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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희(姜誠姬)

예술가명
강성희(姜誠姬)
전공
극작
개요
강성희는 44세가 되던 1965년, 유치진이 <자장가>를 <현대문학>에 추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했다. 대개 20대 초반에 등단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현실을 감안해볼 때 강성희의 문단 데뷔는 평범하다고 볼 수 없다. 더구나 늦은 나이에 작품활동을 시작했다는 어려움을 딛고 30여 편에 달하는 작품을 발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작가적 열정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녀가 연극에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는 이화여전 졸업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하던 1974년, 강성희는 졸업 연극 작품으로 기획되었던 제임스 베리의 작품 <Quality Street>에서 배우로 출연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나마 희곡을 써야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고, 마침내 늦깎이 작가가 된 것이다. 학교를 졸업한 후 1948년 경기사범학교 영어 교사가 된다. 거기에서 미술 교사로 있던 유경채 화백을 만나 1949년 10월 결혼식을 올린다. 6·25전쟁 때에도 대구, 진해, 부산 등지로 피난을 다니기는 했지만 교사라는 자리가 있어 그런대로 생활할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도 아버지의 후원에 힘입어 남부럽지 않은 교육을 받았으며, 결혼을 해서는 예술가 남편을 만나 서로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면서 살았다고 볼 수 있다. 2003년 발표한 장막희곡 <염원>은 이러한 가족 사랑과 자기 성취라는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고 억제하면서 살아가는 자전적인 작품으로 남편이자 화가인 Y(유경채)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강성희의 작품들은 크게 일상적 삶을 다룬 것과 실제 인물을 다룬 작품으로 대별된다. 우선, 일상적인 일을 소재로 한 작품은 그녀의 데뷔작 <자장가>를 포함하여 <공해가족>, <변주>, <두 얼굴>, <역광>, <이 세상 크기만한 자유>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대표작은 <역광>과 <엘리 엘리 이 손을>이다. 이 두 작품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인물의 성격이 뚜렷하여 희곡의 생명인 갈등이 두드러지며, 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여성의 몫을 잘 제시하고 있다. 1980년대 접어들면서 강성희는 실제 살아있던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을 여러 편 쓴다. <흰꽃 마을>, <렌>, <어디 있어, 어디 갔어!>, <명륜동입니다>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을 모델로 한 <철쇄>가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등단 이후 짧은 시간 동안 3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창작했던 것에 비해 공연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뭔가 단단히 잘못 됐거든>, <역광>, <이 세상 크기만한 자유>, <흰꽃 마을> 등이 대표적인 공연이다. 이러한 데에는 그녀의 성격에도 원인이 있는 듯하다. 극작가 차범석은 강성희에 대한 첫 인상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30여 년 전 드라마센터에서 돌아가신 유치진 선생님의 소개로 수인사를 했을 때의 첫 인상은 초저녁의 어둠 속에 피어 있는 하얀 박꽃이었다. 화장기라고는 별로 느낄 수 없는 피부는 영락없는 흰 상아의 인상이었다. (……) 높은 교양과 축적된 예술적 의욕을 안으로 숨긴 채 말을 줄이되 앞줄에 나서기를 꺼리는 수줍은, 이를테면 중용과 겸손과 패기를 알맞게 갖춘 지성의 소유자임을 쉽게 터득할 수가 있었다.” (<강성희 희곡전집Ⅰ 뭔가 단단히 잘못 됐거든>, 한누리미디어, 1996) 작가로서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오며 한국 현대연극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극작가 강성희는 분명 우리 연극인들의 지성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생애와 약력
1942년 이화여자고등학교 졸업 1945년 일본 동경여자고등사범학교 졸업 1947년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 졸업 1965년 유치진이 <자장가>를 <현대문학>에 추천하면서 문단 데뷔 1970년~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여성문학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1971년~1974년 성균관대학교 무역대학원 강사 1973년~1985년 성신여자대학교 외국어과 강사 1977년 국제펜클럽 런던 대회 한국대표단 1978년 국제펜클럽 시드니 대회 한국대표단 1981년~1982년 한국희곡작가협회 회장 1986년 국제펜클럽 뉴욕 대회 한국대표단 1987년~1988년 이화여자대학교 동창 문인회 회장 1988년~1995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1997년~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상훈
1987년 펜문학상(희곡 부문) 1988년 한국희곡작가협회 희곡문학상 / 이화여고 문학상 1996년 한국문학상 1998년 보관문화훈장 2000년 대한민국예술원상 2001년 이화여대 동창 문인회 문학공로상
작품활동
1965년 <자장가> 1967년 <소원성취> 1969년 <뭔가 단단히 잘못 됐거든> 1970년, 1976년, 1978년, 1980년 <뭔가 단단히 잘못 됐거든>(대학생 공연) 1970년 <설원의 정>, 김수용 감독, 대야영화사제작, 홋가이도 현지로케 1973년 <공해가족> 1974년 <변주> 1975년 <두 얼굴> / <백합향> / <역광> / <디포옴의 시간> / <역광>, 극단 여인극단, 세계 여성의 해 기념공연 1976년 <사주팔자> / <잘못 푼 미적분> 1977년 <하룻동안의 체류> / <후일담> 1979년 <이 세상 크기만한 자유> 1980년 <쟁투> / <이 세상 크기만한 자유>, 극단 산하 1981년 <내가 없는 방> 1982년 <엘리 엘리 이 손을> 1983년 <철쇄> 1985년 <흰꽃 마을> 1986년 <엘리 엘리 이 손을>, 드라마센터 1988년 <할렘의 어느 밤> 1989년 <렌> 1991년 <부러진 날개> / <날아가는 새> / <폐허> / <렌>, 극단 전망 1992년 <흰꽃 마을>, 극단 춘추, 문예회관소극장 1993년 <원혼의 소리> 1995년 <검푸른 바다> 1996년 <어디 있어, 어디 갔어!> 2000년 <명륜동입니다> 2001년 <내가 없는 방>, 극단 창작마을 2003년 <염원>
대표작품
<뭔가 단단히 잘못 됐거든> <엘리 엘리 이 손을> <렌> <흰꽃 마을> <이 세상 크기만한 자유> <염원>
저서
1977년 <강성희 희곡집Ⅰ 두 얼굴> 1982년 <강성희 희곡집Ⅱ 이 세상 크기만한 자유> 1986년 <강성희 희곡집Ⅲ 흰꽃 마을> 1991년 <강성희 희곡집Ⅳ 영혼의 오후> 1996년 <강성희 희곡집 (전5권)> 2000년 <명륜동입니다> 2002년 <죽음보다 강한 힘>
리뷰
한국에는 소리 나지 않는 극작가들이 많이 있다. 즉 희곡은 문자로 발표되고 있으나 무대에서 배우에 의해 표현되지 않은 채 소리없이 책으로만 읽히고 있는 극작가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한국희곡작가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극작가의 수는 근 50명이나 되는데 그 중 자신의 희곡이 무대화되는 작가는 불과 몇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뭔가 잘못된 극계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 그들은 다만 책으로 발표하는 데만 만족하지 않겠다는 각오 하에, 협회의 회장을 지냈으며 과거 두어 차례 자신의 희곡을 무대화한 적이 있는 강성희 씨의 또 하나의 희곡 <엘리 엘리 이 손을>을 지난 10월 드라마센터 무대에 올린 것이다. 비록 잘 알려진 직업적인 배우와 연출자들 동원하지는 않았지만 조명의 유덕형, 장치의 신선희, 무대감독에 윤광진 등이 제작에 협조해준 것은 퍽이나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매우 심각하고 거대한 주제를 표방하지는 않으면서도 오늘 우리들 일상인의 삶을 좀벌레처럼 파먹어 가고 있는 정신의 독기를 섬세하게 그려간 작품이 이 연극이었다. 부부간의 불화와 언쟁 끝에 철도 사고로 생명을 잃은 어머니에게서 받은 정신적인 회상으로 괴로워하는 아영이란 젊은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그녀의 결혼 생활의 파탄과 그러한 파탄을 조장하는 남편의 친구 및 선배(의사)의 호의를 빙자한 이기적인 관심과 간접 조정을 여러 개의 장면을 통해 섬세하고 미묘하게 전개해 나가고 있다. (……) - ‘<엘리 엘리 이 손을>을 보고’, 한상철, <흰꽃 마을>, 범우사, 1986 극단 산하가 오랜만에 조촐한 민예소극장에서, 작품도 번역극이나 대형극이 아닌, 한 꾸준한 여류 작가 강성희 씨의 최신작 <이 세상 크기만한 자유>를 지난 4월 2일부터 16일까지 무대에 올렸었다. 극단 산하의 44회 공연치고는 매우 조촐한 공연이라 할 수 있었다. (……) 이 작품 <이 세상 크기만한 자유> 속에서 젊은 건축가 김진우의 이상과 현실과의 접합점을 찾는 고민의 과정은 고금을 막론하고 젊은이면 누구나 한 번씩은 뼈저리게 겪고 넘어가는 분기점인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그러한 감추어진 고민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고 그러한 문제로 고민한다는 것조차도 남이 알까 두려워 일종의 병인 양, 모두 감추고 사는 것이다. 마치 자라나 거북의 그 딱딱한 껍질 속에는 가장 말랑말랑하고 연한 삶과 감각이 감추어져 있듯이, 오늘날의 젊은 세대의 냉담하고 냉혹한 태연함과 스쳐감 속에도 끝까지 해결되지 않는 삶과의 대결이 있고, 사랑과의 만남이 있고, 삶에 대한 절규가 있는 것이다. 단단하게 영근 현실적인 인간, 그러면서도 연연한 진우의 방황과 아픔을 이해하는 경화의 여인상 속에 관객인 우리는 현실에 뿌리박은 삶을 잊지 않고 대하게 된다. 끝내는 삶의 방향도 정착도 방황도 감지하지 못한 채 현실과 타협 속에 자신의 삶을 쉽게 망각할 수 있는 순간의 여인,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진우를 지탱할 수 없는 선녀와의 만남 속에서 진우는 가상의 안주를 꿈꾸나, 그것이 깨어지는 순간 그 절망은 ‘이 세상 크기만한’ 것이 됐다. 매우 낮은 소리로 연연하고 곱게 호소해오는 여류 작가의 끈질기고 섬세한 아름다움 속에 깃든 삶의 추구는 이번 공연에서, 비록 스케일이 크고 직설적으로 호소해오는 <사람의 아들>(실험극장 공연)과는 매우 대조되는 만큼 한동안 극계가 잊고 있던 자아의 깊은 곳에 귀를 기울이게 하여 주었다는 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 ‘인간의 심층적 해부를’, 양혜숙, <흰꽃 마을>, 범우사, 1986
창작노트
못났건 잘났건 제 자식에 대한 책임이나 애착을 버릴 수 없듯이 내가 만들어 내는 이 분신들에 대한 집착 또한 언제까지나 버릴 수 없다. 그런데 20여 년을 이 한 길만을 걸으면서도 갈수록 힘드는 가시밭임은 웬일일까? 때로 제 자식을 나무라듯이 그 분신들을 놓고 한숨짓고 질책을 해보지만 어떨 수 없이 자신의 부족을 느낄 따름이다. “이제 이 길 그만 갈까?” “아니, 아니지. 그럴 순 없잖아!” 내가 사는 시간, 공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인간의 역사를 어찌 외면하고 간과할 수 있으랴! 평화, 행복, 존경 같은 신의 소리만이 아니라, 저항·고난·투쟁 등… 인간의 개성이 빚어내는 소리, 소리들. 그것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 <흰꽃 마을>, 강성희, 범우사, 1986
관련도서
<한국예술총집>, 김일영, 대한민국예술원, 2000
관련사이트
대한민국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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