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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한국연극의 무대미술가
우리 무대미술의 시작은 아무래도 신파극이 시작되면서부터라고 하겠다. 전통 연희의 경우 특별한 무대미술 없이, 자연이나 실내가 무대미술로 활용되었다. 물론 국가에서 공식적인 놀이를 거행할 때 설치된 ‘산대’의 경우, ‘산대’를 오색 비단과 용(龍), 봉(鳳), 상(象) 등의 형상으로 화려하게 꾸며서 그 자체가 볼거리가 되어서 무대미술이라고 간주할 수 있겠다. 어쨌든 인위적인 무대미술은 신파극이 그림을 그린 배경막 장치를 일반화하면서부터라고 하겠다. 물론 그 전의 ‘협률사’나 ‘원각사’의 연희나 창극 때에도 어떤 무대미술이 있었을 가능성은 크지만, 일반화된 분명한 장치는 없었던 듯 싶다. 이러한 무대미술이 한 단계 크게 도약한 것은, 1920년 초기 학생극 운동 시절이었다. 학생극 운동의 하나였던 ‘토월회’ 2회 공연에서 ‘무대 장치는 천여 원을 들여서, 김복진, 이승만 등이 준비하였는데, 이승만이 <알트 하이델베르크>의 궁전 벽화만을 그리는 데 1주일 씩이나 공을 들여 그렸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이다. 후일 토월회 공연을 평하여 ‘은그릇에 설룡탕을 담은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도, 무대장치에 비하여 연기가 떨어진다는 뜻에서였다 한다. 이와 같은 평을 종합해 보면, 학생극이었던 만큼 사실적 재현의 실현을 추구했는데, 이는 훈련 시간이 걸리는 연기보다는 소기의 성과가 가능한 무대미술에서 더욱 뛰어났던 것 같다. 즉 일반적으로 학생극에 와서 무대미술의 중요성과 그 실현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 것 같다. 이러한 사실적 재현의 노력은, 1920년대의 전문극단들이나 1930년대의 ‘극예술연구회’에도 이어졌다. 그러나 연출이나 연기 및 극작에 비하여 오늘날 구체적인 기록이 적은 것을 보면, 이들 분야보다는 발전이 적은 것 같다. 일례로 ‘극예술연구회’의 4회 공연이었던 <무기와 인간>에 관한 김기림의 무대 평을 보면, ‘무대장치는 실패라고 하고 싶다. 장래 극연 속에서는 이 방면의 천재도 나오기를 우리는 저대(這待)한다(‘극평-<무기와 인간> 단평(2); 김기림, 조선일보, 1933년 7월 4일)’라고 했다. 한편 프로극에서는 ‘소인극’을 주장하며, 재현적 공연보다는 간단하고 이동이 용이한 무대를 선호하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무대미술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국민연극 경연대회 수상기록에 나타나 있다. 3회의 대회에서 김일영은 두 번이나 장치상을 받았으며, 한 번은 원우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대회 출품작에 장치를 맡은 사람은 김운선, 길진섭, 김정환, 강호, 윤상열, 이승만 등의 이름이 보인다. 이들이 국민연극을 통해 전해진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지만, 연출이나 극작에서 당대의 거의 모든 연극인이 동원된 것을 미루어 볼 때, 이들은 1930년대 이래 최고의 무대미술가였을 것이다. 해방 후에도 김정환 등 결국 우익으로 남은 사람들이 꾸준히 활동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야, 1980년대 중반까지도 무대미술계를 도맡다시피 했던 장종선, 최연호, 송관우의 활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즉 이때까지도 연출과 희곡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다고 하겠으니, 무대미술은 그 전문성과 독자성을 발휘하기에 부족했다고 하겠다. 이병복은 1970년대 극단 자유의 활발한 활동과 함께, 무대미술을 거의 전담하면서 등장하였다. 한국적 선과 질감을 살린 독특한 무대미술로 극단 자유의 정체성 부여에도 큰 몫을 하였다. 1980년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무대미술을 공부한 신일수와 신선희의 귀국은, 무대미술가의 새로운 세대를 열었다. 이들은 전문적 수준의 무대장치를 구사하면서, 무대미술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 1990년대에 들면서, 많은 무대미술가들이 등장한다. 윤정섭, 이태섭, 김성철 등은 국제무대미술가협회와의 관계를 보다 본격화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뒤를 이어 김준섭, 오윤균, 손호성 등이 등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무대미술이 더욱 분화되어서, 조명과 의상도 확고하게 자리 잡았던 것도 이 시기이다. 유학파인 의상디자이너 김현숙이나 장혜숙이 등장하고 조명디자이너로는 고희선 등이 등장하여 그 전문성을 알렸다. 연극의 극장주의가 강조되면서, 시각적 이미지는 더욱 중요해졌다. 로버트 윌슨 같은 연출가는 무대미술가가 어째서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인지를 잘 대변하고 있다. 무대미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장식적 요소를 넘어서, 오늘날 테크놀로지와 결합하면서 연극의 핵심부로 이동하고 있다고 하겠다. <p align='right'>이미원(연극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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