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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연극

한국에서 최초로 공연된 번역극은 영국 연극으로, 1916년 혁신단이 <정부원>을, 예성좌가 부시콜트(D. Boucicault)의 <코르시카의 형제>를 초연했다. 이 기간 관심을 끌었던 극작가로는 셰익스피어(W. Shakespeare), 버나드 쇼(G. Bernard Show), 골스워디(J. Galsworthy), 그리고 아일랜드 극작가 던세이니(Dunsany)와 싱(J. M. Synge)이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극작품은 1922년 현철이 <햄릿>을 번역하여 소개한 후, 1938년, 낭만좌가 <함레트의 묘지 일막>을 공연하였을 뿐이다. 버나드 쇼의 작품은 <그 남자가 그 여자의 남편에게 어떻게 거짓말을 하였나>가 <북극광>, <오로라> 등으로 제목을 바꾸어 거듭 공연되었고, 던세이니의 <찬란한 문>, 싱의 <바다로 가는 기사들>도 여러 번 무대에 올랐다. 이 기간에 아일랜드 연극들이 많이 공연된 이유는 한국 연극인들이 당시의 한국과 아일랜드 사이에 정치적, 사회적, 정서적으로 동질감을 느꼈고, 또한 아일랜드의 문예부흥운동을 식민통치 하의 한국 문예운동의 모델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1923년, 토월회는 필롯(E. Pillot)의 <기갈>을 초연하여 미국 연극을 한국에 선보였지만, 당시 일본과 적대 관계에 있던 미국과의 문화교류가 어려웠기 때문에 이 기간 미국 연극의 공연은 활발하지 못했다. 그러나 싱클레어(U. Sinclair)의 <이층의 남자>, 헤이워드 부부(D&D Heyward)의 <포기와 베스>, 앤더슨(M. Anderson)의 <겨울이야기> 등은 주목할만한 공연들이었다. 해방과 분단 상황이 시작되는 시기, 영국 연극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초연된 후, 신협이 전쟁 중에도 부산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 <오셀로>, <맥베스>를 공연하여, <리어왕>을 제외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모두 선보였다. 특히, 1960년 제작극회가 초연한 존 오스본(J. Osbone)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는 1970년대의 반사실주의극에 불씨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밀착되면서 번역극 공연에서 미국 희곡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증하게 된다. 오닐(E. O'Neill)의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 밀러(A. Miller)의 <세일즈맨의 죽음>, 윌리엄스(T. Williams)의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로렌츠(A. Laurents) 의 <용사의 집>, 앤더슨(M. Anderson)의 <목격자>는 여러 번 무대에 올랐다. 1960~70년대, 영국 연극은 셰익스피어, 핀터, 셰퍼의 작품들이 주로 공연되었고, 1964년, “셰익스피어 탄생 4백 주년 기념연극제”가 개최되어 셰익스피어의 거의 모든 작품이 한국에서 공연되며, 이후 셰익스피어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작가가 된다. 한편, 1975년 실험극장이 공연한 셰퍼(P. Shaffer)의 <에쿠우스>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장기 공연을 하면서 추리극, 상업주의 연극의 바람을 일으켰다. 그 열풍에 힘입어 <블랙코미디>와 핀터(H. Pinter)의 <티타임의 정사>도 거듭 재공연 된다. 이오네스코와 함께 부조리극의 대명사가 된 베케트(S. Beckett)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1961년 극단 팔월이 초연하여 기존 연극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그 후 수많은 극단들에 의해 다양한 양식으로 수없이 재공연되어 개별 작품으로는 20세기에 가장 많이 공연된 번역극이다. 미국 연극은 1965년 올비(E. Albee)의 <동물원 이야기>가 초연되고, 이후 그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도 소개되면서 올비는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한 미국 극작가가 된다. 또한, 윌리엄스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유리동물원>,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홀&미들매스(Hall & Middlemass)의 <사형수>, 쉬스갈(M.Schisgal)의 <호랑이> 등도 관객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 이 기간에는 미국의 오프 브로드웨이 혹은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 작가들이 많이 소개되었다. 이탤리(J. C. Itallie)의 <뱀>, 사이먼(N. Simon)의 <이상한 부부> 등은 주로 1970년대 후반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쉬스갈과 사이먼의 코미디들은 수차례의 재공연과 흥행에 성공하면서 상업주의 연극의 부상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한편, 존스(T. Jones)의 <철부지들>은 흥행에 대단한 성공을 거두면서, 1980~90년대 한국에서의 미국 뮤지컬의 붐을 예고하게 된다. 1980년대 번역극 공연에서, 영국의 극작품들은 대부분 재공연이었으며, 그 중에서 셰익스피어의 극작품이 압도적으로 가장 많이 무대에 올랐고, 다음으로 핀터와 셰퍼의 작품들이 수차례 여러 극단들에 의해 재공연 되었다. 베케트의 작품은 <고도를 기다리며>가 거의 해마다 재공연되었으며, 특히 1986년에는 극단 전원이 “베케트 연극 페스티벌”’을 개최하여 <고도를 기다리며> 이외에도 베케트의 거의 모든 단막극을 소개한다. 미국 연극은 뮤지컬이 주류를 이룬다. 버러우스(A. Burrows)의 <아가씨와 건달들>, 매스터로프(J. Masteroff)의 <카바레>, 슈왈츠(S. Swartz)의 <가스펠>, 로렌츠(A. Laurents)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알레헴(S. Aleichem)의 <지붕 위의 바이올린>등은 모두 이 시기에 소개되어 관객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흥행에 대성공을 거둔다. 여성문제를 다룬 대표적 작품들로는 헨리(B. Henley)의 <마음의 범죄>와 필미어(J. Pielmeire)의 <신의 아그네스>가 있는데, 특히 <신의 아그네스>는 작품성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관객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장기공연의 기록을 세운다. 민주화, 국제화가 시작되는 1990년대 번역극의 새로운 특징은 여성 연극이 여성 관객 층의 확보라는 차원을 넘어 페미니즘 연극으로 발전하고, 대중예술의 부상과 ‘LOOK’ 세대로 불리는 신세대의 감각적 취향, 연극의 상업성이 결합하여 뮤지컬이 급속도로 한국의 연극무대를 휩쓸었다는 점이다. 영국 연극은 여전히 셰익스피어, 베케트, 셰퍼, 오튼의 작품들이 재공연되었지만, 새롭게 풍속희극들이 연달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영국 상업극의 붐을 이룬다. 이 상업극들은 경쾌하고 감각적인 무대를 구성했으며, 때로는 에로티시즘 계통의 연극 혹은 여성연극으로 번안되어 공연되기도 했다. 카워드(N. Coward)의 <사생활>, 딜래니(S. Delaney)의 <꿀맛>, 러셀(W.M. Russell)의 <리타 길들이기> 등은 여러 차례 재공연 된다. 이 기간, 미국의 코미디와 뮤지컬은 관객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사이먼의 <잉여부부>, 버러우스의 <아가씨와 건달들>이 끊임없이 재공연되었다. 새로 소개된 뮤지컬로는 고긴(Goggin)의 <넌센스>, 커크우드&햄리시(Kirkwood & Hamlish)의 <코러스 라인 >, 피어슨(C. Pearson)의 <베이비, 베이비>, 매쉬만(H. Mashman)의 <오드리> 등이 있다. 특히, 1991년 초연되었던 <넌센스>는 해마다 재공연되며 최대 관객을 동원한 기록을 세운다. 그러나 뮤지컬의 열풍 속에서도 셰퍼드(S. Shepard)의 <매장된 아이>, 매멋(D. Mamet)의 <바보들의 낙원>, 헨리 황(D. Henry Hwang)의 <M. 나비>는 1980년대 미국 사회의 부조리, 자아정체성의 위기 등을 다룬 주제나 실험성에서 미국 현대극의 또 다른 경향을 소개한 작품들이다. 여성연극으로는 와셔슈타인(W. Wasserstein)의 <미스 앤 미즈>와 노만(M. Norman)의 <게팅 아웃>, <굿나잇 마더>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신현숙(덕성여대 불문학과 교수/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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