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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 떼고 밥, 그 고단한 시기에 먹고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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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9.15.

인간은 포유동물이다. 태어나 어미의 젖을 먹다가 어느 날엔가 어미의 품을 떠나 독립생활을 하는 동물이 포유동물이다. 포유동물의 젖 떼는 시기를 이유기라고 한다. 문명을 만들기 전 인간은 보통 7세 무렵에 젖을 떼고 독립을 하였다. 그 흔적이 심리적 이유기로 남았다. 이때의 아기는 어미의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하고 어미도 말썽을 부리는 아기를 야단치며 밀어낸다. 개나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젖 뗄 때이면 어미가 젖 먹겠다는 새끼의 목을 물어 제지할 정도로 단호하다는 것을. 인간도 원래 그렇게 살았다.

 

젖 떼고 밥, 그 고단한 시기에 먹고 사는 법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 저자제공

 

 

인간은 포유동물이다. 태어나 어미의 젖을 먹다가 어느 날엔가 어미의 품을 떠나 독립생활을 하는 동물이 포유동물이다. 포유동물의 젖 떼는 시기를 이유기라고 한다. 문명을 만들기 전 인간은 보통 7세 무렵에 젖을 떼고 독립을 하였다. 그 흔적이 심리적 이유기로 남았다. 이때의 아기는 어미의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하고 어미도 말썽을 부리는 아기를 야단치며 밀어낸다. 개나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젖 뗄 때이면 어미가 젖 먹겠다는 새끼의 목을 물어 제지할 정도로 단호하다는 것을. 인간도 원래 그렇게 살았다.

 

인간은 문명을 만들면서 포유동물의 본능을 죽여 나갔다. 문명 발달에 따라 아기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먹고 죽거나 탈나는 것을 구별하는 정도의 교육만 하여 독립시켜서는 생존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날로 복잡해져가는 문명사회에 최대한 적응을 하게 하여 사회에 내보내어야 했다. 그래서 ‘이유기’는 20대로까지 길어졌다. 현대문명사회에 적응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취업을 하기 전까지, 어버이는 ‘아기’를 거두어야 한다.

 

인간이 ‘원시의 포유동물’로 산 기간이 600만~700만 년이고 ‘문명의 포유동물’로 산 기간은 기껏 1만 년이다. 600만~700만 년의 본능과 1만 년의 문명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본능은 7세에 ‘이유’를 하라 하는데 문명은 20대의 ‘이유’를 권장한다. 이 기간 사이의 인간은 그야말로 큰 혼란에 빠져든다. 1만 년 전만 하더라도 독립생활자로 살아야 할 나이인데 아직도 ‘포유를 당하여야’ 하니 정신이 온전할 수가 없다.

 

 


거친 20대의 음식

 

거친 20대의 음식(왼쪽부터 닭강정, 떡볶이, 짬뽕) 

거친 20대의 음식(왼쪽부터 닭강정, 떡볶이, 짬뽕) ⓒ 픽사베이

 

 

20대.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 본능은 이미 독립을 하였어야 했고 문명에서는 아직 독립을 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스트레스는 음식에 곧바로 반영된다.

 

떡볶이, 짬뽕, 닭발, 매운치즈등갈비, 불닭라면, 닭강정, 주꾸미볶음, 양념통닭, 쫄면…. 20대의 음식을 보면 대체로 이렇다. 맵고 달고 짜다. 컵밥이며 삼각김밥 등도 이 맛에 집중한다. 내가 관찰하기로는, 음식을 먹는다고 할 수 없다. 오직 맵고 달고 짠 양념으로 그 음식을 밀어 넣을 뿐이다.

 

떡볶이를 볼까? 떡볶이는 이름에만 떡이 있지 떡을 먹자는 음식이 아니다. 떡볶이 맛의 핵심은 국물이다. 맵고 달고 짠 그 국물에 튀김, 순대, 어묵, 달걀 등등을 찍어 먹는다. 곁에 밥이 있으면 밥도 비벼 먹을 것이다. 매운치즈등갈비는 어떤가. 등갈비가 아니어도 그 맛이 날 것이다. 닭강정은 또 어떤가. 닭을 넣지 않고 오직 밀가루튀김에다 그 양념을 하여도 맛있다 할 것이다.

 

매운‘맛’이라 하나 맵다고 느끼는 감각은 맛이 아니다. 통각이다. 매운 음식을 먹는 우리를 관찰해보면 안다. 온갖 인상을 쓰면 “아우, 매워”를 외친다. 아픔이 극렬하면 이를 잊게 해주는 시스템이 작동하게 우리 몸이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뇌에서 엔도르핀이 터진다. 일순간 기분이 좋아진다. 엔도르핀이 주는 쾌감이 있다 하여도 통증이 심대하면 고추 먹는 일을 중지하는 것이 인간의 생리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단맛이다. 당은 에너지 물질이므로 우리 몸은 이를 지속적으로 먹게끔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매운맛에 단맛을 섞어 계속해서 먹게끔 만드는 것이다. 매운맛과 단맛이 강렬하니 거기에 맞추어 소금도 덩달아 많이 넣게 되고, 그렇게 하여 맵고 달고 짠 음식이 완성되는 것이다.

 

맵고 달고 짠 음식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20대라고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다. 그럼에도 여기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맵고 달고 짠 음식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스트레스를 제거해야 할 것이고, 그럴 것이면 먼저 취업을 하여야 할 것이고… 되돌이표가 붙는다.

 

취업준비생의 스트레스는 본원적으로 제거되기가 어렵다.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정신적 독립이나 성숙을 말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 그게 더 큰 스트레스로 작동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나는 아직 젖먹이” 하며 자신의 정신을 어미 품으로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다.

 

우선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이건 운명이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렇다. 내가 못나서 이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 어중간한 시기가 내 인생에 존재하는 것은 내 탓이 아니다. 인간이 문명을 만들며 생겨난 어쩔 수 없는 시간이다.

 

 

 

‘이모’의 식당

 

“이모~.”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여자종업원을 부르는 단어로 엄마 여자형제 호칭을 흔히 쓴다. “아줌마~” 하면 정이 없어 보인다. 나이 지긋한 여주인에게는 “할머니~” 한다. 단골이면 “어머니~”라 부르기도 한다. 가족 호칭으로 식당종업원을 부르는 일이 외국에도 있는지 여기저기 물은 적이 있다. 비슷한 일이 관찰되기는 하는데 처음 보는 여자종업원에게 노골적으로 “이모~” 이런 식으로 부르는 예는 없다고 한다.

 

한국만의 독특한 이 호칭 사용법은 한국의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5,000년 동안 한반도는 농민의 나라였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인구의 70%가 농업에 의존하여 살았다. 농업사회에서는 다들 집에서 음식을 해서 먹는다. 취업 걱정도 적었다. 아버지의 농사를 이어받으면 된다. 60년대부터 일순간에 산업사회로 바뀌었다. 유럽에서 200년 걸린 산업화 과정이 한반도에서는 단 30년 만에 해치워졌다. 2015년 현재 농민은 겨우 4%이고 나머지는 노동자이다.

 

노동자는 밥을 사서 먹는다. 도시에 식당이 급격히 늘어났다. 도시 식당에서 밥을 파는 사람이나 그 밥을 사먹는 사람이나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농민이었다. 그러니 밥을 사고파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이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등장한 호칭이 “이모~”이다. 내 집은 아니나 내 고향의 집안 정도로 여기며 밥을 사고팔면 마음이라도 편할 것이라 서로 생각한 것이다.

 

20대 취업준비생의 스트레스는 현대문명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고, 이 기간을 버티어야 비로소 독립을 하게 되며, 인생 전체로 보면 그렇게 길지 않다고는 하나, 돈까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좋은 음식을 넉넉하게 먹을 수만 있다면 20대의 이 짧은 기간을 무에 어렵다 할 것인가.

 

“이모~.”

 

이 호칭에 담긴 한국 초기 산업사회 선배들의 지혜를 배우면 어떨까 한다. 고향 떠나 객지에서 힘겹게 노동자로 살지만 식당에서 밥먹을 때만이라도 고향집 같았으면, 이모네 집 같았으면,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이 호칭에다 붙여서 불렀던 것인데, 그렇게 “이모~” “이모~” 하고 자꾸 부르다 보면 생면부지의 종업원이 마침내 이모처럼 보이고, 그가 내놓는 음식에서 이모의, 어머니의 맛이 느껴지기도 한다, 정말이다.

 

매끼 밥을 사서 먹어야 하는 사정이라면, 단골 식당을 정하라고 권하고 싶다. 음식 맛이야 그게 그것이다. 마음 편한 식당이면 된다. 주인이든 종업원이든 서로 눈인사 정도는 나눌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날씨며 계절에 대해 한마디씩 하기도 하고, 가끔은 답답한 속내도 내놓고 말할 수 있는. 단골로 밥을 내고 이를 받아먹고 하다 보면 정이 쌓이게 마련이고, 또 인간은 원래 그렇게 살아야 행복한 동물이다.

 


- 글 황교익(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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