 여건을 감안할 때 오히려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번 무대는 적어도 극 진행을 방해하거나 극 분위기와 동떨어진 채 그저 공간을 치장하고 있지는 않았다. 물론 무대가 극히 협소하게 느껴지거나(특히 1막 도입부분) 또는 슬라이드나 얇은 막, 조명 효과 등을 이용해서 ‘보는 재미’가 가미될 수 있는 장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들이 이번 공연에서 큰 결점으로 부각되지 않았던 것은 절제된 무대이지만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시각적 변화가 시도되었기 때문이다. (……) ‘약점과 한계를 극복한 완성도 높은 무대’, 김진나, <한국연극>, 1992년 7월
관련도서
<국립극단 50년사>, 국립극단, 연극과인간, 2000
연계정보
-이진순 인물
-실험극장
-이진순(李眞淳)
관련사이트
실험극장
관련멀티미디어(전체7건)
이미지 7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