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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상감여지국화문대접(3001035) 크게보기 3D 뷰어
청자상감여지국화문대접(3001035)
국적/시대
한국/고려
재질
도자기/청자
용도
식기, 대접
소장처
원주역사박물관
3D프린팅 가이드
추천재질 1 : 파우더(SLS/DMLS)
추천재질 2 : 플라스틱(FDM/FFF)
원천유물설명
청자는 점력이 좋은 자기질의 점토 위에 철분이 함유된 석회질의 유약을 발라 1200도 이상의 온도에서 산소 공급이 적은 환원염으로 구운 자기를 말한다. 유약의 색은 초록이 섞인 푸른색으로 비취색과 흡사하고 투명에 가까우며 태토의 색은 흐린 회색이기 때문에 청자의 색은 회색이 바탕이 된 녹청색이 되며 고려 사람들은 이를 비색이라 하였다. 청자의 태토와 유약은 청자를 만든 나라와 지방, 그것을 만든 시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고 굽는 방법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태토와 유약의 색이 조금씩 다르다. 고려 시대의 청자는 전기, 중기, 후기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전기에는 고려 초기의 시기로 강진의 햇 무리 굽청자가마는 점차 확산되었으나 다른 지방의 햇 무리 굽 청자 가마는 점차 없어지거나 지방의 조질 청자 가마가 되고 녹 청자 가마도 생겨나게 된다. 중기에는 17대 인종 때부터 아름답고 세련된 독창적 기형과 독특한 비색청자를 완성하고, 18대 의종 때에는 상감기법과 문양 구성이 가장 뛰어났으며, 청자, 청자상감, 철채, 동화, 동채, 연리문, 철채 상감, 화금자기 등 다양한 청자가 만들어졌고 청자기와도 제작되었다. 후기에는 몽고 침입 이후에 원종대와 충렬왕 초까지 소수의 상품(上品)을 제외하고는 고려자기가 많이 퇴보하였으나 중기의 모습은 남아 있고 충렬왕대부터 화금과 진사설채가 다시 등장하며 새로운 기형과 문양이 생기고 청자의 질이 좋아지는 등 일시적 성황을 보이다가 다시 퇴보하는 고려 말까지를 후기로 한다. 이 대접은 고려청자 대접이 지닌 곡선미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접 안쪽 면에는 입 부분에 형식화된 좁은 덩굴문 띠를 두르고 바닥에는 국판문(菊瓣文)을 넣고 둘레에 연판문(蓮瓣文) 띠를 돌렸다. 나머지 넓은 안벽 네 군데에 바깥 면에는 입 부분에 형식화된 좁은 덩굴문 띠가 있고 바닥 쪽에 연판문 띠를 돌렸으며 사이의 넓은 면에는 흑백 상감으로 여지와 국화무늬를 새겨 넣었다. 바깥 면에는 입 부분에 형식화된 좁은 덩굴문 띠를 두르고 바닥 쪽에 연판문 띠를 돌렸으며 두 겹의 원(圓) 안에 국화 무늬를 넣고 나머지 공간에 국당초문(菊唐草文)을 가득 채웠다. 유약은 빙렬(氷裂)이 없고 옅은 녹색이 감도는 비색유(翡色釉)이며, 기벽(器壁)은 조금 두껍고 굽도 크고 두툼하며 아래에 큰 규사 눈 세 개를 받쳐 구운 자국이 있다.
활용설명
청자상감 대접의 형태를 그대로 활용하여 주방용품으로 개발하였다. 대접은 요즘에도 사용하는 식기의 일종으로 사용할 때마다 우리나라 식기의 전통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장식용품, 생활소품 등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대접에 보이는 상감기법을 활용한 다양한 무늬를 살려서 사용자에게 우리나라 문양의 아름다움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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