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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일의 사

작품/자료명
김영일의 사
작/연출
조명희
장르구분
1920년-1940년대
출연/스태프
* 출연 김영일/유춘섭 전석원/김기원
내용
어느날 행상 길에 나섰던 가난한 동경유학생 김영일은 길거리에서 거액의 돈을 줍고, 이것의 반환 여부를 놓고 고민한다. 이만한 거액이라면 그는 행상을 나서지 않고도 몇 달 동안의 의식을 거뜬히 해결할 수 있으며, 같이 고학하는 친구들도 이 돈의 반환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는 양심의 결정에 따라 같은 서클의 동인이며 돈의 주인인 전석원에게 주운 돈을 돌려 준다. 전석원의 집에서 돌아온 김영일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국 준비를 서두르지만 여비를 해결할 길이 없다. 김영일은 전석원에게 사정해 보기로 하고 친구 박대연 등과 함께 그를 찾아간다. 김영일의 사정을 들은 전석원은 냉담하게 그의 청을 거절한다. 전석원의 몰인정함에 분개한 김영일의 친구들과 전석원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고 이것이 사상논쟁으로까지 확대되어 격투가 벌어진다. 이때 박대연의 주머니에서 불온삐라가 떨어지고 신고를 듣고 달려온 일본 경찰은 김영일과 그 친구들을 구속한다. 영양 결핍, 마음의 고통, 경찰의 심한 고문에 시달린 김영일은 급성폐렴이 발병하여 경찰에서 풀려나지만 그날 밤 유언을 남기면서 한많은 생애를 마친다.
예술가
조명희 극작가이며 소설가로 호는 포석이다. 1920년 봄 동경 유학생들이 조직한 극예술협회의 회원으로 참가, 김우진 등과 친분이 두터웠다. 1921년 여름 동우회순회연극단에 참여, <김영일의 사>를 직접 집필하여 전국 주요도시를 순회공연하였다. 1923년에는 이 작품을 출간하였으며 시작 및 소설에도 관심을 가져 <영혼의 한쪽 기행>(1923년), <잔디밭 위에서>(1923년) 등을 발표하고 이어 경향파적인 소설 <땅 속으로>(1925년), <낙동강> (1927년), <저기압>(1927년), <동지>(1927년), <한여름 밤>(1927년) 등을 발표했다. 특히 희곡집<김영일의 사>는 우리나라에서 김영보의 <황야에서>이후 두번째로 나온 희곡집으로 의의가 있다. 이 이외에 희곡<파사>(1923년)를 남겼고, 시집으로 <봄 잔디밭 위에>(1924년)를 냈다. 김우진 (1897~1926) 극작가로 자호는 초성(焦星) 또는 수산 (水山)이다. 전남 장성에서 출생하여 11세에 목포로 이주, 목포 공립심상고등소학교 고등과 1년 수료 후 도일, 웅본 현립농업학교 졸업 후 와세다대학 예과를 거쳐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처음에는 시작(詩作)에 관심을 두었으나 그 뒤 연극으로 관심을 옮겨 1920년에 조명희, 홍해성 등과 함께 동경유학생의 연극연구단체인 예술협회를 조직하였다. 그는 극작 뿐만 아니라 번역, 연출도 담당하였다. 그는 신파극의 전성기에 국내 최초로 서구의 근대적 수법을 도입하여 <정오>와 <이영녀>를 제외한 그의 희곡에는 표현주의적이며 상직주의적 실험 정신이 담겨져 있다. 1926년 7월 독일로 철학공부를 하러 일본으로 떠났다가 뒤이어 도일한 애인 윤심덕과 1926년 8월 4일 귀국하는 도중 현해탄에 투신자살하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처녀작인 <정오>를 비롯하여 <이영녀>(1925년) <두더지 시인의 환멸>(1925년) <난파>(1926년) <산돼지>(1926년) 등이 있다.
리뷰
시인 겸 소설가이기도 했던 조명희가 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 동경에서 문학수업을 하던 시기인 1920년에 습작한 처녀작이다. 당시 동경유학생의 사상적 갈등과 민족운동, 조국의 빈궁, 가난의 고통을 묘사한 이 작품은 1921년 극예술협회에 의해 전국에 순회공연되어 크게 환영을 받았다. 고학생들의 어려움을 일제의 수탈로 인한 민족의 고난으로 확대시킴으로써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 작품 밑바닥에는 조명희의 인도주의와 동포애, 그리고 독립과 이상국가건설 등의 사상이 깔려있다.
평론
신파에서 탈피하려는 미온적인 형식적 탐구에 지나지 않으나, 당시 조선 문학의 대표적 경향의 값있는 것으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연극운동 1931년 1월, 임화) 이번 순회 공연을 기하여 고학생의 부르짖음과 노동자의 부르짖음을 듣고, 진정 사람다운 생활을 하겠다는 각오와 사회의 문화를 일층 깊이하며, 따뜻한 형제의 정으로 멀리 있던 형제가 서로 만나는 아름다운 악수의 기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동아일보, 1921년 7월 2일) 종래 돌아다니던 연극단보다 행동이 일치하고, 각본을 규칙적으로 전하는 것이 큰 성공이었다. (동아일보, 1921년 7월 18일)
관련도서
<조명희-새미작가론총서11> 정덕준, 새미, 1999. <조명희 단편 소설집> 조명희 외, 한국문화사, 1991. <김우진 전집 1,2,3> 서연호 외 편, 연극과인간, 2000. <김우진-세계작가탐구:한국편001> 서연호, 건국대출판부, 2000. <김우진 그의 삶과 문학> 양승국, 태학사, 1998. <김우진-한국현대극작가론1> 한국극예술학회, 태학사, 1996.
연계정보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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