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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이즘

장르
미술 /미술사 /서양미술사
요약설명
다다이즘은 1차 대전 중부터 전후에 걸쳐 스위스,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에서 일어난 문학, 조형 예술상의 반항운동.
상세설명
다다이즘은 1차 대전 중부터 전후에 걸쳐 스위스,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에서 일어난 문학, 조형 예술/미술상의 반항운동이다. 제1차 대전을 낳게 했던 전통적인 문명을 부정하고 기성의 모든 사회적, 도덕적 속박에서 정신을 해방하고, 개인의 진정한 근원적 욕구에 충실하려는 것이 이 운동의 근본정신이었다. '다다'라는 말은 아이들의 장난감 목마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임의적인 선택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 기존의 예술형식을 파괴하고 우연성을 개입시킴으로써 자율적인 발상과 오브제/미술, 꼴라쥬/미술등의 자유로운 표현양식, 그리고 풍자적 표현에 영향을 주었다. 그 회의적이고 조소적인 태도는 1917년 창간된 기관지 <다다(Dada)>를 통하여 국제적 운동으로 확대되었고 주지의 운동이 합류하여 1918년 <다다선언>을 하고 그 파괴적 운동은 최고조에 달하였다. 다이즘은 제1차대전의 정신적 상황의 산물이었고 1920년대 초에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술상의 주의도 정치운동도 아니고 파괴와 창조를 모색하는 (정신의 상태)라는 점에 그 적극적인 뜻이 있다. 다다이즘은 제1차 대전 동안에 팽배했던 부정부주의 물결과 관련을 맺고 있었다. 또 시와 그림을 통하여 허무주의를 표현했고 예술과 디자인/미술에도 그 사상을 적용했다. 다다이즘은 1916년 쮸리히에 있는 카바레 '볼테르'에서 루마니아의 시인인 트리스탄 차라(Tristan Tzara), 화가인 한스 아르프(Hans Arp)/미술, 예술가이며 나중에 영화제작자가 된 한스 리히터(Hans Richter)/미술에 의해 정식으로 명명되었다. 그러나 다다이즘은 뒤샹/미술이 1912년과 1913년에 기존의 예술과 가치관에 반대를 표명했던 것을 그 기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뒤샹의<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미술와 <자전거 바퀴>/미술는 다다이즘 양식을 형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뒤샹과 아르프/미술, 또 피카비아/미술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미술, 사진작가였던 만 레이(Man Ray)/미술 그리고 시인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등도 다다이즘에 중요한 공헌을 한 작가이다. 한편, 초기의 다다이즘 운동에 가담했던 많은 작가들은 /초현실주의/미술로 전향하였으며, 그 외의 작가들은 다다이즘의 목표였던 불합리하고 모순된 것을 계속해서 추구해 나갔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에 다다이즘의 정신은 뉴욕에서 발생된 /팝아트(Pop art)/미술운동에서 다시 살아났다. 다다이즘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두 가지의 주요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그 하나는 직선에 국한되었던 타이포그래피/미술를 자유롭게 한 것이며, 또 하나는 시각적인 경험을 통하여 활자체에 대한 입체파/미술의 생각을 다시 강화시킨 것이다. 구성주의/미술자들과 초기 바우하우스/미술의 디자이너들은 모두 다다이즘의 원리와 자유에 익숙해 있었으며 또한 다다이즘은 데 스틸/미술 뿐만 아니라 모든 디자인 운동에서 다다이즘이 창조해냈던 혼란으로부터 뚜렷한 목적과 질서의식을 되찾도록 고무해주었다.
관련서적/논문
트리스탄 차라(Tristan Tzara), 한스 리히터(Hans Richter), 만 레이(Man Ray),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