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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안압지
- 작품명
- 경주 안압지
-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인왕동
- 지정종목
- 사적 제18호
- 장르구분
- 누정건축
- 개요
-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인 674년(문무왕 14)에 '궁내(宮內)에 못을 파고 산(山)을 만들고 화초(花草)를 심고 진기 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안압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못의 이름에 관해서는 초기에 간행(刊行)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과 <동경잡기(東京雜記)>등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로 미루어 안압지란 이름은 조선시대 초기에 와서 폐허(廢墟)가 되어버린 신라의 옛 터전에 화려했던 궁궐은 간 곳이 없고 쓸쓸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못 위에 안압(雁鴨)들만 노닐고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측된다. 문무왕 19년에는 못 서편에 동궁(東宮)이 건립되었다는데, 임해전(臨海殿)은 아마도 정전 (正殿)의 이름으로 생각된다. 그러니까 안압지는 동궁에 속해 있던 못인 것이다. 이 곳은 나라의 경사스러운 일이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 못을 바라보면서 연회를 베풀었던 곳 이기도 하다.
-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 현재의 모습은 1975년부터 2년간에 걸쳐 실시된 발굴조사 결과로 얻어진 자료를 토대로 정비한 것이다. 이 곳에 대한 발굴조사는 1975년 3월부터 1976년 12월말까지 2년간에 걸쳐 실시되었다. 못의 둘레는 호암석(護岩石)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었는데 서암(西岩)과 남암 (南岩)은 직선으로, 북암(北岩)과 동암(東岩)은 곡선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못 안에는 크고 작은 3개의 7섬이 있었고, 물은 동쪽 북천의 지류(支流)에서 끌어온 것 같으며, 넓이와 높이가 약 40㎝정도의 화강암으로 된 수로를 통하여 들어온 물은 2개의 큰 석조를 거쳐서 못에는 폭포와 같이 낙하하도록 만들어졌다. 출수구(出水口)는 북암 중간 지점에서 발견되었는데 마개가 있어서 수위(水位)를 조절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목관(木管)을 통해서 빠져나간 물은 당시의 하수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못 주변에서 회랑지(廻廊址)를 포함하여 26개소의 크기가 다른 건물 터가 확인되어 그 중 서쪽 못가의 5개 건물 중 3개만 신라시대의 건물로 추정하여 복원했다. 초석(礎石)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을 그대로 모조하여 회랑지를 제외한 건물 터에만 배치해 놓았다. 그리고 안압지와 임해전 등 부속건물을 추정하여 50분의 1로 축소한 모형도를 만들어 원래의 임해전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원지(苑池)는 동서길이 약 190평방미터의 평면 속에 15,658㎡의 못을 조성하였다. 못가의 호(湖)안은 다음은 돌로 쌓았는데 동쪽과 북쪽 호안은 절묘한 굴곡의 곡선으로 이루어졌으며 서쪽과 남쪽 호안은 건물을 배치하고 직선을 이용하여 조성되었다. 서쪽 호안은 몇 번 직각으로 꺾기도 하고 못 속에 돌출시키기도 하였다. 못 속에는 삼신도(三神島)인 방장도, 봉래도, 영주도가 배치되었다. 남쪽 섬은 1,090㎡, 중앙섬은 66㎡, 북쪽섬은 495㎡ . 못 호안 주변과 섬에는 괴석을 가득히 배치하였다. 못의 호안 높이는 동, 북, 남이 210㎝ 정도이고, 서쪽의 궁전 건물이 있는 호안은 540cm이다. 이는 못가의 누각에 앉아 원(苑)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곳에서도 동양인은 원림(苑林)을 한 곳에 앉아 바라보는 습성을 보여 준다. 연꽃잎이 부분적으로 서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못 바닥에 강회와 바다 조약돌을 옮겨와 깔아서 물이 맑았던 것이며, 못 가운데쯤 '井'형 목조물(길이 134cm, 높이 101cm 정방형)을 못 바닥에 박아서 그 곳에 연(蓮)을 심어 연뿌리가 번져 나가지 못하게 만든 시설 때문이다. 못 물의 깊이는 약 180㎝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못을 바다로 상징하여 넓게 보이고자 한 것인데, 연꽃이 가득하면 답답하고 좁게 보이기 때문에 못 바닥에 수초가 나지 못하게 강회나 자갈돌을 깔았던 것이다. 발굴 조사 결과 확인된 연못 서쪽 가의 5개 건물 터 중 현재 복원된 3동의 건물(제 1, 3, 5 건물)은 원래 기단부가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복원하고 건축부재는 목부재와 기와 등 출토 유물을 본따 신라시대의 원형대로 추정하여 재현한 것이다.
- 연계정보
- 관련도서 <전국 건축문화자산 경북편>, 건축가협회, 1999 관련사이트
- 관련사이트
- 문화재청
- 관련사이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관련멀티미디어(전체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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