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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혁신단

단체명
혁신단
장르
극단
개요

우리나라 최초의 신파극단. 임성구에 의해 창단된 혁신단은 1910년대에 활발한 작품 활동을 통해 일본에서 들어온 신파를 한국 땅에 정착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신연극, 즉 서구식 드라마를 처음으로 우리 대중들에게 보급했던 것이다. 신파극은 전통 연희만을 유희하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새로운 오락으로 대두되며 대중의 삶 속에 즉각적으로 파고들게 된다.

해설

혁신단은 상인출신의 청년 임성구(1887~1921)에 의해 창단됐다. 임성구는 전문적인 연극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명동성당 뒤에서 상업을 하는 동안 일어를 터득하고 진고개의 일인극장에서 잡일을 하면서 일본신파극을 어깨너머로 배워 신파극단을 창단했다. 그에 대해 현철은 <조선극계도 이십오년>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그러면 조선에 연극이라는 것이 언제부터 생겼나? 이는 물론 일본에서 배워왔다. 아니 일본에서 배워왔다는 것보다 진고개에서 배워왔다.(……) 그 극장에서 일을 보고 있는 한 청년이 있었으니 이 청년이 그 극장에서 무엇을 했던지 구타여 그것을 알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가 극장에서 무엇을 했던지 오즉 그가 우리 조선에 새로이 연극이라는 것을 제일 먼저 모방해드려온 유공인이다. 다시 말하면 그가 우리 조선에서 신파극이니 재래극이니 하는 근래 현존한 극의 원조인 고인 임성구씨이었다.” 이같이 일본 연극장에서 신파극을 배운 임성구는 단원 한창렬, 고수철, 김순환, 황활삼, 안석현, 임운서, 이원규, 정명구, 김태식, 임인구 자금제공자 박창환과 함께 혁신단을 만든다. 혁신단은 남대문 밖 어성좌에서 <불효천벌>(1911년 11월)을 창단 공연으로 가진다. 권선징악, 풍속개량, 민지개발, 진충갈력을 표어로 내세운 것을 보면 신파극을 교화 수단의 하나로 간주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혁신단의 <불효천벌>은 관객 동원에 실패한다. <불효천벌>은 일본 신파극단이 공연한 바 있는 <사지집념>의 번안물이었는데, 일본신파를 어깨 너머로 배운 정도로는 특히 연기의 측면에서 신파극의 양식화된 부분을 해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후 혁신단은 뒤를 이은 신파극단들에게 자극받아 일본 신파배우를 스승으로 두고 연기 훈련을 받는 한편 대대적 홍보전을 펼치며 상업극단으로서 자리하게 된다. 이 때의 레퍼토리가 <육혈포강도>이다. 역시 일본신파 <피스톨강도 청수정길>을 번안한 공연이었다. 당시 신파 공연의 형태는 지금에서 본다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치한 모습이었다. 단장이 연극의 전체 내용과 막마다 그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가면서 공연을 했다. 초창기에 신파배우를 했던 변기종은 이에 대해 “개막을 하자면 먼저 개막 인사와 연극의 내용을 관객에게 설명해줄 뿐 아니라 막수에 따라서 막막이 개막 전에 설명해주었고, 끝막에는 단장이 나가서 연극의 종결을 짓는 설명을 하고 다음날의 연극선전을 하며 꼭 와서 보아달라는 요청을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양식이었던 만큼 관객에게 가르치며 연극 공연을 했던 것. 하지만 새로운 형식과 새로운 주제는 관객을 끌었고, 신파극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객이 매일 8, 9백명이나 되어 연흥사 극장은 확장 공사까지 했다고 한다. 혁신단은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군인의 기질>, <친구의 형 살해> 등 충성과 의리, 인정, 의무를 다룬 공연을 계속 올린다. 물론 레퍼토리는 모두 당시 충무로와 남대문 근처에 자리잡고 있던 일본인 전용극장에서 일본 신파극단들이 공연했던 것을 우리식으로 번안해서 모방한 것이다. <병사반죄>, <처연입지고아소위>, <무사적 교육> 등이 이들이다. 레퍼토리뿐 아니라 연기투 역시 초기 일본신파극처럼 가부끼식 동작이었다. 또한 공연의 제작 역시 정해진 각본 없이 하는 일본 신파의 구찌다데식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신파극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각색 · 구성 · 영화와 접목 · 창작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혁신단의 경우 각색 단계에 해당하는 레퍼토리로는 <유정무정>, <의기남자>, <수전노>, <가련처자>, <불행친자>, <무죄사필귀정>, <반수천죄>, <실자살해>, <성공 고학생>이 있다. 이 레퍼토리의 주제는 대개 군사극이었다. 구성 단계는 초기의 번안보다 한결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신소설의 각색 공연이 주류를 이룬다. 혁신단의 레퍼토리 <쌍옥루>, <불여귀>, <장한몽>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것들은 일본신파연극계에서 인기를 얻은 가정비극과 화류 비련극들이었다. 또 다른 구성 단계로는 현실 소재를 응용한 시사 구성극이 있다.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나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토대로 작품을 공동 구성하는 것이다. 혁신단이 공연한 <식자살해>, <천도조정> 등이 여기에 속한다. <식자살해>는 친자식을 죽인 사건을 <천도조정>은 형제간의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혁신단의 신파극은 장안에 퍼져나가 주요 배우 임성구, 고수철, 안관익, 한창열 등은 일약 당대의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 순회도 자주 다니며 전국에 신파극을 알린 혁신단은 1921년 해산되었다.

육혈포강도

<육혈포강도>라는 탐정극은 1912년 2월에 공연된 작품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육혈포를 가진 흉악한 강도가 변장술에 능하여 쉽사리 잡을 수가 없었는데, 젊은 순사가 인민을 보호하는 본분을 다하려고 목숨을 걸고 싸워 끝내 강도를 생포한다. 순사는 육혈포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강도에게 ‘잘못을 뉘우쳐서 좋은 사람이 되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권총을 소지한 흉악한 강도의 신출귀몰한 만행과 강도를 쫓는 형사대의 요란한 출동, 주민의 빗발치는 항의와 경찰 당국의 고심, 이러한 상황에 등장하여 침착하고도 용감하게 강도와 맞서 끝내 생포하고 개과천선의 충고까지 아끼지 않는 젊은 순사의 멋진 연기야말로 당대 관객에게는 즐거운 오락이었다. - <우리연극 100년>, 서연호·이상우, 현암사, 2000 (……) <육혈포강도>는 근래에 연구를 개시한 신파극으로서는 가위 효시 (……) - <매일신보>, 1912년 2월 20일

리뷰

연흥사의 혁신단 신연극은 하기는 참말 잘하여 가히 모범할 만하다 하겠으나 배우 중의 임성구와 하이칼과 여자의 고수철이 우는 소리 좀 작작 하였으면 좋겠더군, 진정 듣기 싫어, 울때는 울고 웃을 때는 웃어야 한단 말이지, 육장 우는 소리만하니 그것도 결점이오…… - <매일신보>, 1912년 3월 27일 연극무대를 볼 석 가트면 한심할 만큼 비상식적이었다. 물론 시대가 시대엿고 또한 연극을 처음 하게 되는 배우들의 고심도 적지 안 헷겟지만 이들의 연출을 지도해줄 만한 감독자가 업섯든 탓으로 모든 것이 말이 아니었다. 설사 소설이란 교사가 잇서다할시라도 그는 연극의 재료나 배우들의 동작을 일너주엇슬 쁜이지 조선의 풍속이나 조선사람의 생활양식을 알엇슬리 만무라얏슬 것이다. 무대상 배우들의 동작이라 할지라도 도저히 조선사람의 생활로서는 상상치 못할 괴이한 일본의 가부끼식 동작을 하게되엿든터이다. - <조선중앙일보>, 안종화, 1933년 8월 26일

관련도서

<한국연극운동사>, 유민영, 태학사, 2001 <우리연극 100년>, 서연호·이상우, 현암사, 2000 <한국근대연극사>, 유민영, 단국대학교 출판부, 1996 ‘한국신극 그 삐에로의 뒤안길’, 유민영, <객석>, 198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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