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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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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용

장르
무용 /무용사 /한국무용사
요약설명
해방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창작된 신식의 극장식 한국춤을 말하며 대표적인 무용수인 최승희와 배구자가 있음.
상세설명
신무용은 1945년 해방 이전까지는 신문물과 함께 외국에서 유입된 서구무용등 예술무용으로서의 신식춤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통용되었었다. 그러나 해방이후에는 발레/무용와 현대무용/무용과 차별화되는 개념으로 1970년대까지 창작된 신식의 극장식 한국춤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나라에 유입된 서양무용은 1905년 청국공관에서 개최된 무도회의 도무/무용(蹈舞)라는 사교무용/무용이었으며 1920년 노령(露領) 블라디보스톡에 있던 유학생들이 러시아의 민속무용/무용인 코팍댄스/무용(HOPARK DANCE)를 고국에 소개하므로써 각종 음악무도회/무용(音樂舞蹈會)에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주로 서양의 오락무용/무용이었다. 1926년 3월 일본의 현대무용가 석정막(石井漠)이 한국에서 공연을 한후 '신무용'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하게 되었으며, 한국의 최승희/무용, 조택원/무용등이 석정막의 신흥무용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신무용의 본격적인 발현은 최승희(崔承喜)와 배구자/무용(裵龜子)의 공연으로 시작되었다. 배구자는 고유한 민족 무?育?창작을 시도하며 강이문은 신무용을 '전통적 한국무용/무용에 새로운 생명을주어 그것을 시대에 적응하게끔 창의적으로 만든 무용'이라고 정의하면서 1929년 9월 29일에 있었던 배구자 무용연구소 제1회 무용발표회를 신무용사의 공인기점으로 삼고 있다. 최승희는 석정막으로부터 독립하여 1929년에 무용연구소를 열고 1930년 2월 경성공회당에서 제1회 발표회를 가졌다. 이후 일본과 만주 등지에서 순회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당시의 무용가로는 배구자, 최승희 이외에 김민자/무용(金敏子), 박외선/무용(朴外仙), 박영인/무용(朴永仁), 조택원/무용(趙澤元)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