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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루(廣寒樓)

작품명
광한루(廣寒樓)
소재지
전북 남원시 천거동
지정종목
보물 제281호
장르구분
누정건축
개요
광한루는 우리나라 누정원림(樓亭園林)의 대표격인 광한루원의 중심에 있는 누각이다. 조선 세종조의 명정승 황희(黃喜)가 1419년(세종 1)에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누각을 짓고 '광통루(廣通樓)'라 하였는데 그 후 오래되어 허물어지게 되었으므로 1434년(세종 16)에 부사 민여공(閔汝恭)이 중건하였으며 1437년(세종 19)에는 단청하였다고 한다. 1444년(세종 26)에 부사 정인지(鄭麟址)가 광통루에 올라보고 그 아름다움이 월궁(月宮)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와 흡사하다고 감탄하면서 그 이름을 따서 '광한루'라 개칭하였다. 그 후 1582년(선조 15)에 관찰사 정철(鄭澈)과 부사 장의국(張義國)이 중창하여 신선사상의 원림으로 만들었는데 정유재란 때 불타 1607년(선조 40)에 부사 원신(元愼)이 소루(小樓)를 세웠지만 세월이 흘러 무너졌으므로 1626년(인조 4)에 부사 신감(申鑑)이 누각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정조 때 누각의 일부를 증축하였고 1869년(고종 6)에 누각 북쪽의 계단을 증축하였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광한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중층누각(重層樓閣)으로 연못에 면하여 남향으로 배치되었다. 낮은 장대석 기단 위에 방형 초석을 놓고 짧은 하층주를 세웠는데 건물 외곽에서는 초반석(礎盤石)을 놓고 장초석(長礎石)을 세워 하층주를 대신하였다. 하층주 위에는 귀틀을 짜올렸으며 그 위에 민흘림 원주로 상층주를 세우고 창방을 결구하여 축부(軸部)를 구성하였다. 공포는 익공계(翼工系) 형식으로 주간에는 화반(花盤)을 배치하였다. 지붕은 팔작 형식이며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갖춘 겹처마이다. 누각 상층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주위에 계자각(鷄子脚) 난간을 두르고 기둥 사이에는 4분합문을 달아 여름에는 개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가구(架構)는 후면에 퇴칸이 있는 1고주 7량 구조인데 대들보를 전면 평주와 내부 고주 위에 걸치고 그 위에 대공을 세워 중종보(中宗樑)와 종보(宗樑), 종도리를 결구하였다.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상부 가구가 잘 드러나 보인다. 누각 뒷편에는 계단을 두었는데 이는 누각이 북쪽으로 기울어져서 무너질 우려가 있으므로 수리를 하지 않고도 기울어짐을 방지하는 묘책으로 달아낸 것이라 한다. 누각 동쪽에 연접된 부속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인데 전퇴가 달린 온돌방으로 되어있다. 공포는 주심포계(柱心包系) 형식이며 지붕은 한쪽이 팔작, 한쪽은 맞배 형식이다.
도면 및 이미지
[자료제공 : 문화재청]
연계정보
관련도서 <전국 건축문화자산 전북편>, 건축가협회, 1999 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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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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