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감 공감리포트

공감리포트

공감리포트

[문화추천]600년 역사를 만나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둘러보기

문화포털 작성일2019-01-16

[문화추천]600년 역사를 만나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둘러보기

2018년 서울에서 600년 전 조선시대의 거리를 만난다면...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세월을 뚫고 현실로 찾아왔습니다. 서울시가 역사적 보존과 지속가능한 개발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 터를 유지한 것이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입니다. 60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을 직접 둘러보았습니다.

 


개발, 그리고 보존의 중간 지점




유적전시  

                                                                                공평도시유적전시관 모습

 

아직은 옛스러운 풍경들이 많이 남은 종로구 공평동 일대. 인사동, 피맛골 등 우리의 예전 정서가 그리운 날 사람들은 이 지역을 방문하곤 하죠. 이제는 정말 예전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우리들 곁에 다가왔습니다. 지금은 비록 형태만 남은 곳이지만 전시관 안에서 예전 서울의 골목길을 따라 직접 걸어볼 수 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즐겨보는 시공초월의 산책, 이번 주말에 어떠신가요?

 

전시4 전시5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입구부터 펼쳐지는 유리바닥(좌) , 복원한 옛 서울 골목길(우)

 

전시관 정문 자동문이 열릴 때 방심하고 발을 디디면 깜짝 놀라실 수 있습니다. 입구부터 펼쳐지는 유리바닥 밑으로 옛 서울의 집터와 골목길이 펼쳐지거든요. 이전 복원된 옛 서울 터 그 위로 유리바닥을 깔아 다른 출토유물을 전시하고 이해를 도울 영상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옛 골목길 사이를 직접 걸어볼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도 있었습니다. 


전시6

복원 문화층의 구분
 

자칫 부주의하게 개발을 서둘렀다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적을 만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공평동 유적은 지표면을 기준으로 약 2.8m~3.9m 내외의 깊이까지 총 6개의 층위가 발견되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표토층과 자연퇴적층을 제외하고 19세기부터 일제강점기의 Ⅱ문화층을 시작으로 15~16세기 Ⅴ문화층까지 차곡하게 쌓여온 역사의 흔적. 그중 전시관에 이전 복원된 층위는 16~17세기의 Ⅳ문화층입니다. 여러 층위 중 원형에 가깝게 잘 보존되어 있어 당시의 건물구조와 변화상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네요. 이전 서울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적이 부주의 속에 사라지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조선시대 견평방, 시전의 중심지




 전시7 전시8

전시9 전시10

전시11 

차례대로 발굴 터 위치도, 전동 큰 집 터, 전시된 출토 유물. 안전과 번영을 지신에게 기원하며 땅에 묻는 진단구, 조선시대 시전과 연관된 다양한 출토 유물들, 이문안길 작은 집 복원 모형

지금의 공평동은 조선시대 한양의 중부 견평방에 속합니다. 견평방이란 당대 최고의 번화가이자 시전의 중심지였다고 하네요. 여러 궁궐과 관청들이 근처에 있는 지역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오늘까지 국가의 중심지 역할을 이어왔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전시공간은 크게 ‘전동 큰 집’과 ‘골목길 ㅁ자 집’, ‘이문안길 작은 집’, ‘전동 골목길’로 나뉩니다. 전동 큰집은 공평동 유적 터에서 발굴된 가장 큰 규모의 건물지라고 하는데요, 아마도 중인 이상의 가옥이나 관청의 부속시설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우정국로 큰 길에서 갈라진 골목길 안쪽에는 골목길 ㅁ자 집터가 남아있었습니다. 한옥의 목구조를 그대로 잘 재현한 이문안길 작은 집. 온돌과 마루, 아궁이 등 주택 바닥형식이 모두 발굴되어 당시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적 발굴지 중심부에서 폭 210~305cm 내외의 골목길 3곳이 발견되었는데요, 전동 골목길이라 불리는 이곳은 모든 시대의 발굴 층위에서 같은 위치에 같은 폭으로 존재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시대를 이어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이 골목길은 꾸준히 자리를 지켜왔다는 것이죠.



근대 공평동으로




전시12

근대 여성운동조직 ‘근우회’ 활동 터


1914년 행정구역이 변화하면서 지금의 ‘공평동’ 지명이 붙여졌습니다. 1936년 ‘공평정’으로 변경되었다가 1946년 다시 공평동이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죠. 근대에 들어 공평동은 법률사무소, 건축사무소, 회관 등 다양한 근대적 시설과 서민을 대상으로 한 요릿집과 술집도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예전 시전거리는 백화점, 공산품 판매점 등이 들어서며 현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27년부터 1931년까지 활동한 항일여성단체 근우회도 이곳 공평동 일대에 거점을 두었습니다.



도시유적 아카이브로 과거를 보다




전시13 전시14 

기록으로 남은 서울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아카이브 전시공간(좌), 기록을 간직한 자료들(우)


오랫동안 나라의 중심지여서 가장 번화하고 가장 발달한 모습이 익숙했던 서울. 그곳에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마치고나니 평범했던 거리가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 길들엔 또 어떤 과거의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까 하는 생각들 말이죠. 공평동에서 만나는 옛 서울여행, 어떠신가요?






              명하

        

                                      문화추천

 
 



      

                                                                                                

     

 

 



 

관련기관 안내