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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노래 칼춤

작품명
칼노래 칼춤
구분
1993년 이후
출연 / 스태프
출연 이연형, 홍성원, 구재연, 최현숙, 남기성, 손재오, 전병복, 박강의, 서영수, 김순희, 염귀공, 김옥희, 전종출, 송영선, 서영선, 김명화, 이상운, 박희정, 이상호, 하창범, 김소영 스태프 총연출/채희완 음악/최태현,김민기 판구성/임진택,이상우,김석만 탈제작/이석금,김정헌,임옥상,이연수 의상/이나경 안무/남기성 조연출/황해순 무대감독/김희명 소품/김남수
내용
첫째마당 :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쓰고 무엇하리 (동학의 입문의례와 집회양식, 농민전쟁의 상황 등을 칼춤, 깃발춤, 북춤 등을 통해 총체적이고 상징적으로 형상화하는 마당.) 21자 주문과 칼노래, 구호성 불림 등을 배경으로 전투적이며 신명나는 집단적인 칼춤을 통해 동학도의 수련과 농민전쟁의 시작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비상하는 깃발춤과 호쾌한 북춤으로 농민군의 진격, 승리, 그리고 농민군의 패배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한다. 둘째마당 : 우물가의 아낙네들 (아들과 남편을, 마지막 피붙이마저 전쟁터로 내보낸 여인네들의 참담한 삶의 정경이 우물가에서 펼쳐지는 재담마당) 동학의 수많은 이름 없는 장두들을 배출한 조그마한 마을에 관군이 들이닥쳐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며칠 후, 살아남은 여인들의 고난, 억척스러운 살림살이, 속 깊이 간직한 비원이 입심 좋은 아낙네들의 육담 속에 배어 나온다. 그리고 한 남정네를 찾아 헤매이는 순덕이가 이 마을에 들어오고…. 셋째마당 : 효수 (동학군의 기로, 진격, 작은 승리, 패퇴, 전사, 참형 등 일련의 참전과정을 떠돌이 광대들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탈춤마당) 첫째거리 동학군에 가담했다 정든 고향을 찾아 헤매이는 떠돌이 광대패들의 걸쭉한 재담과 춤, 풍물 그리고 탈의 연기로 동학군의 진격, 승리, 패퇴 등의 모습이 보여진다. 둘째 거리 전쟁에 참전했던 동학 장두들이 줄줄이 엮어져 나오며 ‘망나니의 춤’ 속에 목이 베인다. 동학군, 의병, 민주열사 등이 효수되어 허공에 매달리고 유족, 뜨네기, 민중 등 살아남은 자의 ‘소리없는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셋째 거리 길떠난 광대패들이 고향 땅을 찾아왔지만 마을은 이미 쑥대밭이 되어버려 있고, 광대패이자 동학군 출신인 억수도 관군에 껴다니다가 이들과 합류한다. 힘을 비축하여 뒤를 도모하자던 억수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곰배는 효수되니 탈을 수습하려다 관군에 효수를 당한다. 넷째마당 : 청수 한동이 정화수 한 그릇 정성들여 모시듯 밝은 물 한동이 길어 모셔 원혼을 천도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향해 마음다짐하는 판씻음마당
리뷰
이 작품은, 임진택과 함께 마당극운동 성립기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채희완의 대표적 작품으로, 대학 탈춤반 출신을 중심으로 1974년 결성된 한두레를 비롯하여 그 외의 여러 마당극 집단의 역량을 모아 만든 작품이다. 1994년 동학농민전쟁 100주년 기념으로 서울과 정읍에서 공연된 이래 여러 차례 재공연되었고, 과천마당극큰잔치에서는 관객의 호응에 힘입어 2년 동안 연속 초청되기도 했다. 채희완의 마당극은, 매우 춤적이고 운문적이다. 임진택의 작품이 재담적 대사와 연극적 역할바꾸기 놀이로 재기발랄하게 진행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채희완의 작품에서는 중요한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대사와 사건 모두 에둘러 간다. 따라서 연극적 사건의 갈등 축적은 거의 중요하지 않다. 대신 전체의 구조를 조망하며 화두를 받아안는 심정으로 한 장면 한 장면을 따라가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과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 역시 동학농민전쟁이 어떻게 성립되고 발전되어 쇠락해갔는가, 항쟁의 주요 인물들은 어떤 주장을 하고 어떻게 싸우다 죽어갔는가 하는 것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그러한 것을 구체적이고도 총체적으로 가장 잘 형상화한 작품은 김명곤 작·연출의 1988년 작품 <가보세 갑오세>이다). 동학군들의 싸움은 그저 간략하게 대사 없는 남성 무용수들의 힘찬 칼춤으로 표현한다. 대신 이 작품은 역사의 표면에 화려하게 나타난 전쟁과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그 밑에서 말없이 살아간 민초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데에 치중하는데, 이 역시 특정한 사건을 일관성 있게 진행하는 방법으로 그리지 않는다. 싸움이 휩쓸고 지나간 후 마을 아낙네들이 우물가에 모여 일상적으로 떠드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싸움의 처참함은 이들의 삶 속에 남아있다. 누구는 강간당해 애를 뱄고, 각박한 인심으로 편갈라 악다구니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일상에서는 왁자한 입방아는 여전하고, 어렵사리 먹고 살면서 혼인도 치른다. 삶은, 아니 역사는 그런 것이다. 이러한 민초들의 해학적인 삶은 그 다음 거지광대들의 장면에서 더욱 심화된다. 농사꾼도 아닌 거지광대, 그들은 떠돌이이고, 세상사에 대해 진지하게 임하는 법이 없고 세상에 바쁜 것도 없다. 그러나 그들 역시 난리로 고향 잃은 후 다시 고향을 찾아가는 중이다. 이렇게 이 작품은 동학농민전쟁을 각기 다른 세상을 사는 듯한 세 차원의 인물군으로 그려내는데, 이 셋이 서로 따로 노는 듯 하면서도 이리저리 섞인다. 우물가 아낙네 장면 뒤에는 전봉준 등 농민군 장두들의 참수형 장면이 짧게 보여지며, 십여 두의 목 잘린 머리가 관객의 바로 머리 위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아낙네들은 공포스러운 표정으로 그 밑을 지나간다. 그러나 이렇게 긴장된 장면 바로 다음에는, 장두들의 목 잘린 머리가 처참하게 매달려 있는 바로 그 아래에서 광대들의 해학적인 장면에 벌어지는데, 비극적이고 처참한 삶을 그리면서 슬픔은 뒤로 꿍쳐두고 웃음과 농담으로 에둘러치는 식으로 형상화된다. 이 장면은 <칼노래 칼춤>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 어마어마하게 큰 비애가 뒤집혀 오히려 웃음으로 나오는, 우리 민족 특유의 절제감 있는 정서를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다섯 명의 배우가 만들어내는 연기의 앙상블과 탈연기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는 영웅의 것, 양(陽)·건(建)만의 것이 아니라, 음(陰)과 곤(坤)이라 할 만한 민초들과 어우러지며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채희완 특유의 역사관·세계관이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영미 (연극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 연구원)
재공연
1994년 2월 28일, 정읍시 고수부지, 놀이패 한두레, 동학농민혁명100주년기념 고부역사맞이굿 1994년 3월 30일, 예술의전당, 놀이패 한두레, 동학농민혁명 100주년기념 전시회 열림굿 공연 1994년 4월 2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놀이패 한두레, 제1회 민족춤제전 열림굿 공연 1994년 10월 22일, 부산 KBS홀, 놀이패 한두레 1994년 10월 29일, 공주 우금치 야외특설무대, 놀이패 한두레,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 우금치 위령굿 공연 1994년 10월 30일 ~ 11월 9일, 문예회관 소극장, 놀이패 한두레 1994년 11월 12일, 광주 YMCA강당, 놀이패 한두레 1994년 11월 19일, 마산 실내 체육관, 놀이패 한두레 1997년 6월 6일, 진주 남강 고수부지 야외무대, 놀이패 한두레, 제2회 진주 탈춤한마당 개막공연 1997년 9월 6일 ~ 8일, 과천 종합청사앞 야외무대, 세계마당극큰잔치 2001년 9월 17일 ~ 19일, 과천, 놀이패 한두레, 과천 마당극제 2001 특별 초청 공연 2001년 9월 25일 ~ 29일, 수운회관, 놀이패 한두레
기사
70년대 <소리굿 아구> 를 시작으로 대학가에 마당극 바람을 일으켰던 한두레는 탈춤 부흥운동을 통해 영화-문학-춤-음악-미술 각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친 문화집단. 이번 작품을 위해 각 분야에서 활동 중인 '한두레 마당놀이꾼' 출신들이 역량을 결집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칼노래 칼춤>은 동학의 창시자이자 1대 교주인 최제우가 만든 동학교도들의 수련 방식인 동시에 종교 의식. 가사만 겨우 남아있던 이 의식에 작곡가 최태현씨가 노래를 만들고, 채희완씨(부산대 무용과교수)가 우리의 고유무예 24반 본국검을 토대로 몸짓을 만들어 재창작했다. 마당극 특유의 맛과 재미는 기본. 입담 좋은 여인네들의 재담과 유랑광대의 몸짓은 폭소를 자아내고, 그 웃음 뒤엔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이 숨어있다. 또 남성춤꾼들의 장쾌한 춤사위와 장단, 여인네들의 정갈한 살풀이가 어우러진다. 김석만, 이상우, 임진택, 김명곤, 장선우, 여균동씨 등이 연기지도를 맡았고, 김민기 김영동씨 등은 음악을 함께 했다. (윤정호, '장쾌한 칼춤 마당극 한판', <조선일보>, 1994년 10월 28일)
평론
마당극 20주년, 한두레 20년, 동학농민전쟁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 <칼노래 칼춤>은 부산 공연을 시작으로, 10월 29일 동학농민전쟁의 마지막 격전지였던 우금치에서의 추모제 공연을 거쳐 서울 문예회관에 입성했다.(11월 9일까지 공연) 추모제라는 집회적·이벤트적 현장으로부터 소극장 공연으로 연결시킨 기획이, 20년 동안 줄곧 이른바 연극계 안이 아닌, 연극계 밖의 더 넓은 삶의 현장에서의 집회적·이벤트적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마당극운동의 기념공연 다웠다. …… 농민군의 기나긴 싸움을 조선무예동작을 기본으로 한 남자배우들의 춤으로 처리한 첫 장면이나, 진혼과 정화의 의미를 지닌 물동이춤과 효수된 머리 옆에서 신이 오른 대나무 신대를 격렬히 쥐고 흔드는 것으로 처리한 마지막 장면들은 거의 완전히 춤장면이며, 나머지 장면들도 배우의 몸짓과 동선이 다분히 춤적이다. 또 탈이 순간순간 다른 표정을 짓는다는 사실을 관중에게 보여주는 익숙한 탈연기는 어디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법들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주제의식과 장면구성의 원리이다.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군의 싸움을 춤으로 간략화하는 대신 무지렁이 같은 민초들의 삶의 의미를 주요 축으로 놓아, 동학농민전쟁의 전투적인 삶과 비전투적인 삶을 대립으로 보지 않고 음양·건곤의 조화로 보고자 하는 생각, 그리고 주제를 향하여 벽돌 쌓아가는 듯한 장면구성법을 피하고 중요한 말을 저만치 감추어두고 거꾸로 에둘러치며 나아가는 장면구성의 원리가 그런 것들이다. 효수된 농민군 장두의 머리를 주렁주렁 매달아 긴장을 고조시켜 놓고서 그 아래에서 광대들이 눈물 하나 없이 오히려 웃음으로 퍼벌이는 슬픈 장면은, 탈춤적인 과장과 절제감이 극명하게 드러난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한겨레신문>, 1994년 11월 1일, 이영미) 병신들의 부족한 연희와 몸동작, 보기만 해도 실소를 자아내는 꼴불견의 병신탈의 이미지, 병신 내외와 딸 사이의 끈끈한 사랑, 이들의 우스꽝스런 연행에 대한 관객들의 우월 의식, 구경의식으로 머무르고자 했던 이들의 교만함은 일시에 무너진다. 냉소적이고 방관자적인 이들의 구경 의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지한 동류 의식으로 변조된다. 다시 말해 병신들의 풋풋한 재담, 걸출한 유머와 익살은 관객 모두를 웃음 바다로 몰아 넣지만 이 웃음은 일회적인 코메디풍의 유희나 말초 감각만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우리 고유의 몸짓과 음색이 병신들의 연희와 해프닝을 통해 힘을 발휘함으로써 살아있는 동류의식과 공감대를 자아낸다. 희노애락의 싸이클이 골고루 균형을 이루고 있음은 긴장과 휴식, 침묵과 수더분함의 배분이 적절하게 실현되는 과정을 통해 확인된다. 희극적인 상황은 감상층의 마음을 화끈하게 열어 놓다가 비극적인 상황과 매끄럽게 교차한다. 비극적 상황은 열려진 감상층의 의식들을 완전 사로잡는데에 기여한다. 전봉준의 효수 장면, 죽음을 앞둔 그의 비장한 음성이 한편의 시로 낭송되고 관객은 시적인 분위기에 침잠하여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꿰뚫고 끝없는 환타지의 세계로 빠져든다. 침참의 묘미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산술적인 교차 과정에 톡톡히 양념 노릇을 한다. 이는 예술 작품의 구성상 반드시 필요하다. 농민군들의 패전과 대량 죽음, 간담을 서늘케하는 효수 장면, 그리고 이어지는 꿈틀거리는 항변, 삶의 한계선 밖으로 내팽개쳐진 이들의 몸부림, 주검을 감싸안고자하는 한 소녀의 순수한 인간애, 연이어지는 억울한 죽음과 또 다른 비극적 죽음, 이 같은 비극의 연속과 그 절정에서 관객은 뭉클함을 억제하지 못한다. (‘역사변혁 의지를 일깨운 탈극과 무용극의 앙상블’, <순천대신문>, 1994년 11월 21일, 김길수) 틀거리를 잡아 작품을 구성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점에 특히 유의한다. 역사적 사건의 세밀한 묘사에 치중하는 것 보다는 중핵적인 흐름을 큰 중심줄기로 잡아내고 이를 몇 가지 잔가닥으로 흐트려 풀어 내면서 마디마디마다 유기적 연관관계로서 살아 있는 나무등걸을 만든다. 앞뒤 문맥이나 구조의 순차적이고 논리정연한 구성방식에 지나치게 매이지 않는다. 굵은 선으로 가서 매듭을 짓되 앞뒤를 태극선 같은 이음새로 연결짓는다. 아니면 틈새를 주어 창조적 농현의 여백을 두든가 한다. 맺고 풂, 차고 이음, 내고 닮, 내지름과 꺾음새, 다스름과 내드름, 나선형 회귀곡선 등은 이 작품에서 구사하는 동력선이다. 이러한 작품의 동력선이 동학혁명의 정신과 남긴 과제가 굴러오고 또한 굴러가는 역사적 공간방위의 동력선과 부합되도록 지극히 애써본다. 또한 열린공간과 현장적 운동의 집체성속에 자칫 깔묻히기 쉬운 개별신명과 마당극 특유의 집단적 신명사이의 유기적 상관관계를 맺게하여 집단신명을 과대포장하지 않고 또 과소비하지 않고 쓸데를 가려 내밀화하여 새세상을 예비하는 새로운 신명체험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아울러 표현매체로 동원되는 현장생소리와 전자음 울림소리, 탈과 분장, 춤과 마임, 운율조와 일상회화조를 비롯하여 정공법과 우회법, 고결함과 비속함, 사실적 표현과 상징, 역사의 현재화와 현재의 역사화, 드러냄과 스며듬 등 집단신명의 현장운동과 내면적 감정이입 사이,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사이, 자주적인 것과 외래적인 것이 때로는 충돌하면서, 때로는 조화롭게 한판에 어울어질 수 있도록 한다. ( <칼노래 칼춤> 프로그램, 2001년, 채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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