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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신건설

단체명
신건설
장르
극단
개요

프롤레타리아 극단 중 활발한 활동을 보여준 극단. 그러나 일본의 탄압 때문에 활동을 오래 지속할 수 없었다. 프롤레타리아 연극운동은 근대극 운동의 지향점이기도 했던 민족의 자주독립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일제의 압박을 피할 수 없었다. 또한 프롤레타리아 극단은 이를 위해 우리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봉건적 사회 윤리 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영리적인 흥행극 역시 배격했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남기에 당대 현실의 벽은 높기만 했다.

해설

신건설은 그동안의 좌익극단의 문제점을 극복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등장한 극단이다. 하지만 신건설은 공연도 해보기 전에 1933년 2월 공산주의 사상의 선전 및 동경의 좌익극단과의 연계의 죄목으로 극단의 핵심단원 이상춘 등이 검거되는 난관에 봉착한다. 일본 경찰의 이같은 검거행위는 물론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에 대한 탄압의 일환이었다. 그 후 신건설은 창단 1년 3개월 뒤에 배재학교 강당에서 창립 공연을 하기로 계획하나 이마저 경찰당국의 방해로 무산된다. 결국 신건설이 창립공연을 가진 것은 1933년 11월로, 본정 연예관에서 <서부전선 이상없다>(레마르크 원작·나웅 연출)를 올린다. 나웅은 신건설의 늦은 창단공연에 대해 “물론 객관적 조건의 불리한 탓도 잇엇겟스나 보다 더 큰 원인은 우리들의 전반적 활동에 잇서서 더 액티비티하지 못하였다는데 잇다”라는 자아비판을 하기도 했다. 공연에 대한 반응은 좋지 않았다. 극예술연구회의 창립멤버였던 이헌구는 레퍼토리 선택의 잘못뿐 아니라 조명, 음향, 무대장치, 연기 등 전반에 걸쳐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요점은 신건설의 창립무대가 신파극이나 리뷰 등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건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제2회 공연준비를 하는 한편 지방공연을 갖기도 했다. 1934년 4월에 인천에서 창립공연 작품과 번연극, 창작극 등을 무대에 올렸다. (……) <신건설> 인천공연, 26일부터 제1회 중앙공연에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상연한 극단 신건설에서는 이번에 첫 순회로 지방공연을 인천애관서 갖게 되엇다는 바 특히 이번 인천공연은 제2회 중앙공연준비와 병행되는 만큼 그 연출과 무대장치에 잇서 자못 기대된다하며 레퍼토리는 다음과 같다 한다. 레마르크 원작 <서부전선 이상없다> 전 5막 16장, 윗트포겔작 <누가 제일 바보냐> 전 3막, <신임 이사장> 전 1막, 신성언일작 <카이젤병사> 전 1막 (……) - <동아일보>, 1934년 4월 11일 인천지방 순회공연은 창립공연 무대에 섰던 임화, 백철, 김승일 등은 빠졌고, 대신 연출가 나웅이 출연했다. 그러나 지방공연도 여의치 않아 다시 중앙의 광무극장에서 공연을 올린다. (……) 극단 신건설은 작년 10월 말경에 경성에서 제1회 중앙공연으로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상연한 후 꾸준한 노력과 건전한 발전을 일으워 4월 27, 28일에 인천에서 지방공연을 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얏스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중지를 하고, 돌연 2,3양일간 매일 오후 7시 30분부터 광무극장에서 공연을 하게 되엿는데, 과반 제1회 중앙공연의 인기로 봐서 금번 공연도 반도의 인기를 집중하리아 하며 그 레퍼토리는 다음과 갓다한다. 제1일 윗트포겔원작 <누가 제일 바보냐?> 3막 4장, <신임이사장> 1막, 제2일 레마르크 원작 <서부전선 이상없다> 5막 6장 (……) - <조선중앙일보>, 1934년 5월 2일 신건설은 광무극장 공연 후 단원모집 광고를 내는 등 극단 활동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신건설의 본격적 해체 작업에 돌입한다. ‘신건설 사건’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일본 경찰의 대대적 구속이 이뤄지고, 전국에 걸쳐 약 80여 명의 좌익문사 혹은 극계의 의식분자들이 체포됐다. 증거불충분으로 일부는 2, 3개월 만에 풀려나고, 결국 22명이 전주지방 법원으로 송치됐다. 결국 신건설은 1년이 넘는 재판 과정 중 자연 해산에 이른다. 1920년대 중반부터 약 10여 개 이상의 프롤레타리아 성향의 극단들이 있었으나, 1930년대까지 공연은 단 몇 번만 이뤄졌다. 일본군국주의의 무자비한 탄압의 결과였다.

<서부전선 이상없다>

신건설의 1회 공연이다. 임화, 백철, 김승일, 장철기, 유일준, 김태봉, 김용철, 이갑기, 홍구, 이귀례, 최영숙, 서정자 등이 출연했다. (……) 프로극단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랴고 조직된지 이미 3년이라는 역사를 가진 <신건설>이 금번 상연장소의 누차에 긍하는 검열을 돌파하고 금 23일 시내 일본인 경영인 연예관에서 제1회 공연을 감행하얏슴을 경하한다. 이 극장은 역사적 기록을 지으랴는 절대의 열성과 노력으로써 이 공연에 심혈을 경주하야 이미 세계적으로 대중 독자를 가진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업다>를 선택하얏다. 물론 신건설이 실천하는 바 좌익극에는 비상시에 따르는 사정도 잇섯슬 것이나 그러나 이러한 전쟁의 참화 사실만을 취급한 각본보다도 조선 현실이 제시하는 또 그들로서 당연히 문제시할 농민 우의 현실 더 나아가 식민지의 생활을 반영한 극본 선택이 이 극단의 취지에 보내는 제1차적 구체적 사명으로 가장 타당하지 안헛을까 한다. (……) - ‘신건설 제1회공연 <서부전선 이상없다(상)>를 보고’, 이헌구, <조선중앙일보>, 1933년 11월 26일

임화 (1908-1953)

시인, 문학평론가. 일제강점기 및 8·15 해방 직후에 활동한 사회주의 문예운동의 대표적 인물. 1921년 보성중학에 입학해 이상, 조중곤, 윤기정 등과 사귀었다. 보성중학을 중퇴한 뒤 문학에 흥미를 느껴 글을 쓰기 시작한다. 1926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 가입해 1928년 중앙위원이 되었고, 그해 <유랑>, <혼가> 등의 영화에 주연배우로 출연했다. 기관지 <집단>, <학예사>, <인문평론> 등의 잡지의 책임 편집을 맡으며 평론 활동을 펼쳤다. 1947년 월북해 조·소문화협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그러나 1953년 남로당 계열이 숙청당할 때 사형당했다. <네거리의 순이>, <우리 오빠와 화로> 등의 시를 발표해 대표적인 프롤레타리아 시인으로 추앙받았으며, <탁류에 향하야> <김기진군에게 답하는>을 발표해 김기진과 대중화 논쟁을 벌이며 문학비평가로 활동했다. <조선신문학사론 서설>에서 보여준 사실주의론은 세계관과 방법의 변증법적 연관에 대한 깊은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서 근대문예비평사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올렸다. · 대표작품 <현해탄> <찬가> <너 어느 곳에 있느냐> <문학의 논리> <네 거리의 순이>

관련도서

<한국근대연극사>, 유민영, 단국대학교 출판부, 1996 ‘한국소극장연극사 6’, 차범석, <예술계> 43호, 198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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